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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 초상
소설체로 쓴 이상의 삶과 문학 이야기
권영민
폭스코너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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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주피터 초상

주요 등장인물
작가 후기-미지의 독자에게
부록-이상의 삶과 예술

저자 소개1

權寧珉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하버드 대학교 객원교수, 캘리포니아 버클리 한국문학 초빙교수, 도쿄 대학교 한국문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버클리 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현대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만해대상 학술상, 세종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우리 문장 강의』, 『서사 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 계급문학 운동 연구』, 『한국 민족문학론 연구』, 『한국 현대문학의 이해』, 『이상 문학의 비밀 12』, 『오감도의 탄생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하버드 대학교 객원교수, 캘리포니아 버클리 한국문학 초빙교수, 도쿄 대학교 한국문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버클리 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현대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만해대상 학술상, 세종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우리 문장 강의』, 『서사 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 계급문학 운동 연구』, 『한국 민족문학론 연구』, 『한국 현대문학의 이해』, 『이상 문학의 비밀 12』, 『오감도의 탄생』, 『정지용 전집』 1, 2, 3,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 『문학사와 문학 비평』, 『한국 현대문학사』,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한국 근대문학과 시대 정신』, 『월북 문인 연구』, 『한국문학 50년』, 『윤동주 연구』, 『작은 기쁨』 『문학의 이해』 평론집으로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분석과 해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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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44g | 133*205*17mm
ISBN13
9791193034392

책 속으로

“축하해. 이거 내 선물이야. 고공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해줘. 나도 곧 일본으로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었어.”
“형아, 무슨 선물인데 이렇게 큰 상자야?”
“펼쳐봐. 어서.”
그는 겹겹이 싼 하얀 창호지를 펼쳤다. 그리고 화구상자를 보자마자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망울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나는 바보같이 왜 우냐고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숙부가 들려준 그대로 화구상자를 자랑했다. 동경의 유명한 문구점에서 구한 가볍고 편리한 화구상자다. 오얏나무인지 하는 나무로 만든 것인데 몇 번을 물에 불리고 말려 나무가 아주 단단해져서 물이 묻어도 터지거나 뒤틀리지 않는다. 손잡이를 가죽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기도 좋다. 그는 상자의 걸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아…” 하는 감탄사를 한숨처럼 가늘고 길게 발음했다.
“고마워, 형아.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네.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몰라. 약속할게. 고공에 가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게. 이걸 오얏나무로 만들었다고? 오얏나무 상자.”
그는 ‘오얏 리, 상자 상’이라고 하면서 땅바닥에 이상(李箱)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내가 준 화구상자를 자기 이름으로 삼
아야겠다고 말했다.
“이상, 어때?
--- pp.18~19

그런데 「오감도」가 신문 지면에서 사라졌다. 두어 주가 지나고 나서부터 슬그머니 신문에 작품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시대를 너무도 앞서가던 이 시가 보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아무 예고도 없이 연재가 시작된 것처럼 시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그대로 연재가 끝나버렸다. 나는 며칠 더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날마다 우고당으로 배달되는 석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뒤늦게야 작품 연재가 그의 뜻과는 다르게 강제로 중단된 것임을 알았다. 구보가 내게 들려준 소식은 미친 짓거리 집어치우라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신문사 편집국으로 빗발쳤다는 후문이었다.
나는 그를 찾았다. 성격이 여리면서도 속으로는 자존심이 고집처럼 강한 그가 이번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되었다. 다방 제비의 구석 의자에 머리를 감싼 채 쭈그리고 앉아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형, 나를 보고 미친놈이래.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사람들은 모두 수상쩍은 눈으로 내 시를 보고 있어. ‘연재 불가’라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너는 이미 「오감도」의 시인 이상이잖아? 조선의 문단은 시인 이상을 가졌고, 「오감도」를 가졌는데.”
--- pp.86~87

