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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1 글귀는 아름답고 문장은 굳세어 광한전 백옥루에 들보를 올리며 2 홀로 울리는 거문고 소리 소꿉친구에게 | 손톱에 봉선화 물 들이며 | 사계절의 노래 봄· 여름· 가을· 겨울 | 우연한 느낌을 쓰다 1-4 | 흥이 나는 대로 읊다 1-8 | 봄날의 느낌 | 하곡 오라버니께 | 둘째 오라버니의 견성암 시에 차운하다 1· 2 | 적막한 마음 | 아이들 죽음에 곡하며 3 그립고 가난한 마음 그네 타기 노래 | 상강의 노래 | 막수의 노래 | 가난한 여자의 탄식 | 장간 마을의 노래 | 강남에서 부르는 노래 | 죽지사 | 서릉의 노래 | 강둑 위에서 부르는 노래 | 버들가지에 부친 노래 | 횡당 물가에서 | 밤에 옷을 짓다가 | 원망 | 가을의 설움 | 밤 깊어 변방의 님 그리며 | 손 한림 북리에 차운하다 | 최국보 체를 본받아 짓다 4 더 너른 세상을 품으니 젊은이의 노래 | 장안에서 그대를 만나 | 대제를 거닐며 | 청루의 노래 | 갑산에 유배가는 하곡오라버니께 | 둘째 오라버니의 고원 망고대 시에 차운하여 1-4 | 변방으로 떠나며 | 변방에서 | 변방에 들어가며 | 성 쌓는 백성들의 원망 | 장사꾼의 노래 | 심맹균의 그림을 보고 | 이의산의 시를 따라 짓다 1· 2 | 심아지의 체를 본떠 짓다 1·2 5 서궁에서 나와 미앙궁으로 궁녀의 노래 1-20 | 도를 닦으러 가는 궁녀에게 | 자수궁에서 자며 여도사에게 주다 | 황제가 천단에 올리는 제사 | 신선이 떠난 뒤 | 신선 잔치 끝나고 | 꿈을 꾸고 짓다 | 허공을 거닐며 6 광활한 신선 세계를 노닐다 유선사 1-87 7 서리 맞은 푸른 연꽃 꿈에 광상산을 노닐고 쓴 시 서문 | 광한전 백옥루에 들보를 올리며 원문 부록 난설헌시집 발문_허균 | 서_주지번 | 제사_양유년 해설 쓰는 사람, 허난설헌 원제목 찾아보기 |
許蘭雪軒,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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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는 한 필 고운 비단 / 털어내고 닦으니 그 빛깔 영롱한데
두 마리 봉황 마주 보게 수놓았더니 / 그 무늬 어찌나 찬란하던지. 몇 해나 상자 속에 간직하다가 / 오늘 아침 꺼내어 낭군 드리오니 그대 바지 짓는 건 아깝지 않으나 / 부디 다른 사람 치마는 만들지 마오. ---「흥이 나는 대로 읊다 3수」중에서 손에 가위 잡고 옷감 자르니 / 추운 밤에 열 손가락 곱아오네 남들 시집가는 옷만 짓고 / 해마다 나는 홀로 잠드는구나. ---「가난한 여자의 탄식 3수」중에서 산서성 십육 주를 새로 찾고서 / 말 안장엔 월지국 왕의 머리 매달고 돌아오네. 강가의 백골들 묻어주는 사람 없어 / 백 리의 모래사장에는 붉은 피 흐르네. ---「변방에 들어가며 2수」중에서 자줏빛 피리 소리에 붉은 구름 흩어지고 / 주렴 밖 서리 찬데 앵무새 서로 부른다. 깊은 밤 외로운 촛불, 비단 휘장 비추고 / 이따금 성근 별 은하수 건너가네. 똑똑 물시계 소리 바람결에 들리는데 / 이슬 젖은 오동나무엔 밤벌레 소리. 밤새 비단 손수건 적신 눈물방울들 /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네 ---「신선이 떠난 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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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으로 당당히 쓰다
16세기 후반 조선에서 태어나 살다 간 허난설헌의 삶은 글 쓰는 자, 시인으로 요약된다. 그 삶은 당시 조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한 어떤 삶의 형식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며 훗날 문명을 떨친 남자형제들과 더불어 글을 익히고 썼지만 15세 혼인 이후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어진 삶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선비들의 전유물인 한시를 통해 삶의 애환, 감정과 바람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보배 기운 고이 품은 순금에/ 반달 달빛 새겨 만들었지요. 시집올 때 시부모님 주신 것으로/ 제 붉은 비단치마에 매주셨다오. 이제 길 떠나는 낭군께 드리니/ 부디 그대가 차고 다니시오. 