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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고현정 - 밀란 쿤데라를 생각함 길상호 - 그 노인이 지은 집 김지혜 - 이층에서 본 거리 박옥순 - 개신고물상 서광일 - 복숭아 신혜정 - 스프링 위를 달리는 말 이가희 - 젓갈 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이선희 - 찾잔 앞에서 장만호 - 수유리에서 정임옥 - 뿌리 조유인 - 금관 2. 시조 박지현 - 눈 녹는 마른 숲에 정경화 - 원촌리 겨울 홍라나 - 보길도 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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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볕에 앉아 졸고 있던 고양이가 가늘게 눈을 뜬다 수염을 당겨본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다 등을 활선처럼 구부린다 앞발을 쭈욱 뻗으며 온몸의 털을 세워본다 그늘은 어디쯤인가 幻想은 어디쯤인가 졸음에 겨운 눈을 두리번거린다 난간 아래에 굴비 두름을 줄줄이 꿴 트럭 한 대가 쉬파리를 부르며 멈춰져 있다 백미러에 반사된 햇빛이 이글거리며 눈을 쏘아댄다 하품을 멈춘 고양이, 맹수의 발톱을 안으로 구부려 넣는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선을 거두고 어슬렁, 난간 위의 시간으로 발을 뻗어본다 빛의 알갱이들의 권태의 발끝에 채여 후다닥 흩어진다 권태가 이동할 때마다 幻想도 한 걸음씩 비켜 선다 이윽고 권태가 지나간 난간 위로 우글거리며 모여드는 햇빛,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쩌억쩍 하품을 뿜기 시작한다
--- p.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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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뿌리에 앉아 잠이 들었다
뿌리가 말을 걸어왔다 바람이 이따금씩 그 말을 끊어놓았다 빈깡통이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다시 뿌리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도 바람이 귀를 막아버리자 뿌리가 가지 끝으로 손을 내뻗었다 만져지지 않았다 네가 만져지지 않던 지난날의 내가 저 뿌리와 같았음을 알겠다 네 마음 끝까지 오르지 못한 내가 나무의 빈 물관에 불과했음도 이제는 알겠다 나무 뿌리에 앉아 다시 잠이 들었다 네가 잠 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잠에게 말을 걸자 꽃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침 가지 끝에 매달린 뿌리를 본다 ---p.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