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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등장인물
서막 공자의 열정, 그 불후의 청년 정신을 기리며 1. 범부라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 55세에 천하를 향해 발을 내딛다 2. 이야기를 읽어나가기 앞서 알아두어야 할 것들 1장 공자는 왜 주유천하를 시작했나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1 2장 광야의 수난, 그리고 자견남자 스캔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2 3장 테러의 수난을 당한 끝에 상갓집 개라는 별명을 얻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3 4장 진나라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4 5장 세 번째 수난인 객잔의 혈투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5 6장 황야의 기아, 그리고 공문의 전등식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6 7장 초나라에서 좌절하고 은자들의 조롱을 받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7 8장 제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체면을 살려 귀국하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 8 종막 공자의 열정, 과연 헛된 수고로 끝나버렸을까 ● 미주:인용하거나 참고한 책들 ● 지은이 뒷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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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보기에도 심하다고 할 정도로 공자가 통곡을 했던 까닭은 안연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안연은 ‘황야의 기아’ 수난의 와중에서 열린 공문의 전등식에서, 공자가 공식적으로 인가한 공문의 넘버 투였다. 그로부터 안연은 공자의 이상을 완수할 차세대 주자로서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런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공자는 정신적인 대가 끊기는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 공문의 공식적인 넘버 투는 누가 될 것인가? 드디어 우리의 깍두기 형님 자로의 차례가 된 것일까? --- p.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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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서 나온 나는 기린대를 보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맙게 생각되어서 할머니께 얼마 안 되는 돈을 쥐어드렸다. 할머니는 몹시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받아주셨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힐끗 보니, 할머니는 누가 왔나 궁금해서 기린대로 올라온 아들에게, 내게 받은 돈을 슬며시 넘겨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다 똑같다! 이제는 장성해서 스스로를 돌보고도 남음이 있지만 모든 어머니에게 자식은 언제까지나 마음 졸이는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것이다.
--- p.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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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과 1장에서 공자가 주유천하를 시작한 까닭과 그 배경을 더듬어보고, 2장부터 8장까지는 주유천하의 경로를 본격 재구성한다. 사료와 각종 연구 자료를 통해 2500년 전 공자의 행적을 되살리고, 사이사이 현지의 유적 사진과 해당 장면을 표현한 공자성적도(고대 중국에서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들)를 실어 현장감을 더했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라는 제목으로 지은이의 실제 답사기를 덧붙였다. 빼션 로드passion road란 공자의 주유천하가 바로 열정과 수난의 길이었다는 뜻에서 지은이가 붙인 이름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 여러 시대를 통틀어 이름난 유적지를 방문한 기록이었다. ‘해동 선비 현종의 빼션 로드’는 오로지 공자의 행적만을 뒤쫓아 흔히 가기 어려운 깡촌(?)까지 훑은 기록으로, 중국 시골 마을의 순박한 인심이 주는 감동도 덤으로 얹혀 있다. 종막에서는 주유천하를 끝낸 뒤 공자가 어떻게 살다 죽었으며 사후의 평가는 어떠했는지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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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이 되기까지 변변한 관직도 얻지 못한 채 사설학원 강사로 연명한 사람,
50이 넘어 처음으로 소신을 펼칠 기회를 잡았으나 결국 몇 달 만에 자리를 내놓고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 그 뒤 세 번이나 임용될 뻔했으나 번번이 막판에 누군가 훼방을 놓아, 결국 단 한 번도 권력을 손에 쥐지 못했던 사람,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굶어죽을 뻔하기도 했던 사람,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아들이 먼저 세상 뜨는 것을 봐야 했던 사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춘추>라는 역사책 한 권 달랑 남긴 사람. 그가 바로 공자다. 오늘날 우리는 ‘공자’ 하면 흔히 책상 앞에 앉아 혼자 고고한 척 꼬장꼬장한 노인네를 떠올린다. ‘열정’보다는 ‘냉소’에 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공자는 노숙자 생활을 할 때 “상갓집 개” 꼬락서니라는 놀림을 받고는 껄껄 웃어넘기고(본문 3장), 명예욕에 사로잡힌 허풍선이라며 자신을 비웃는 은자(세상을 피해 은둔한 철학자)들을 따라가 열심히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으며(본문 256~257쪽), 제자인 안연을 존경해 “나는 그만 못하다.”고 고백하며 안연이 부자라면 자신은 그 밑에서 경리 노릇이라도 하겠다 말하고(243~244쪽), 예(禮)의 기초는 의(義)이니 마땅한 이치에 따를 뿐 전통이나 형식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82쪽). 공자는 관가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학자로서는 대단히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를 섬기는 제자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써주지 않으면 까짓것, 세간에 시달릴 것 없이 혼자 속 편히 살자 마음먹을 법도 한데,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란 인간 사회를 피해서 짐승들과 무리를 같이 하여 살 수는 없다. 천하에 도가 통한다면 나도 이를 바꾸려고 여러 나라로 쫓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225~227쪽)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러하리라. “천하가 어지러우면 어떻게 해서든지 바로잡으려고 해야지, 더럽다고 피해버리면 난세에 고통 받는 백성들은 어쩌란 말이냐? 이 세상이 이미 도가 통하는 곳이라면, 내 굳이 이렇게 사서 고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공자는 나이 칠순이 가까웠을 때에도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공자와 유가 철학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수천 년 동안 박제되고 왜곡된 공자 상을 깨뜨리고, 인간 공자의 본령을 먼저 이해한 다음에, 그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