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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완판 71장본 정성 다해 얻은 귀한 딸 곽 씨 부인의 죽음 동냥젖으로 자라다 심학규 백미 삼백 석 남경 상인을 찾아가다 승상 부인 하직하고, 심 봉사 이별하고 아득히 먼 물길 따라서 거친 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용궁에 간 심청과 두 어머니 도화동에 나타난 뺑덕 어미 연꽃이 맺어 준 인연 황후 심청, 맹인 잔치를 열다 황성 가는 심 봉사와 안 씨 여인 반가운 마음에 두 눈 활짝, 모든 맹인 눈도 짝짝 심청 부녀 뒷이야기 경판 24장본 거듭되는 불행 공양미 삼백 석 남경 상인을 찾아가다 통곡의 이별 인단소에 몸을 던지다 용궁에 간 심청 연꽃이 맺어 준 인연 왕후 심청, 맹인 잔치를 열다 눈물겨운 부녀 상봉 해설 《심청전》을 읽는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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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남경 상인들이 북경과 여러 나라를 왕래하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데 해마다 큰 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유리국 지역에 인단소라는 물이 있고, 그 물에 사나운 귀신이 있어 보물과 비단을 많이 실은 배는 물의 신께 사람을 바쳐 제사를 지내야만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처녀를 사다가 인단소에 제물로 바치곤 했다.
마침 그들 중 한 사람이 와서 마을마다 사람을 사겠다고 외치며 다니니 심청이 듣고 기뻐하며 급히 나가 물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려 하시오?” 그 사람이 눈을 들어 심청을 보니 모습이 세속 사람과 같지 않았다. 두 눈이 샛별처럼 밝고 두 눈썹은 봄 산을 그린 듯하고 입술은 붉은 연지를 찍은 듯했다. 귀는 오뚝 솟았고 어깨는 나는 제비 같으며 가는 허리는 비단으로 묶은 듯했다. 용모가 빼어나 세상에서 보기 드물고 타고난 아름다움이 완전했다. 그러나 옷은 다 떨어져 겨우 살을 가릴 정도에 몸은 야위었고 흐트러진 머릿결 사이로 보이는 표정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좁은 구멍에 있는 다람쥐가 거센 바람을 맞아 움츠린 듯했고, 낭랑한 음성은 깊은 호수에서 어린 봉황이 울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로웠다. --- p.143~144 심청이 그날부터 곰곰 생각했다. 눈 어두운 백발 부친과 이별하고 죽을 일과, 세상에 난 지 열다섯 해 만에 죽을 일이 모두 아득해 식음을 전폐하고 근심으로 지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엎질러진 물이요, 쏘아 놓은 화살이라. 하루하루 떠날 날이 다가오니 마음을 고쳐 생각했다. ‘내가 살았을 때 아버지 옷이라도 잘 마련해 드려야겠다.’ 봄가을 의복 상침질로 겹것 짓고, 여름 의복 한삼 고의 박음질로 지어 놓고, 겨울 의복 솜을 두어 보자기에 싸서 농에 넣었다. 푸른 무명으로 갓끈 접어 갓에 달아 벽에 걸고, 망건 꾸며 당줄 달아 걸어 두고, 배 떠날 날 헤아리니 하룻밤이 남았다. 밤은 깊어 은하수가 기울었다. 심청이 촛불을 향해 앉아 무릎 꿇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무리 효녀라도 마음이 온전할까. --- p.49~50 심청이 여쭈었다. “못난 딸자식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주겠습니까. 남경 뱃사람들에게 인당수의 제물로 제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옵니다. 저를 마지막으로 보옵소서.” 심 봉사가 이 말을 듣고,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말이 참말이냐? 애고애고, 이게 웬 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너 나더러 묻지도 않고 네 마음대로 했단 말이냐? 네가 살고 내 눈 뜨면 그것은 마땅하나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 네 이놈, 상놈들아. 장사도 좋지만 사람 사다 제사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하느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가 없겠느냐? 눈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아이 나 모르게 유인해서 값을 주고 산단 말이냐? …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냥 두고 보는 거요?” --- p.54~55 두 활개를 쩍 벌리고 뱃전에 나서 보니 맑고 푸른 바닷물이 월리렁 출렁 뒤둥구르며 물농울 쳐서 거품이 북적거리는구나. 심청이 기가 막혀 뒤로 벌떡 주저앉는다. 뱃전을 잡고 기절하듯 엎드리니 그 모습은 차마 못 볼 지경이라. 심청이 다시 정신을 차려 할 수 없이 일어나, 온몸을 잔뜩 숙여 치마폭을 뒤집어쓰고는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가 뛰어들며 외쳤다. “아버지, 나는 죽소!” 