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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춤추는 학과 구리듬
쑥샘마을에서 태어난 학
구리듬의 소년

2. 깨달음의 세계로
도불 찾아서
지공화상을 찾아서
나옹선사를 뵙고

3. 홍법의 땅으로
나옹선사와 더불어
삼산양수의 땅으로

4. 왕사와 태조 이성계
혹두타와 오얏 꽃
왕의 스승이 되다

5. 새나라 터를 한양으로
한양을 서울로 정하다
한양의 터전을 잡다

6. 새왕실의 터전을 잡다
왕실의 묘터를 잡다
도성의 터로 잡다

7. 한양을 만다라로
왕실의 불사를 주관하다
불도를 다시 세우다
한성중심의 만다라로

8. 대사와 태상왕
태상왕과 대사
가람을 보존하라
몸을 감추다

9. 흑두타의 영아행
남아 있는 글밭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
갓난아이처럼 산 삶

10. 가람속의 자취와 흔적
큰 발자국, 작은 손짓
가람 그리고 그림
가람 속의 발자취

저자 소개 1

1960년 3월 충남 온양 출생. 동국대 역사교육과를 나온 후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5년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동대90년지 간행위원회 간사와 동대100년사 편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역사교과서연구소 개소에 일익을 담당하며 초대 소장을 지냈고, 역사와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연구위원, 문화관광부 전통사찰지정 자문위원, 교육부 교육과정 심의회 역사소위원회 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과용도서 역사검정심의 위원, 서울시 전통사찰보존협회 위원, 화성시향토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및 감사, 대만 중앙연구원 문철연구소
1960년 3월 충남 온양 출생. 동국대 역사교육과를 나온 후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5년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동대90년지 간행위원회 간사와 동대100년사 편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역사교과서연구소 개소에 일익을 담당하며 초대 소장을 지냈고, 역사와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연구위원, 문화관광부 전통사찰지정 자문위원, 교육부 교육과정 심의회 역사소위원회 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과용도서 역사검정심의 위원, 서울시 전통사찰보존협회 위원, 화성시향토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및 감사, 대만 중앙연구원 문철연구소 방문연구원, 일본 불교대학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등 불교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를 넘나들며 불교역사 교육의 정립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무학대사연구-여말선초 불교계의 혁신과 대응』(혜안, 1999), 『고려후기 조선초 불교사 연구』(혜안, 2003), 『고려말 조선전기 불교계와 고승연구』(혜안, 2005), 『고려시대 불교계와 불교문화』(국학자료원, 2011), 『조선시대 불교계 고승과 비구니』(혜안, 2011), 『역사와 선을 접목한 사학자 황의돈』(동국대 출판문화원, 2023) 등이 있다. 공저로는 『조계종사-고중세편』(조계종출판사, 2004), 『선각국사 도선』(영암군, 월출산 도선국사연구소, 2007), 『한국천태종사』(천태종, 2010), 『보각국사 일연』(군위군,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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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4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1802037

책 속으로

대사는 한양을 국도를 정할 때 1394년 무렵 이성계의 묏자리인 건원능 터를 잡았다. 이러한 사실은 『태조실록』이나 『태종실록』에는 전혀 찾아지지 않고 오히려 검교참찬 의정부사 김인귀가 양주 검암산에 길지가 있다고 말하여 영의정부사 하륜 등이 정한곳이라 하여 대사가 건원능 터를 잡았다는 사실만 보일 뿐이다. 이는 당시 불교가 배척받고 대사가 혹평받던 시대적인 분위기 탓이다.

다만 태조는 국도를 정하면서도 자신의 묘터를 정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태조가 생전에 자신의 묘터를 잡으려 했던 사실은 『태조실록』에만 6차례나 기록되어 있다. 1394년(태조 3)부터 1394년까지 목사동, 과천, 안암동, 광주, 행주 등 경기일원에서 묘터를 찾았다. 행주에서는 묘터에 대한 풍수가의 의견이 엇갈리자 매질까지 할 정도였다.

태조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창업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에 태조는 한 나라를 창업한 성조로서 한양을 국도로 정한후 궁궐과 도성을 짓고 그 다음 그들의 혼을 담을 왕실의 종묘와 사직을 지었다. 그런 후 왕실을 보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태조와 그 후손이 묻힐 능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가 1396년(태조 5)에 세상을 떠나자 지금의 정동 MBC문화체육관 언덕인 서부 황화방에 능을 만들었다. 태조의 젊은 시절 우물가에서 버들잎 한 줌을 띄워서 물을 천천히 들게 해서 만났다는 그의 사랑하는 부인이 죽자 무덤이라도 도성 밖에 내보낼 수 없다하여 경복궁 맞은편 언덕에 능을 자리잡게 하였다.

---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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