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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춤추는 학과 구리듬
쑥샘마을에서 태어난 학 구리듬의 소년 2. 깨달음의 세계로 도불 찾아서 지공화상을 찾아서 나옹선사를 뵙고 3. 홍법의 땅으로 나옹선사와 더불어 삼산양수의 땅으로 4. 왕사와 태조 이성계 혹두타와 오얏 꽃 왕의 스승이 되다 5. 새나라 터를 한양으로 한양을 서울로 정하다 한양의 터전을 잡다 6. 새왕실의 터전을 잡다 왕실의 묘터를 잡다 도성의 터로 잡다 7. 한양을 만다라로 왕실의 불사를 주관하다 불도를 다시 세우다 한성중심의 만다라로 8. 대사와 태상왕 태상왕과 대사 가람을 보존하라 몸을 감추다 9. 흑두타의 영아행 남아 있는 글밭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 갓난아이처럼 산 삶 10. 가람속의 자취와 흔적 큰 발자국, 작은 손짓 가람 그리고 그림 가람 속의 발자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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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한양을 국도를 정할 때 1394년 무렵 이성계의 묏자리인 건원능 터를 잡았다. 이러한 사실은 『태조실록』이나 『태종실록』에는 전혀 찾아지지 않고 오히려 검교참찬 의정부사 김인귀가 양주 검암산에 길지가 있다고 말하여 영의정부사 하륜 등이 정한곳이라 하여 대사가 건원능 터를 잡았다는 사실만 보일 뿐이다. 이는 당시 불교가 배척받고 대사가 혹평받던 시대적인 분위기 탓이다.
다만 태조는 국도를 정하면서도 자신의 묘터를 정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태조가 생전에 자신의 묘터를 잡으려 했던 사실은 『태조실록』에만 6차례나 기록되어 있다. 1394년(태조 3)부터 1394년까지 목사동, 과천, 안암동, 광주, 행주 등 경기일원에서 묘터를 찾았다. 행주에서는 묘터에 대한 풍수가의 의견이 엇갈리자 매질까지 할 정도였다. 태조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창업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에 태조는 한 나라를 창업한 성조로서 한양을 국도로 정한후 궁궐과 도성을 짓고 그 다음 그들의 혼을 담을 왕실의 종묘와 사직을 지었다. 그런 후 왕실을 보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태조와 그 후손이 묻힐 능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가 1396년(태조 5)에 세상을 떠나자 지금의 정동 MBC문화체육관 언덕인 서부 황화방에 능을 만들었다. 태조의 젊은 시절 우물가에서 버들잎 한 줌을 띄워서 물을 천천히 들게 해서 만났다는 그의 사랑하는 부인이 죽자 무덤이라도 도성 밖에 내보낼 수 없다하여 경복궁 맞은편 언덕에 능을 자리잡게 하였다. ---pp.118-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