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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01 안나 제이콥슨의 집 02 홍정후 조사의 짧은 생애 03 풀턴 기포드 여사와 한국 04 무어 선교사의 고종황제 알현 요청 편지 사건 05 식전 파수 기도회를 아십니까? 06 1905년 평양 장로회신학교 재학생들 07 장로교회의 학습교인 제도 08 안준의 자기소개서와 공립협회에 보낸 편지 09 주공삼 장로와 평양 대부흥 소식 10 평양 숭실대학 제1회 졸업생 김두화와 변인서 11 강릉의 기독교 전래(傳來) 12 대구제일교회와 부산진교회 당회록 이야기 13 자원(紫園) 이수삼(李秀三) 전기 14 장로교 진흥운동과 진흥 전도지 15 교회당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교회법 위반이오!”를 외친 사건 16 앨리스 버츠의 사진첩에 남은 전흥순의 사진들 17 길진섭과 미운 고향 18 해방 전 한국에서 사역한 선교사 2세 19 소련 군정 문서를 통해 보는 조선사회민주당 20 소련군이 작성한 평정서(評定書) 속의 목사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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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11월부터 구리개 제중원의 책임을 맡게 된 에비슨(Oliver R. Avison)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여성 의사와 훈련받은 간호사의 파송을 요청했다. 하지만 1894년 5월에 에비슨이 제중원을 사직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간호사 파송은 지연되었다. 해외선교부는 같은 해 6월 4일 한국에 파송할 간호사를 임명했지만, 파송을 지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895년 4월 9일 서울에 도착한 간호사가 안나 제이콥슨(Anna P. Jacobson, 아각선雅各善, 1868-1897) 선교사다.
---p.11 서울 지역의 초기 장로교인 중에 홍정후(洪正厚, 1866-1899)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관학(館學) 유생(儒生) 출신으로 1893년 8월에 관학 유생에게 수시로 특별한 시제(試題)를 주어 응시하게 하는 임시 과거인 응제(應製)에 합격했다. 그가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892년 11월 말에 한국인 지도자들이 참석해 마펫과 기포드의 인도로 한 달 동안 진행된 사경회에 서상륜과 함께 정동(貞洞)교회의 대표로 참석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는 이 사경회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p.23 풀턴 기포드(Mrs. Fulton Gifford(Mary Lyman Whitney), 1838-1917) 여사는 기포드(1861-1900) 선교사의 어머니다. 1888년 3월에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내한해 활동하던 기포드 선교사는 1898년 10월 5일에 아버지 풀턴 기포드(Fulton Gifford, 1833-1898)가 별세한 후1) 혼자 지내던 어머니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기포드 여사는 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홀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왔다. 그때 나이가 이미 60세가 넘었다.2) ---p.33 3·1 운동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난 여러 부흥운동 중에, 1919년에 시작한 진흥운동(振興運動, The Forward Movement)은 교회의 갱신과 성장에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흥운동은 미국 북장로회의 ‘새 시대 운동(New Era Movement)’과 미국 북감리회의 ‘100주년 운동(Centenary Movement)’과 유사한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주일학교 운동, 부흥운동, 농촌계몽운동 등과 연계되어 진행되었으며,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하는 부흥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p.169 한국 교회사에서 ‘길진섭(吉鎭燮, 1907-1975)’이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큰형 길진형(吉鎭亨, 1891-1917)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작은형 길진경(吉鎭京, 1902-1989)은 3·1 운동에 참여하고 후에는 목사가 되었다. 이 형제들의 아버지는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명이며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유명한 길선주(吉善宙, 1869-1935) 목사다. --- pp.207-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