하융의 삽화는 어떤 대상을 그려놓느냐의 문제 이전에 어떤 각도로 사물을 보느냐 하는 일종의 관점 또는 시각의 문제를 강조한다. 하융은 구보의 느린 걸음을 따라 경성의 도회를 배회하면서도 작가 박태원과 소설 속의 주인공 구보 사이의 특이한 동일시 현상을 아주 조밀하게 따라잡고 있다. 그리고 미술의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여 그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그것은 일상의 그늘에 가린 구보의 내면 의식 또는 소설가 박태원의 민낯을 겹쳐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구보는 하융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시인 이상의 집념을 알아차리고 있었으므로 그 작은 화폭에 담긴 자기 이야기를 다시 거울을 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는 소설을 써내려가는 동안 하융이 포착해낸 소설적 주제를 확인하면서 그 작은 삽화를 통해 암시되고 있는 주인공 구보의 내면 의식의 생생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하융은 모호하게 이어지는 소설의 이야기에서 과감하게 디테일을 생략한 채 무딘 붓끝으로 마치 판화를 새기듯이 자기 인상의 지배적 요소를 그려내고 있다. 구보는 내가 신문철을 넘기면서 하융의 삽화를 짚어가며 말하는 걸 보고 “아하, 아하!” 하면서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 pp.148~150

하융의 삽화는 대상의 해체와 분할, 그리고 파격적인 조합으로 이루어진 모순덩어리 경성이라는 공간의 일상이다. 나는 하융이 그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한 장의 그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이미지를 조작하고 해체하고 결합해놓고 있지만 서사의 한 장면을 제시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므로 그의 삽화는 시간성이 제거된 상태에서 이미지가 서로 겹쳐 있고 심지어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의 순간 속으로 밀쳐 넣기도 한다. 따라서 삽화에 담긴 숱한 서사의 조각들은 독자가 그 구조를 해체하여 재조직하면서 읽어내야만 한다. 이 자잘한 조각을 제대로 퍼즐 끼우듯 맞춰볼 수 있을 때 그의 삽화는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 p.167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동경행을 서둘렀다. 경성을 떠나기 사흘 전 그는 간신히 얻어낸 도항증을 내게 보여주면서 드디어 경성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창문사에 출근하여 책상을 정리한 그는 인쇄소의 동료들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아버지에게도 하직 인사를 드렸다. 나는 그의 동경행을 환송하는 뜻으로 저녁을 같이하기로 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가을을 물들이는 10월 하순의 경성 날씨가 제법 서늘했다. 사실 나는 그가 동경행을 그렇게 서두르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가 좋아하는 후루사토의 계란덮밥 생각이 나서 장곡천정으로 이끌었다. 그는 뭔가 걱정에 싸인 것 같았다.
--- p.251

그에게 절망의 끝은 어디였을까? 동경에서 느끼는 고독과 우울을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는 것이 그가 기림에게 쓴 마지막 편지다. 음력 섣달그믐이라는 편지 쓴 날짜를 양력으로 바꿔보면 1937년 2월 10일이다. 동경 니시간다 경찰서로 연행되기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의 사연 속에는 그가 애써 감추려고 했던 자의식의 내면까지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차차 마음이, 즉 생각하는 것이 변해가오. 역시 내가 고집하고 있던 것은 회피였나 보오. 흉리에 거래하는 잡다한 문제 때문에 극도의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오. 2, 3일씩 이불을 쓰고 문외 불출하는 수도 있소. 자꾸 자신을 잃으면서도 양심 양심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오. 비참한 일이오. (중략) 나는 지금 쩔쩔매는 중이오. 생활보다도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중략) 내가 서울을 떠날 때 생각한 것은 참 어림도 없는 도원몽이었소. 이러다가는 정말 자살할 것 같소.’ 그가 털어놓고 있는 이러한 심중은 결코 과장된 제스처가 아니다.
--- pp.277~278

이상.
자신이 남긴 문학과 예술만으로 그 짧은 생애를 스스로 초월하고 있는 예술가. 우리 시대의 가장 불행한 천재. 진정한 자기 언어를 추구한 아방가르드 시인. 내면의 세계에서 리얼리티의 참주제를 찾아낸 실험적 소설가. 하융이라는 가면을 쓰고 구보와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고독한 모더니스트. 아비를 배반하고 불의한 시대의 악형을 무릅쓰다가 천상으로 추방당한 제우스….

