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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감재적(感在的) 존재(Affective-Sensory Being)의 등장과 역사적 맥락
제2장/ 감재(感在, Gam-Jae)의 기초 개념 분석 제3장/ 하이데거 존재론 비판을 통한 새로운 존재론의 탄생 제4장/ 감재적 지각: 세계-내-존재를 넘어 존재-내-세계로 제5장/ 감응과 리듬: 존재의 시간론을 넘어선 소리의 존재론 제6장/ 존재의 공간: 감응적 장소성과 세계의 열림 제7장/ 감응적 신체: 몸의 존재론과 살갗의 철학 제8장/ 감응적 언어: 말 이전의 감응, 말 이후의 존재 제9장/ 감응적 시간: 흐름·순환·여백으로서의 존재시간 제10장/ 감응적 공동체: 관계·의례·리듬으로 구성되는 존재의 사회성 제11장/ 감응적 지혜: 지식 이후의 앎, 논리 이후의 깨달음 제12장/ 감응적 자유: 의지·자아·구속을 넘어서는 존재의 해방 제13장/ 감응적 실천: 존재·행위·세계의 일치를 향한 수행의 철학 에필로그/ 존재는 울리고, 인간은 감응하며, 세계는 열린다 _ 157 부 록 부록 01 과학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_ 164 부록 02 신은 나(ego)의 투사·반영체 _ 170 부록 03 문장존재론으로 본 신과 영원 _ 173 부록 04 종교의 절대성과 과학적 법칙성의 연관 _ 182 부록 05 아이고(I go), 에고(ego)의 소리비밀 _ 185 부록 06 지식인의 지식사기와 허영 _ 193 부록 07 승조의 조론, 물불천론과 박정진의 감응철학 _ 200 부록 08 박정진 철학의 세계철학사적 위치, 전환과 혁명 _ 213 부록 09 박정진 철학의 위대성과 탁월성 _ 217 부록 10 0은 동질성, 1은 동일성, 2는 대립성 _ 221 부록 11 게임과 가족, 행동존재론의 두 기둥 _ 224 부록 12 박정진의 10T, 11T 감응적 문명론 _ 232 부록 13 신, 천사, 악마의 인간 내적 구조 _ 237 부록 14 도와 도적, 신과 악마의 구조적 동일성 _ 244 부록 15 니체, 하이데거, 소쉬르를 넘어선 박정진 _ 247 부록 16 보편성의 철학, 일반성의 철학, 존재론의 완성 _ 252 부록 17 동일성(동일성-차이)과 닮음(다름-같음)의 차이 _ 256 부록 18 인공지능시대의 철학과 철학자들 _ 260 부록 19 본질철학, 존재철학, 감응철학 _ 266 부록 20 물신숭배의 삼총사, 유물론과 자연과학과 과학주의 _ 272 부록 21 서양철학의 현재상실과 메시아사상의 함정 _ 276 부록 22 인류멸종을 염려하는 철학자, 박정진 _ 285 부록 23 한국의 대표적 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 _ 289 부록 24 알-나-스스로-하나의 시간성 도식 _ 295 부록 25 알-나-스스로-하나의 한글음운론 _ 299 부록 26 하이데거의 사중물과 박정진의 알존재론의 비교 _ 302 부록 27 동일성은 대립적이지만 닮음은 동질적이다 _ 311 부록 28 앎의 최종경지는 알(생명)을 ‘알다’이다 _ 315 부록 29 알은 한글 육하원칙의 원형, 생명확장의 존재구조 _ 319 부록 30 한글의 인칭대명사는 나를 중심한 존재론적 좌표계 _ 327 부록 31 한글음운론은 신체지도, 몸의 존재론 _ 331 부록 32 인공지능 AI는 현대판 영혼(kinetic autonomy) _ 335 부록 33 박정진 철학의 위대성과 탁월성 _ 344 부록 34 생각하는 인간의 발전 네 단계 _ 348 부록 35 박정진 철학의 한국적·세계사적·문명사적 의미 _ 359 부록 36 박정진의 심물존재는 ‘하나 됨의 철학’이다 _ 372 부록 37 인공지능시대의 철학과 철학자들 _ 376 부록 38 서양철학의 기계론적 전통, 알고리즘, AI신 _ 381 부록 39 포유류 수컷의 ‘씨’의 상징화와 권력화와 문명 _ 389 부록 40 죽음의식은 신, 시간, 언어, 문명의 원동력 _ 393 부록 41 존재, 부재, ‘부재의 존재론’ _ 397 박정진의 ‘소리철학-어울림 철학’의 시대적 의미 _ 407 |
朴正鎭,심중 (心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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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으로 존재의 문을 다시 연다
