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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초
- 파란 피 - 파이널 스트라이크 - 추리 - 죄의 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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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이야. 버스가 막 너한테 돌진했잖아? 그때 네가 갑자기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어. 휙 사라지더니 옆에 다시 나타났어. 네가 빛으로 변신한 줄 알았다니까. 아마 내가 너무 놀라서 착각한 거겠지?” “설마, 나 변신 같은 거 못 해. 그때 너무 놀라서 어떻게 피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아.” 그러나 시월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았다. --- p.28 중에서
“넌 몰랐겠지만 나는 던지는 거리를 1미터씩 계속 늘리고 있어. 이렇게 하면 나중에는 100미터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옛날 중국의 무림 고수들은 나무를 심어 놓고 매일 뛰어넘는 연습을 했대. 나무는 아주 천천히 자라니까 몇 년이 지나면 엄청난 점프력의 소유자가 되는 거지.” 경준이 듣기에도 그럴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무 중에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게 자라는 종류도 있는데 그런 나무를 심어 놓고 매일 연습해도 인간이 그보다 높게 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니까. --- p.39 중에서 만약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 지능체라는 것을 알면 그런 고민이 줄어들까? 자기만 인간이 아니니까 따돌림을 받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할까? 경준은 때로 친구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친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 p.57 중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치미 떼지 마.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잖아?” 경준은 속으로 멍청한 박사들을 욕했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가 끝까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떻게?” 인화는 경준을 보고 차갑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문구용 칼을 꺼냈다. 경준이 으악 소리를 질렀다. 인화는 오른손 약지에 칼날을 살며시 대었다. 피부와 똑같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표면이 찢기면서 파란 물방울이 배어 나왔다. “봐, 피가 파랗잖아? 피가 파란 인간이 어디 있어?” --- p.61 중에서 엘리베이터는 경쾌한 종소리를 내며 멈췄다. 진짜 종소리가 아니라 흉내 낸 가짜였다. 종소리도 가짜고 인화도 인간처럼 보이지만 가짜였다. 세상 전체에 정교한 거짓이 넘쳐나서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 p.65 중에서 “박사들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인공 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진짜 사람처럼 생각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 거야. 처음부터 사람이었다면 똑똑해지고 나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나는 사실 네가 말한 걸 듣고 나서 아무리 고민해도 네가 사람처럼 느껴졌어.” “그랬을 거야.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인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다음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난 사람이 아니야. 사람일 때의 기억이 있어도 사람이 될 수 없어. 그때의 인화라는 아이와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야.” --- p.71 중에서 “격투기에서 사람을 때리는 건 괜찮잖아요? 그건 폭력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게임도 마찬가지예요. 전 잘못한 게 없어요.” 선생님은 연성을 무작정 혼낼 수 없음을 알았다. 그전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연성은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덧붙였다. “선생님, 준희는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니에요.” 그 말이 차가운 공기처럼 두 사람의 가슴을 얼어붙게 했다. --- p.98 중에서 “추리라는 건 말이지, 사실은 복잡한 계산보다 직감에 가까워. 어떤 물체를 보자마자 팍 떠오르는 거야. 그러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져. 내가 왜 그걸 알게 된 걸까? 그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 본 다음에야 설명할 수 있게 되지. 느낌이 먼저고 설명이 나중이야.” --- p.128 중에서 “장담한다니까? 이거 하나 빼도 안 쓰러진다고. 그 자리에만 구멍이 하나 생기는 거야.” “호재 말이 맞는 것 같아. 젠가도 하나 뺀다고 안 무너지잖아.” 태우까지 거들고 나서니까 호재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들었지? 안 무너진다니까?” 호재는 일부러 자기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가장 큰 돌을 집었다. 더 작은 것을 고를 수도 있었건만 자기의 말을 증명해야 한다는 욕심이 과한 행동을 하게 했다. 그 돌에 손이 닿는 순간 이번에는 심장까지 찌릿한 감각이 전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자존심 상하게 작은 걸로 바꾸기는 싫었다. “야, 야, 하지 마.” 영서가 손을 내저었다. 