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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의지가 있으면 의자가 생길까 의지의 의자 윤활하는 견습 경사도 구부정한 시 떠오르는 발 조심은 마음을 잡는 일 소파 미제레레 노비스 아케이드의 부분 중얼거렸다 소유격 내가 그따위라는 것 2부│미세야말로 모두에게 도래할 궁극적 미래 아닙니까 어번 베어, 베어 도그 적당한 삶 미세주의보 식사에의 초대 홀인원 일상이 일생이 될 때까지 추락하는 거야? 날아가는 거야? 개봉관에서 백상지 쿠키맨 달콤한 생의 아이들 천개(天蓋) 고양이를 사랑합니까 의심하세요 3부│슬픔 없이 슬픔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슬픈 걸까 러브버그 하우스 목숨 같은 거 베이비베이비 녹아버리는 얼굴 여름의 감정 조금 다정한 사람 사탕 무덤 구월은 당신이 태어난 달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더 하고 싶다 무한한 가능의 세계 당신은 다른 나라에 가서 살자고 그리고 다시 부엉이가 이 세계의 끝 우리들에게 새는 영원히 4부│당신의 비치는 누구입니까 어디입니까 플리스 플리츠 플러스 다만 귀를 기울이면서 난(難) 새로 이해하기 우리의 두 손 모눈 사이를 걸을 때 안부 식물원 두 손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어디로 가지 잊지 말고 눈 꼭 감기 Beautiful Beach 최선의 나무 해설│타인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일│고봉준(문학평론가) |
Kim Park Eu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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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의자가 없는 것뿐인데 의지가 있으면 의자가 생길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의지일까 의자일까 소유격이 사라지면 무례해질 수 있으니 서로 조심해야지
--- 「의지의 의자」 중에서 그사이 아이는 기어서 걸어서 뛰어서 영상 밖으로 나가고 이곳의 입실은 오늘 오전 열시, 퇴실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 얼굴이 영정사진과 닮은 것 같고 영정사진이 내 얼굴과 닮은 것 같아 돌아보는데 네 얼굴 맞아, 누군가 중얼거렸다 --- 「중얼거렸다」 중에서 총을 쏘거나 맞거나 우연한 불운에 이르도록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최선을 다한다 그사이 숲도 곰처럼 무겁게 개처럼 명랑하게 쑥쑥 커야지 --- 「어번 베어, 베어 도그」 중에서 되풀이되는 불운이야말로 돌을 바로 놓고 싶어하는 악착같은 숨 아닐까 한 걸음씩만 집중하면서 마지막 돌은 잊어버리자 이게 아니라도 좋아 이게 전부라도 좋아 숨겨둔 돌 같은 건 던져버리고 운명을 향해 텅 빈 두 손을 힘껏 흔든다 --- 「적당한 삶」 중에서 미세한 것은 좋지 않습니까 먼지보다 작아서 보이지 않습니까 음성처럼 달라붙어 스며듭니까 은밀한 전조일 수 있습니까 (…) 미세야말로 모두에게 도래할 궁극적 미래 아닙니까 --- 「미세주의보」 중에서 믿음엔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의심은 왼손잡이 같은 것 (…) 그러나 고해소에도 거짓말은 있고 어디선가 그 말을 받아적는 왼손이 있을 것 같다 --- 「개봉관에서」 중에서 당신은 왜 앞뒤가 다르냐고 화가 나서 묻는 사람인가요 (…) 발모 모발 비상 상비 감정 정감 중심 심중 당황 황당 전생 생전, 이런 놀이는 열병식 같아요 졸고 말 테야 --- 「백상지」 중에서 교생실습 갔을 때 곁을 떠나지 않던 아이는 엄마랑 살지 않는다고 비밀이라 했다 그늘이 없어 보이는 건 이미 깊은 그늘 속이라서 짧아진 옷소매 감지 않은 머리카락도 안아줄 수는 있었지만 도망치고 싶었다 나 가짜야 따뜻하지 않아 들킬까 두려웠다 --- 「조금 다정한 사람」 중에서 불안과 불면의 모눈 사이를 헤맨다 너의 병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야 너는 부러 괜찮은 척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수건돌리기처럼 슬쩍 던져두고 가는 운명에 담담해질 수가 없다 호흡을 한없이 길게 해도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도 검은 불길이 볼을 핥는다 --- 「모눈 사이를 걸을 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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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의심하세요」에서 의심과 믿음은 반대말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의 두 얼굴로 나타난다. 시인은 믿는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심이 거미줄 치는 순간을 포착하고 “의심과 믿음은/ 어쩌면 같은 종족”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선택한 믿음은 “빛으로 지어진/ 누각 한 채”처럼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서 의심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믿음을 지탱하는 감각이다. 오히려 무언가를 쉽게 믿지 않으려고, 더 튼튼히 믿으려고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때 확신의 언어를 벗어난 시는 오래 바라보는 언어가 된다.
