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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우유와 바나나 우유
이 구역 미친 개 북에서 온 알바생 거봉 꼼장어집 왕자 내 스승은 욕하지 마시오, 동지! 대한민국 십 대가 가장 잘하는 세 가지 북한 태권도와 남한 태권도 서원시 태권도 협회장 박용상 꼭 우승하겠슴다 미래가 달린 줄타기 이미 결정된 우승자 사라진 수정 개 짖는 소리 태권 소녀 팬클럽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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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거봉은 등굣길에 편의점에서 평소에 사던 빵과 바나나 우유 말고도 딸기 우유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수정의 책상 위에 딸기 우유를 기세 좋게 내려놓자, 창가를 물끄러미 보던 수정이 거봉을 힐끗 올려보았다. 우유를 내려놓을 때의 패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막상 수정이 쳐다보자 거봉은 다소곳하게 말했다. “먹을래?” 수정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지금 시비 거는 거냐?’였다. “뭐, 그냥…….” 거봉은 막상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진짜 이러고 싶지 않은데, 네가 유난히 신경이 쓰여서 그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거봉이 한 말은, “하하하, 오다가 주웠어.”였다. 수정의 눈이 거봉의 다른 손에 들린 바나나 우유로 향했다. “이, 이건 내가 산 거고…….” 수정의 맑은 눈이 책상 위의 딸기 우유로 향했다. “이건 주운 거고…….” 거봉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오해가 쌓이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다. --- p.13~14 야구 모자가 다짜고짜 수정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퍽! 수정이 잠시 중심을 잃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거봉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서 막지 않으면 큰 사달이 벌어질 것이다. 거봉이 주먹을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수정의 몸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야구 모자의 얼굴에 발이 꽂혔다. 야구 모자가 억, 소리를 내며 뒤로 휘청거림과 동시에 거봉의 눈이 번쩍 떠졌다. 방금 발차기는 결코 우연히 맞아 들어간 발놀림이 아니었다. 목표물을 정하고, 정확하게 타격한, 고도로 훈련된 솜씨였다. --- p.21~22 거봉과 수정이 소파에 앉으려고 하자 오남이 벌컥 성을 냈다. “어허, 누가 앉으라고 허락했냐?” 거봉은 앉으려다 말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수정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여태까지 애쓴 거봉을 생각해서 밀려드는 적대감을 간신히 눌렀다. 오남이 수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신문을 다시 촤락 펼쳤다. “난 싹수없는 놈은 제자로 안 받는다.” “사부님, 수정이는 그런 애가 아니고요. 그때는 얘가 너무 낯을 가려서…….” “낯을 가려? 어른이 묻는데 대답도 안 하고 나가는 게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탈북자라더니, 북한에서 네 스승은 태권도 기본 정신인 예의도 안 가르치디?” 가만히 듣고 있던 수정이 발끈했다. “그때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내 스승까지 욕할 건 뭡니까?” 수정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두 분 이러지 마시고…….” 거봉이 중간에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지경이었다. “네가 행동을 잘못하면 그게 다 스승 욕 먹이고, 부모 욕 먹이는 거지. 여태 그것도 몰라?” 오남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내 스승은 욕하지 마시오, 동지!” “뭐? 어린것이 버릇없이, 어른한테 동지? 도옹지?” --- p.59~60 “졌어. 그냥 인정해라. 기회는 다음에도 있다.” 오남이 말했다. 수정은 목을 빳빳이 치켜세우며 다가와 오남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지금껏 보고 계셨잖아요. 제가 진짜 진 겁니까?” 오남은 억울하고, 원통한 수정의 심정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치미는 감정을 애써 꾹꾹 눌렀다. 오남은 수정의 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졌어!” 수정이 눈빛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빛을 잃고 흐려졌다. 그래도 오남만은 진실을 얘기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수정이 착각한 것이었다. 아빠가 틀렸다. 남한도 북한도 결국 똑같았다. 공정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 p.140 |
이기지 못하면 어때? 대신 공정한 판을 만들자고!
