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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다
1일 차 출발, 앓더라도 까미노에서 | 삐끼일까? 2일 차 삐끼가 맞았다 | 잘난 척은 금물! | 부시맨의 앱, 야고보 성인이 파발마를 보내다 | 하느님은 이런 교회에 | 대참사 3일 차 아직 이가 붙어 있다! | 홀로 아리랑 | 포르투갈은 축구지! 4일 차 자네 고향이 여기였구먼! | 이건 신혼부부 방이잖아? | 100년 전의 포르투갈로 이동한 날 5일 차 닭 한 마리 가슴에 담고 | 초라한 순례꾼, 영주의 집에 묵다 | 괴짜 사나이, 린 6일 차 사람에 취해 걷다 그녀 이름, 리나 7일 차 인연 | 가는 세월을 어찌 막으랴 | 까탈스러운 그녀, 마가렛 | 노망 나셨수? 8일 차 누가 70세야? | 순례길에서 배달 음식 먹어봤어? 9-10일 차 발렌사를 향해서 | 살아있는 중세도시, 발렌사 | 발렌사 성 | 포르투갈 교회의 예수님 얼굴 11일 차 스페인 국경을 넘다 | 온마을이 단체로 이윤 나르기 | 갈리시아 음악 축제 12일 차 숙소 전쟁, 냉온탕을 넘나들다 | 이녜스 가족 | 영화롭던 과거, 몰락한 나라의 후예 13일 차 그리운 얼굴들 | 주모경의 미스테리 | 집 생각 | 인생은 수많은 길을 숨긴 거대한 산 | 순례의 의미 | 십 년 전 그 길, 지금 이 길 14일 차 엄마를 추억하며 | 으악, 집시를 또 만났다 | 드디어 미사를 보다! 15일 차 배는 아픈데, 비는 내리고 | 타국에서 만난 약소국 백성 | 씩씩한 스위스 할매들 | 십 년 만에 먹는 갈리시아 국 | 스위스에도 허준이 있었다 | 성질 더럽다는 페드로의 집 | 엘피와 마그리트 | 이상한 할배, 마틴 | 최고의 만찬, 걸을 수 있어 행복한 이여! | 천둥 같은 코골이, 이탈리아에서 온 그녀 16일 차 스틱을 두고 오다 | 순례길의 도둑 할배 | 여왕의 도시, 평민이 누리는 호사 | 낯선 남자의 황당한 제안 | 국가, 그리고 청춘 | K 문화의 힘 | 낯선 남자가 내 속옷을 개어 주다 | 마가렛은 못 이겨! 17일 차 때 낀 손, 야고보 목걸이를 만드는 노인 | 누가 이 길의 주인인가? | 용감한 자매, 온몸을 던져 조난자를 구하다 | 텅 빈 공립 알베르게 | 전통과 격식, 스페인 사람들 | 어머니와 딸들 18일 차 공립 알베르게의 운명 | 악몽 | 무뚝뚝한 독일 남자와 추로스 | 슬로바키아 부부 | 느려터진 할배, 정체를 대시오! | 순례길에서 마음을 흔들고 간 사내 | 순례길의 성추행범 19일 차 불면의 밤 | 어둠 속에서 홀로 헤매다 | 바로 저기! | 십 년 만의 해후, 산티아고 대성당 | 공포의 이층 침대 20일 차 그놈의 오지랖 때문에 | 엘피와 마그리트를 다시 만나다! | 십 년 만의 미사 21일 차 너의 본성은 무엇인고? | 무시아 언덕 | 지옥에서 천당으로 22일 차 니루파의 가네샤 | 마지막 밤 23일 차 산티아고, 안녕! 에필로그 - 까미노, 그리움의 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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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묻는다면 바로 지금, 샤워를 마치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앉아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순간이다. 십 년 전 그 길에서도 알베르게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쉬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지금 여기, 산 중턱에 자리한 숙소. 야트막한 산이 담장 너머로 멀찍이 펼쳐있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온 마을이 고요하다. 이 행복감이라니!