믿지, 묻는다면 믿는다고 정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심이 거미줄 친다 (…) 의심과 믿음은 어쩌면 같은 종족 _「의심하세요」 그리움, 무언가의 마지막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 이 시집에서 죽음은 일상 속 사물과 감각으로 문득 드러난다. 맨홀, 소파, 냉동실, 시계, 전철역, 사탕, 고양이, 새 같은 사물과 존재 들은 평범한 풍경에 머물지 않고 무언가가 떠난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홀인원」에서 맨홀은 사람을 위한 구멍이면서 사람을 삼켜버리는 구멍이 되고, 「사탕 무덤」에서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은 병들어 죽은 연인 혹은 먹을수록 사라지는 사랑의 형상으로 다시 읽힌다. 죽음은 설명되기보다 감각되고 애도는 선언되기보다 오래 씹히고 녹아든다. 당신이 죽자 나도 죽어버렸고 내가 죽어버려서 당신은 더욱 죽었으니 우리라는 붙이들의 죽음은 줄줄이 이어져 켜켜이 쌓이겠지 _「천개(天蓋)」 그렇기에 『의심하세요』의 그리움은 단순히 회상의 정서에 머물지 않는다. 이 시집의 그리움은 떠난 존재를 다시 붙잡으려는 마음이면서,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마음이다. 「천개(天蓋)」에서 화자는 “당신이 마침내 알아낸 것을” 들으려 하지만 “끝까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구월은 당신이 태어난 달」에서는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우리들의 구원”이 되고, 「우리들에게 새는 영원히」에서는 믿는 순간 도망칠지도 모르는 새를 통해 사랑과 상실의 불안이 겹쳐진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것이 남긴 감각은 사물과 계절과 기억 속에 계속 떠돈다. 귤은 균이 되고 사탕은 뼈가 된다 부재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을 향하여 이 시집이 지닌 독특한 힘은 달콤하고 기괴한 감각의 결합에서 나온다. 「추락하는 거야? 날아가는 거야?」에서 귤은 상하면서 더 부드러워지며 끝내 균이 되고, 「쿠키맨」에서 따스하고 달콤한 것은 사랑과 다르지 않지만 결국 먹히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몸이다. 「녹아버리는 얼굴」에서 냉동실 속 소분된 살점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고 언 것은 녹으며 녹는 것은 망가진다. 이 시집의 사물들은 귀엽고 달콤한 표면을 지녔으나, 사탕이 뼈의 감각을 남기듯 그 안에는 허기, 상처, 부패, 죽음, 사랑의 불안이 함께 들어 있다. 고봉준 문학평론가가 해설에서 짚듯 이 시집에서 죽음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닥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삶과 일상에 “이미-항상” 놓여 있는 조건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죽음마저 ‘그대’의 죽음처럼 다가오는 순간 시집은 가장 사소하고 만만해 보이는 사물들에서 삶의 어두운 감각을 끌어낸다. 귤은 내가 되었다 균은 내가 되었다 여기 거대한 귤 하나 여기 거대한 균 하나 _「추락하는 거야? 날아가는 거야?」 그러나 『의심하세요』의 세계가 무겁고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이상히 달콤하고 자주 불온하며 때로 우스꽝스럽고 끝내 서늘하다. 표지에 놓인 문장처럼 “어렵다는 말과/ 불가능하다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이라면 이 시집은 불가능해 보이는 믿음의 자리에서 다시 묻고 다시 바라보고 다시 사랑하려는 시집이다. 사랑도 믿음도 애도도 삶도 어렵지만 어렵다는 사실이 곧 불가능을 뜻하지는 않는다. 시인은 “완전한 폐곡선”에 갇힌 듯한 세계에서 빠져나가려고 다시 의심하고 다시 감각한다. 의심은 닫힌 세계를 부수는 힘이면서, 닫힌 세계에 아직 남은 출구를 찾는 힘이다. 여기서 의심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믿음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은 부재와 그리움, 몸과 사물, 달콤함과 서늘함이 뒤섞인 자리에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각으로 남는다. *시인의 말 물푸레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북유럽신화에서는 우주수로, 누군가에게는 회초리로 쓰인다는 이 나무는 어디에서 마지막을 살았을까요. 시집이 나올 무렵이면 동종의 나무마다 꽃을 피우겠지요. 이팝과 닮아 흔들리는 꽃송이를 몇 번이고 들여다볼 겁니다. 의심하면 곰곰이 바라보게 됩니다. 의심 없는 믿음은 허약한 것. 튼튼하게 믿고 싶어 기지의 것들을 의심합니다. 왁자한 말을, 어마한 사랑을, 만일의 믿음을 의심합니다. 기어이 의심까지 의심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보면 텅 빈 종이만 남을 텐데요. 이것이 마지막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