뱃전에 한 발이 머뭇하더니 거꾸로 풍덩 빠지는구나. 살구꽃이 비바람에 휩쓸리듯, 밝은 달이 물속에 잠기는 듯하니, 아득한 바닷속에 곡식 한 알 떨어진 것처럼 심청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p.73~75 황후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황제께 여쭈었다.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이 왕의 신하인데, 백성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홀아비, 과부, 고아, 늙은이입니다. 그중에 가장 불쌍한 이는 병든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맹인이 더하니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그들이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어둡고 밝은 것, 길고 짧은 것, 부모와 자식을 보아도 보지 못하는 원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그러면 그 가운데 혹시 저의 부친을 만날 수도 있으니 이는 저의 소망일 뿐 아니라 나라에 화목과 평화를 가져올 일 아니겠습니까? 어떠신지요?” 황제께서 이 말을 듣고 크게 칭찬하며, “과연 여인 중의 요순임금이오. 그렇게 하시지요.” --- p.9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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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이야기 흐름에서 단연 이상한 점이 있다면 심청의 맹인 잔치다. 승상 부인의 도움도 거절하고 아버지와 생이별해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켰는데, 왜 심 봉사는 눈을 뜨지 못했을까? 그것을 예상한 듯 맹인 잔치를 여는 심청의 행동은 어떤 의미일까? ‘부모를 위한 지극한 효도’로 정리되고 마는 이 작품의 재미는 의문을 품고 읽을 때 시작된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 하나로 바다에 뛰어든 열다섯 소녀 소외된 이들의 세상을 밝혀 온 백성을 돌보는 연꽃이 되다 돌봄의 방향에 대한 고민, 고통을 돌보는 국가를 요청하는 목소리 심청은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사방으로 품을 팔고, 이웃에게 도움을 청한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딸을 길러 낸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도화동 사람들 또한 심청의 분투에 십시일반 힘을 보탠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눈을 뜨고 비장애인이 되는 기적은 큰 대가를 요구한다.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에, 심청은 서러움과 공포를 ‘효’라는 가치 아래 모두 묻고 ‘기꺼이’ 죽음을 향해 간다. 효녀라는 사회적 승인 속에 자라난 심청에게 돌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남겨질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결정을 아버지와 전혀 의논하지 않는 이유다. 스스로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심청의 선택은 오히려 아버지를 고립되고 소외된 존재로 만든다. 용궁에서의 환대와 어머니와의 재회는 그런 심청에게 자신을 돌볼 기회가 된다. 이후 심청은 황후의 자리에 올라 ‘소외된 이들을 향한’ 돌봄으로, 아버지는 물론 온 백성을 위한 돌봄으로 나아간다. 심 봉사는 비로소 모든 맹인과 함께 눈을 뜬다. 맹인 잔치는 심청의 성장을 보여 주고 돌봄의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개인과 마을 공동체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고통을, 국가 차원에서 돌보기를 요구하는 조선 민중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의문이 무수하다. 주인공은 분명 심청인데, 완판본은 심 봉사의 갖은 고생과 음담패설과 화려한 말년을 어째서 그토록 상세히 묘사할까? 뺑덕 어미는 능지처참이라는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의 나쁜 행실이 남경 상인들의 인신매매보다 악독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고전을 정전(正典)으로만 읽지 않을 때,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심청전》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첨예하게 다루는 빈곤, 장애, 여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 이 책은 청소년 독자를 그 입체적인 독서의 즐거움으로 안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