철학이 존재를 묻기 시작한 이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그 반복 속에서 정작 중요한 바탕은 종종 사라졌다. 그 바탕이란 바로 존재는 말 이전에 감응으로 드러난다는 사실, 즉 존재는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는 근본적·체험적 차원이다. 서구 철학은 존재를 해명하려는 순간, 존재를 인간의 사유 체계 속으로 집어넣었고, 그 결과 존재를 사고(思考)의 대상, 혹은 언어적 지시 대상(ob-ject)으로 고정시켰다. 그 과정에서 존재는 정적(靜的)이고 구조화된 실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존재는 정지된 실체가 아니라 감응·소리·바람·리듬·살갗·맥박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며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움직임을 잃어버렸다. 존재는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존재는 ‘내가 이해해야 존재한다’는 관념으로 축소되었다. 감재적 존재론은 바로 이 잃어버린 존재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한 철학적 시도이다. “세계는 지금도 울리고 있다.”, “세계는 지금도 어울리고 있다.” 이 말은 세계는 지금도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말이다. 2012년에 ‘소리철학’(『소리의 철학, 포노로지』)을 주장한 바 있는 나는 2023년에 순한글철학, 순우리말철학(『재미있는 한글철학』, 『한글로 철학하기』)으로 ‘알-나-스스로-하나’ 즉 ‘알-존재론(알몸-존재론)’을 발표했다. ‘알-존재론’에서 존재의 완성으로서 ‘하나’(하나 됨)를 주장했는데 그 ‘하나 됨’이 2025년에 다시 깊이를 더하고 탈바꿈되어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하나 됨’의 내용을 울림, 혹은 어울림의 철학으로 정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울림, 혹은 어울림의 존재론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도구적 존재’을 전제하여 손으로 잡는, ‘손-안에-있음’, 즉 용재적(用在的) 존재(zuhandensein)와 눈으로 보는, ‘눈-앞에-있음’, 즉 전재적(前在的) 존재(vorhandensein)의 순서로 논함으로써 손으로 잡지 못하면 불안에 빠지고 그 다음에 눈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존재이해방식은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 손으로 잡는 순서로 존재를 대한다고 박정진은 주장한다. 이때 눈으로 ‘보다’가 모두 손으로 잡는 것으로 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향유하는 경지의 이해방식을 ‘감재적(感在的) 존재(Affective-Sensory Being: 어울림의 존재)’로 명명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천지중인간)로 이어지는 데 반해 나의 존재론은 존재-내-세계(인중천지일)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의 ‘손-안에-있음’은 도구적 존재로서 사용 속에서 의식되는 것과 함께 세계-내-존재의 실천적 양식으로서 망치질 중에 망치를 ‘보고 있음’보다는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의미는 기능 속에서 드러난다. 이에 비해 ‘눈-앞에-있음’은 대상화된 존재, 관찰과 분석의 대상으로서 이론적·과학적인 태도로서 사물이 객체로서 고정됨과 함께 의미는 인식에 의해 구성됨을 의미한다. 이 둘 모두 이해(Verstehen)와 의미(Bedeutsamkeit)의 지평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의미화된 세계’ 내부의 존재양식이다. 이에 비해 나의 감재적 존재는 의미 이전, 도구 이전, 대상 이전의 층위에 위치한다. 감재적 존재의 특징은 요컨대 인식 이전, 도구 이전, 개념 이전, 주체-객체 분리 이전, 그리고 의미 이전의 감응·살갗·울림을 전제하고 있다. 말하자면 감응적 존재는 ‘무엇으로 쓰이거나 무엇으로 보이기 이전에 이미 서로 닿아 있는 존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감재적 존재는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전재(前在)이전의 존재’에 해당한다. 즉 도구적 이해가 발생하기 이전의 존재적 접촉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독일어로 말하면 ‘함께-느껴짐-있음’(Mitspurensein) 혹은 ‘현존하는 공명’(Anwesende Resonanz)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영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향 이전의 감응적 존재(Pre-intentional Affective Being)’이다. 하이데거는 서구철학적 전통(현상학적 전통)의 연속선상에서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도구중심적인 데서 출발하는 데에 반해 나는 자연중심적이고 비도구적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내가 하이데거와 달리, 감재적 존재를 새롭게 제안하는 것은 나의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사상(『네오샤머니즘』, 2018)과도 연결된다. 