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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ichiro Hirano,ひらの けいいちろう,平野 啓一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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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방한 상상력, 문명의 그늘을 꿰뚫어보는 혜안
인공 애완동물이 살아 있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한 게 아니라, 소유하면서부터 비로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애완동물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혹 창조에 대한 우리 무의식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해 로봇 동물을 만들고, 애완동물에게 쏟는 것보다 더 보편적인 애정을 로봇 동물에게 쏟게 될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문명의 우울』은 히라노 게이치로가 한 일간지에 2년간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주로 시사적인 사건과 현상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소설가로서 그의 강한 자의식은 저널리즘의 관점과는 차별화되는, 그렇다고 신변잡기적인 한담도 아닌 그만의 고유한 에세이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책에는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소설가로서, 또 현대 일본의 젊은이로서―관심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 전체를 포괄하는 관심은, 말하자면 현대의 과학기술과 여러 가지 현상 이면에 있는 문명 그 자체의 우울.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는 제목 ‘문명의 우울’은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로봇 강아지나 인공장기에 대한 그의 논의는 매우 인상적이다. 중세와 19세기와 현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은 이십대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세상을 보는 그만의 특별한 눈 그렇다고 『문명의 우울』이 『일식』과 『달』의 산문판인 양 복잡하고 난해한 것은 아니다. 글에 담긴 사유의 깊이는 만만치 않지만, 작가 스스로도 연재글인 만큼 자유로운 스타일로 썼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비교적 평이하고 날렵한 문장으로 씌어져 있다. 때로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게 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나 소소한 사생활을 소재로 삼기도 하는 그의 글쓰기는, 『일식』 『달』, 그리고 『장송』의 작가로서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그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살짝 ‘배반’해, 마치 똑똑한 옆집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도 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우울』은, 그의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한번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생각의 여운에 잠기게 하는 빼어난 산문이다. 그의 소설을 읽었다면 반드시 참조할 만한 텍스트 한 가지 덧붙여, 『문명의 우울』에 반영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일관된 관심과 주제는 이 산문집을 『일식』 『달』 『장송』과 같은 그의 작품들의 곁에 놓이는 이른바 ‘파라텍스트’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가 근작 『장송』을 집필하는 중에 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가 펼쳐나간 사유들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만하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이 글의 연재와 함께 19세기 중엽의 유럽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어서 진보와 문명이라는 당시 사회를 천천히 뒤덮던 매우 강력한 관념과 세기병으로서의 우울과의 관련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문명의 우울’이라는 제목을 고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후기’ 중에서 또 책의 한 부분에서, 열쇠의 물질성과 그것이 감추고 있는 비밀과의 관련성에 대한 독특하고도 치밀한 논의를 읽은 독자라면, 예컨대 『장송』에서 심상하게 스쳐가는 이런 한 구절, ……그것은 열쇠처럼 확실하게 비밀에 접근하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열쇠처럼 견고하게 어떠한 복제도 거부하는 것이었다. 라는 비유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그의 꼼꼼한 독자에게만 주어지는 책읽기의 재미가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의 팬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