순례길에서는 아주 짧은 만남이어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뭉텅 썰어 보여주고 나면, 더 이상 남모르는 타인일 수가 없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재회하면 상대방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하면서 끝까지 걸을 수 있길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다.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쉬는 중에 난데없이 골치 아픈 일을 떠맡고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흔해 빠진 순례자 중 한 사람일 뿐인데, 이런 고생을 해주다니…. ‘걸어가면 되지, 너는 순례자잖아’ 하고, 지나치면 될 일이다. 휴식 시간과 휘발유까지 들여가며 순례자 하나를 구해주려고 손수 운전해 주는 사람들을 천사라는 호칭 말고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세 사람은 나를 숙소 앞에 내려 주고, 끝까지 잘 걸으라고 “부엔 까미노!” 하며 돌아갔다. 순례길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사람이다. 엄마의 치매 발병 소식을 듣고 서둘러 태평양을 다시 건너올 때는 금방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그곳. 인생은 수없이 많은 길을 숨겨놓고 있는 거대한 산 같다. 어느 길이든 사는 동안 한 번밖에 갈 수 없고, 어느 길을 선택하든 쉽지 않다. 그 길이 어떠한지는 길이 끝나봐야 안다. 촌스럽게 치장해 놓은 성모상이 있던 스페인의 작은 성당이, 지난 10년 동안 문득문득 그리웠다. 기억도 못할 공소에서 기도하던 오후 시간이 목말랐다. 사람들이 근처 식당으로 배 채우러 나가고 텅 빈 숙소에서 빵 한 조각과 와인 한 잔을 놓고 기도하던 노인, 명화 속의 수도자가 잠시 외출하러 나온 것 같았던 그 분, 낯선 도시에서 지친 걸음으로 숙소를 찾아 뺑뺑 돌던 나를 향해, “이리로 와, 여기야!” 하면서 나를 문으로 밀어 넣으며 따라 들어오던 노수녀, 순례길에 받은 은혜를 알베르게 봉사로 갚던 나와 같은 조국에서 온 여인,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10년 전 그때, 아침마다 나와 걷기 시작하면 온몸이 돌림노래를 하듯 한 부위씩 차례대로 아프던 기억. 출발할 때는 왼쪽 새끼발가락이 아프다가, 금세 무릎이 욱신거리고, 또다시 발목에서 열이 펄펄 나곤 했다. 평생 의식도 못 하고 살아온 내 몸의 각 부분이, 자기 존재 증명을 통증으로 했다. ‘새끼발가락, 네가 나의 한 지체였는데 그동안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렇게 마음으로 답했다. 인생에서 마지막 순례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십 년 전처럼 꿈에 엄마를 볼 수 있길 기도했다. 덤으로 퇴직 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번뜩이는 깨달음이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았다. 십 년 전에도 고장났던 내 발은 이번에도 매일 지옥일 테지만, 고통 속에서 내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희망하며 이 길을 꼭 오고 싶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평화로운 오후, 교회 종이 네 시를 알린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 국경을 넘어온 후 교회 종소리가 바뀌었다. 어느 마을을 가든, 우리나라 시골 학교에 있던 학교 종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네 시, 땡땡땡땡, 금속으로 만든 종을 두드릴 때 나는 무미건조한 소리. 포르투갈에서는 어느 마을을 가든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뎅~ 하고 여운이 있는 소리. 그 소리가 훨씬 좋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영혼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순례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귀한 선물이다. 엄마와 자식은 엄마 뱃속부터 끈끈하게 연결되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살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평생을 오해와 무심함으로 상처를 주고 또 받다가 인연의 끈을 놓칠 때가 되어, 비로소 기회를 놓쳤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미련한 인간. 그녀들의 엄마 얘기를 들으니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은 엄마였는지, 귀한 엄마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다니, 밤에 침낭 속에서 한참 울었다. 후회가 비처럼 내리고 미사 막바지에 눈물보가 터졌다.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여기에 두 번이나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으랴. 엄마가 떠나신 십육 년 전, 첫 순례를 왔던 십 년 전, 그리고 지금, 그때보다 훨씬 더 무뎌진 마음과 켜켜이 앉은 영혼의 먼지를 닦지도 않고 여기 또 서 있다. 까미노에서 마주친 수없이 많은 만남 중에서 어떤 이는 마음에 따뜻한 화톳불을 피워주기도 했고, 봄바람 같은 설렘을 놓고 가기도 했으며, 마른 이랑에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그들이 남긴 기억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 길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인간이 타고난 영혼의 무게. 태어나 바람으로 흐르다 이승을 뜰 때까지 지니는 무게. 그것은 순간의 총량에 대한 평균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변하지 않는 상수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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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은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시간이었다”
고통과 은혜가 공존하는 길 위에서 다시 삶을 배우다 저자는 10년 전 첫 순례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길을 나섰다. 대학교수로서 은퇴를 1년여 앞둔 시점, 바람결에서라도 어머니를 느껴보려고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길을 나섰다. 어머니의 치매 발병과 황망한 이별, 후회와 절망으로 참담하게 걸었던 1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길 위의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발가락과 무릎, 발목이 차례로 아파오고, 땅바닥에 넘어져 시큰거리는 앞니가 빠질까 노심초사하며 걸었다. 저자 말대로 ‘몸이 보내는 존재 증명’을 인지하던 매순간이었다. 샤워 후 슬리퍼를 끌고 낯선 마을을 거니는 시간, 알베르게 마당에 빨래를 널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국경을 걸어서 넘는 작은 설렘까지…. 그는 이를 ‘순례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말한다. 성당과 중세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성을 지나며 드러나는 저자의 역사의식과 인문학적 통찰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는 왜 다시 이 길에 왔을까?” 순례길에서 가장 감동적인 건 결국 사람이다 10년 전 프랑스 길에서 그랬듯이, 이번 포르투갈 순례길에도 뜻밖의 ‘천사들’이 등장한다. 무릎이 꺾여 더 이상 걸을 수 없던 날, 합심하여 숙소까지 태워준 마을 사람들, 발이 아파 뒤처진 저자를 찾아서 온 동네를 찾아다닌 여인들, 손바닥 가득 금속 가루를 묻히고 직접 조각한 펜던트를 건네던 노인까지. 이들의 작은 친절은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유쾌하나 가볍지 않은 글이다. 엉뚱한 에피소드에서 깔깔 웃다가도 역사와 세계, 사람에 대한 통찰력에 숙연해진다. 여행기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무엇보다 깊은 울림은 ‘엄마’라는 존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길 위에서 수없이 엄마를 떠올리며 그리움과 후회에 침낭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평생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의 귀함을 깨닫지 못한 채 상처만 주고받는 것이 엄마와 자식’이라는 고백은 많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릴 것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다시 길을 떠나는가? 무엇이 우리를 앞으로 걷게 하는가? 인생의 고통과 후회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나에게도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있는가?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는 순례길을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