길에서 잃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새사람 허리띠에 달아주진 마오. _〈흥이 나는 대로 읊다〉 4수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자의식과 비판적 시각을 키운 난설헌은 규방에 갇혀 지내야 하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표현하는 데 솔직하고 자유로웠다. 생활언어의 구사, 감각적인 시어 사용, 활달하고 발랄한 상상력 표출 등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능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규방을 넘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 시는 일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통찰까지 이어진다. 전쟁을 직접 겪지 못한 처지지만 전쟁터 광경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단순히 참혹상만이 아니라 죄 없이 죽어가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위정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도 느낄 수 있다. 산서성 십육 주를 새로 찾고서 / 말 안장엔 월지국 왕의 머리 매달고 돌아오네. 강가의 백골들 묻어주는 사람 없어 / 백 리의 모래사장에는 붉은 피 흐르네. _〈변방에 들어가며〉 2수 이는 ‘열사의 풍모’로도 이해되지만, 이런 소위 남성적인 풍취의 여러 시들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여 난설헌을 둘러쌌던 현실의 벽을 느끼게 한다. 그치지 않은 논란, 오명의 실체 허난설헌의 시는 허균이 지어서 세상을 속였다는 말이 있지만 허균과 허봉보다 격조가 높아서 미칠 수 없는 수준이다._남용익 세 그루 보배로운 나무가 초당 집안에 서 있는데 제일가는 재주는 경번[허난설헌의 자]에게 있구나. _매천 황현 부인의 글 같지 않다. 당나라 대가의 분위기와 열사의 기풍이 있으니 한 점도 세상에 물든 자국 이 없다._유성룡 허난설헌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자신의 이름의 문집을 가졌고 중국에서 먼저 이름을 떨쳤지만, 조선의 남성 문인들 사이에서는 인정과 폄훼의 시선이 교차했다. 특히 실학자 박지원과 이덕무 같은 이는 부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박지원은 “여성이 시를 짓는 일은 그리 추켜세울 일은 아니지만 중국까지 알려지다니 뛰어나긴 하다. 그러나 호와 자까지 알려진 것은 너무 과하니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했고 이덕무 역시 “허난설헌의 시는 결함이 많고 맹랑하며 …중국 시인의 시구를 갖다 썼다”라며 허난설헌의 시가 표절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위작과 표절의 논란은 여러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세밀한 문헌 고증을 바탕으로 반증하는 연구들 역시 이어져왔다. 이 책의 해설에서도 반박의 근거를 들고 있다. 한시 고유의 기법으로서 일부 표현의 공유라든가 난설헌이 즐겨 쓴 당풍 시, 악부시의 특성에서 비롯된 중복 사용 등의 예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며 진위를 가려보는 것은 독자의 권리이기도 하겠다. 허난설헌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푸른 바다 옥빛 바다를 넘보고 푸른 난새 오색 난새에 기대어 있네 연꽃 스물일곱 송이 찬 서리 위에 붉게 떨어지네 _〈꿈에 광상산을 노닐고 쓴 시〉 난설헌은 글 쓰는 여자라는 삶의 형식이 부재한 시대에 태어나 글로 자신의 삶을 완성했지만, 그가 결국 도달한 표상은 서리 맞은 연꽃에 그치고 말았다. 일찍이 재능이 알려졌지만 그의 글을 인정하는 곳은, 현실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세계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까지 글 쓰는 여자의 삶을 밀고 나간 난설헌은 시인으로서 확실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난설헌의 시 세계는 “활달하고 자유로우며 호방하면서도 섬세한 자기만의 감각과 정서, 사상”을 보여준다. 이제 허난설헌을 편견 없이 작품으로 대하는 것, 그가 썼던 시문을 제대로 읽는 것이 비로소 그를 ‘쓰는 사람’, 한 ‘작가’로 온전히 대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