그때 영서는 태우가 한 말의 약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젠가를 할 때 처음부터 블록 하나를 뺀다고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속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탑의 구조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그때는 블록 하나만 빼도 대참사가 벌어진다. --- p.155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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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다섯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책에 실린 다섯 이야기 「1초」, 「파란 피」, 「파이널 스트라이크」, 「추리」, 「죄의 무게」는 추리, SF, 리얼리즘, 공포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모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하나의 주제로 가지런히 여며진다. 작가는 내면의 상처, 차별, 인간의 욕망과 오만, 희생과 속죄 같은 문제를 그대로 쓰지 않고 판타지적 세계, 비틀린 시스템, 특수한 규칙으로 치환해 작품 구석구석에 숨겨 놓았는데, 숨겨진 의미들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메시지와 연결되는 맥락을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 1초 ] 그러나 시월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았다. 매년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부터 1월 1일 0시 0분 0초가 되기까지 1초 동안 시월이는 시간을 빼앗긴다. 해가 바뀌는 순간 딱 1초간 의식을 잃는 시월이. 열 살인 시월이가 살아온 평생 동안 잃어버린 10초라는 시간은,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순간 10초 동안 세상을 멈추게 해 시월이의 생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이렇듯 작가는 기적을 기적같이 보이지 않게 하는 판타지를 일상을 풍경으로 펼쳐 보이며 독자에게 낯선 감각을 선사한다. 시월이가 죽음 목전에서 생명을 구한 기적은 착각일까, 아니면 신 또는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온 구원일까? 시월이의 경험이 실제인지 정신착란인지 애매모호하게 그려진 서사는, 우리가 어떤 존재하는 현상을 외부에서 제대로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세계는 우리의 인식을 통해 실재한다는 인식론적 관점을 상기시킨다. [ 파란 피 ] “그래도 넌 내 유일한 친구야.” 경준은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 학생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정 학생은 같은 반 친구인 인화이다. 인간처럼 보이는 인화는 사실 인공 지능체로 인공 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소의 실험 대상이다. 어느 날 인화는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칼로 베어 파란색 피를 보여 주며 “봐, 피가 파랗잖아? 피가 파란 인간이 어디 있어?”라고 경준에게 묻는다. 인공 지능체 인화가 자신의 ‘파란 피’를 통해 인간이 아님을 자각하자, 그 비밀을 알고 있던 친구 경준은 ‘관찰자’와 ‘친구’의 경계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인공 지능 시대의 근본이 되는 철학적 사유와 SF 장르의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 파이널 스트라이크] “게임에서라도 복수하려고.” ‘레이디언트 소울’ 게임을 즐기는 연성은 같은 반 친구 준희에게 ‘똥개’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당한다. 현실의 교실에서 연성은 준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지만, 게임 속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하드코어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실력자인 연성은 게임 속에서 준희의 캐릭터를 반복해서 쓰러뜨린다. 현실과 달리 게임 속에서는 준희를 압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쾌감에 사로잡힌 연성의 플레이는 점점 더 과격해지고, 결국 준희는 이 일로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담임과의 상담에서 연성은 “게임 시스템일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게임 서사를 통해 시스템이 허락한 폭력과 현실의 폭력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 추리 ] ”이제 추리의 힘을 알았겠지?” 쉬는 시간마다 추리 소설을 읽는 아영에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이런 소설은 읽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라고 시비를 건다. 그러자 아영은 “왜 소용이 없어? 내가 증명해 볼게.”라며 맞선다. 작가는 아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소설 속 허구’로 치부되는 ‘추리’라는 사고 방식 자체를 증명한다. “추리라는 건 말이지, 사실은 복잡한 계산보다 직감에 가까워. 어떤 물체를 보자마자 팍 떠오르는 거야. 그러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져. 내가 왜 그걸 알게 된 걸까? 그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 본 다음에야 설명할 수 있게 되지. 느낌이 먼저고 설명이 나중이야.”라는 아영의 대사는 추리는 논리가 아니라 인지의 방식으로써 일상 속에서도 작동하는 사고 방식임을 뜻하며 독자도 ‘추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넌지시 전한다. [ 죄의 무게 ] 이런 결과를 원한 게 아니야. 나는 그저. 호재는 ‘입산금지’라는 팻말이 걸린 학교 뒤편 산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 꼭 들어가 보겠다”고 장담했고,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영서, 태우, 승아와 함께 출입이 금지된 산에 들어간다. 산속에서 실수로 돌탑을 건드려 무너뜨린 아이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는데, 그 후 ‘공물을 바치면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게 된다.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아이들은 매달 돈을 바치기 시작한다. 처음 장난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은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짓누르는데……. 믿음과 권력의 관계, 공범의 구조, 죄책감 같은 화두를 통해 죄는 숨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