이것은 원시·고대인의 샤머니즘을 오늘날에 다시 부활시킴으로써 과학기술만능시대, 인공지능AI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셈이다. 네오샤머니즘은 세계를 다시 정령(spirit)의 눈으로 바라봄을 의미한다. 이를 오해 없이 좀 더 쉽게 말하면 세계를 영감(inspiration)의 눈으로, 영감의 네트워크와 작용과 감응과 울림으로 바라봄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후기에서 사중물(四重物, Geviert)을 주장하고 있는데 하늘, 땅, 신적인 것들, 죽을 인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중물을 보면 동양의 천지인사상(구조)에 기독교의 신을 조심스럽게 융합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신적인 것들’은 기독교의 인격신과 다르지만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천지인구조에 변형된(유일신에서 다소 완화된) 신을 포함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동양의 선불교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한국의 오래된 경전, 천부경(天符經)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일신’을 ‘신적인 것들’로 바꾸면서 기독교와 천지인사상을 통섭했다. 그리고 인간을 ‘죽을 인간’으로 말함으로써 죽음을 선구함에 따른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개시(開示)와 더불어 세계를 시적으로 보는 길을 열고 여기에 합류하였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Bento Spinoza, 1632∼1677는 그의 철학전체를 에티카(윤리학)라고 명명했다. 그에게 철학은 단지 진리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추구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윤리적이 될 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에게 철학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구원, 자유, 기쁨을 위한 삶의 기술 즉, “살아가는 기술로서의 철학=윤리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형이상학·인식론·심리학·정치학은 모두 윤리학(Ethica) 아래 통합되어 있다. 나도 철학의 목표에서는 스피노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물론이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죽음은 불행이나 공포, 그리고 삶의 한계상황에서 맞이하는 고통이 아니라 생물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생멸현상에 불과하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자기행위를 스스로 이해하는 상태이다. 스피노자에게 최고의 기쁨이자 구원은 자연(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상태이다. 나의 철학도 인공지능 AI시대를 맞아 인간이 자유와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스피노자는 존재의 자기-지속, 자기-보존, 자기-증가의 힘을 강조하는 코나투스(Conatus)를 주장했지만 나는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자연과의 감응(Resonance)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공지능 AI시대의 에티카―존재와 어울림』은 존재를 감각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존재의 감응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존재가 인간에게 도달하는 방식을 새로 정립한다. 감응적 존재론은 우리말로 ‘어울림(울림)의 존재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응적 존재론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문명적·철학적 맥락을 다원다층의 논리적 층위를 가지고 풀어내고자 한다. 종합적으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말했지만 나는 ‘존재와 어울림’을 말하고 있다. 감응존재론의 탄생도 철학의 시대적 요청인 셈이다. 나는 ‘감재적 존재’를 초석으로 해서 감응존재론과 『존재와 어울림』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 2025년 12월 22일, 동짓날에 회향하며 통일동산 우거에서 박 정진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