불량 수제자들이 차별과 편견을 향해 날리는 짜릿한 앞차기, 뒤차기, 돌려차기! 태권도를 7년이나 배웠지만 몸보다 입이 더 빠른 열세 살 소년 배거봉은 이론은 빠삭해서 말하는 것만 보면 보통내기가 아닌데, 막상 겨뤄 보면 태권도를 입으로만 배웠나 싶다. 북한에서 온 열다섯 살 천재 태권 소녀 류수정은 몸집은 왜소한데, 엄청난 속도로 퍼붓는 주먹질과 발차기가 거의 예술의 경지이다. 게다가 입을 열면 쏟아지는 창의적인 북한 욕은 주먹질만큼이나 맵다. 수정에게 첫눈에 반한 거봉은 수정을 낡디낡은 변방의 태권도장 ‘정도관’에 데려간다. 그곳에는 툭하면 ‘요즘 것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일흔 넘은 관장, 오남이 기다리고 있다. 제자다운 제자 한번 키워 보는 게 소원인 오남과, 상금을 타서 아빠를 남한으로 데려오려는 수정, 수정을 유튜브 스타로 만들고 싶은 거봉은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기기 위해선 실력뿐만 아니라 배경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높은 분’에게 제대로 밉보인 수정은 제대로 경기를 해 보기도 전에 위기에 부딪히고 만다. 그들은 ‘관례’라며 이어져 오던 불합리한 제도와 ‘높은 분’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에 쉽게 무릎 꿇지 않는다. 그야말로 거침없이 나아가며 공정하지 않은 판 자체를 뒤집기로 한다. 왜소한 탈북민 여자아이, 친구에게 괴롭힘 당하는 남자아이, 변방에서 근근이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노인. 누군가는 이 셋을 두고 보잘 것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량 수제자』는 똑똑히 보여 준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반란이 얼마나 힘이 센지 말이다. 때로는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변화를 불러 오기도 한다. 『불량 수제자』의 인물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 이유다. 거침없이 나아가면서도 섬세한 눈으로 약자를 포착하는 용감한 어린이와 성장하는 노인의 이야기 환상의 호흡이 만들어 내는 매력 넘치는 성장담! 작가는 시종일관 시원시원한 문장으로 거침없이 성장담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탈북민으로서 수정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보여 준다. “한국에 와서 배부르게 먹어서 좋지?”, “북한에는 엘리베이터 있니?”, “북한에 냉장고는 있니?” 같은 물음이 그것이다. 수정의 존재를 타자화하고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는 주변인의 태도는 수정을 한국 땅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불량 수제자』를 수정의 ‘남한 적응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도록 만드는 요소는 바로 ‘태권도’이다. 태권도는 수정에게 이루고자 하는 꿈이며, 공평한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거봉과 오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세 인물은 태권도로 인해 세상의 불합리와 맞닥뜨리지만, 또다시 태권도를 통해 각자의 방법으로 불합리에 맞선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해에 당당하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수정과 거봉의 행동은 매우 의미 있게 느껴진다. 오남의 변화 또한 인상적이다. “조직에 덤벼 봤자 결국 손해 보는 건 개인이다”라고 말하던 오남은 부정 판정으로 자격 정지를 당한 수정을 위해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었을 때, 어른들은 책임을 지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판을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노력”하겠다는 오남의 늦된 깨달음과 성장이 반갑다. 이 이야기는 결국 북한 소녀와 남한 소년, 노스승의 성장담이다. 그 와중에 수정과 거봉, 오남의 ‘케미’가 빛을 발한다. 한 명이 ‘쿵’ 하면 다른 한 명이 ‘짝’ 하고 받는 환상의 호흡은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물 흐르듯 술술 읽히는 문장, 쫄깃한 말맛, 간질간질한 첫사랑의 설렘은 성장담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덤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세상을 향한 정의감으로 뭉친 세 사람의 앞차기, 뒤차기, 돌려차기를 놓치지 않기를.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춘 작품은 귀하다. 『불량 수제자』는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많은 시대에 책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