나는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다시 마음속으로 상을 그려본다. 그가 떠났음에도 슬픔의 긴 끈을 놓지 못한 채 기림이 그에게 붙여준 ‘주피터’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그를 불러본다. 이 빛나는 이름이야말로 그의 기구한 삶과 그 예술적 재능에 값한다. 모든 기성적 권위를 거부하고 현실의 제도와 이념과 가치를 넘어서고자 했던 그를 달리 어떻게 호명할 수 있겠는가?

주피터!
너의 이름 뒤로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미래의 독자가 줄을 서 있는 게 보이는가? 너는 언제나 맨 앞에서 낯선 새 시대에 맞서 새로운 독자와 만나고 그들과 함께 다시 앞으로 나가겠지. 그리고 ‘주피터’라는 또 하나의 이름 그대로 우리 문학사의 가장 크고 빛나는 별이 되리니, 어둠 속 서러움을 묻고 명목(瞑目)하라.

--- pp.341~342

추천평

한국 문학사에서 이상만큼 많은 오해를 받은 작가도 없으리라. 「오감도」 연작을 발표할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놈’이라 불렀고, 시대를 앞서간 작가임이 증명된 뒤에는 ‘난해한 천재’라는 틀에 박제해버렸다. 이 극단적인 평가 사이에서 이상의 작품은 이해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고, 우리는 그의 진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주피터 초상』은 화가 구본웅의 그림 〈친구의 초상〉이 그러하듯, 이상을 해상도 높은 문장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이 소설 속에서 구본웅과 이상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들은 100년 전 어두운 시대의 짓눌림 속에서도 자신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평생 이상 문학을 연구해온 권영민 선생이 소설가의 시선으로 이상과 그의 시대를 재현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구본웅의 눈에 비친 이상의 모습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다가오며, 난해하다고 알려진 작품들의 비밀은 실타래 풀리듯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상 문학의 매력은 세대에 세대를 거쳐 계속 이어진다. 『주피터 초상』은 오해와 왜곡의 덤불을 걷어내고 이상이라는 거대한 산맥으로 젊은 독자들을 안내할 친절하고도 정교한 길라잡이다. - 김연수 (소설가, 시인)
『주피터 초상』으로 이상의 살아 있는 얼굴 하나를 얻었다. 이 책은 소설도, 평전도 아니지만 두 형식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며 이상의 데스마스크가 아니라 표정을 가진 이상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송몽규를 통해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할 수 있었던 것처럼, 화가 구본웅의 목소리로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해야 했던 이상, 조선총독부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이상,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생 금홍이와 사랑에 빠져 폐결핵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달랬던 이상의 모습 등을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꼽추’의 몸으로 긴 외투를 끌고 가는 구본웅과 까치집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이상이 함께 길을 걸어가면 곡마단이 온 줄 알고 아이들이 뒤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술에 대한 열정을 매개로 이들이 맺었던 깊은 우정은 일종의 곡예에 가까운 것은 아니었을까. 「오감도」 연작 시편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격렬한 반응도 그렇거니와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급급했던 일반적인 삶의 태도를 한참 선회하는 이들의 고민은 아크로바틱한 곡예와 같았다. 구본웅과 이상이 그렇거니와 박태원, 김기림 등 이상의 삶과 문학을 귀하게 여겼던 구인회 동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상의 예술이 꽃피울 수 있게 해준 그의 사랑 이야기까지 『주피터 초상』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불세출의 천재’ 이상(李箱) 그 이상(以上)을 보여준다. - 안지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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