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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음과 부활 : 기독교 진리의 본질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유일한 원리 14. 종말과 재림 : 절망과 환희 영원한 세계의 진정한 출발 15. 천국과 지옥 : 우리 인생의 결론 그리스도인의 존재가치와 목적 16. 십계명 : 신앙의 선악과 인간 행동의 거울 17. 성례 : 세례와 성찬 죄 사함과 거듭남의 거룩한 기억 18. 교회의 조직 : 위대한 구조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한 몸 의식 19. 형제사랑 : 성도의 참된 교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 20. 이웃사랑 : 나눔과 섬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 21. 전도 : 복음전파의 생활화 세상을 향한 복음의 자기표현 22. 은사와 사명 : 하나님 나라의 통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섭리 23. 시험과 연단 : 변화와 성장 성화를 향한 계단과 관문 24. 사탄과 귀신 : 영적 싸움의 원수 거짓과 유혹의 대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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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때 일곱 귀신이 들려 고생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귀신들은 다 쫓겨나갔고(막 16:9) 비로소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었다. 그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면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체포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시다가 죽으셨다. 모든 제자들이 다 마찬가지였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비록 아직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예수님께 대한 마지막 도리만은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는 것을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나자말자(주일) 준비해두었던 향품을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그곳에 갔다. 하지만 무덤의 돌문이 열려있었고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졌고 흰옷 입 은 천사가 함께 갔던 다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해주고 갈릴리에 가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라고 지시했다. 여자들은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큰 기쁨을 안고 달음질하여 달려가는데 그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요 20:11~18)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2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읽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한다. 1.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인간의 부활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는가? 그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2. 당신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들으면서 어떤 점에 공감할 수 있었는가? 3. 당신이 이 이야기 속에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4.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지금 교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라. --- 「13. 죽음과 부활 : 기독교 진리의 본질,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유일한 원리」 중에서 오늘의 이야기 : 건강한 교회의 내면 오네시모는 원래 골로새교회 빌레몬의 노예였던 사람으로서 어느 날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났었다. 터키 서남부 지역(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위치해 있음)에 있는 골로새를 탈출한 오네시모는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가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다. 바울은 그 때 1차로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면서 셋집에 연금당한 상태였다. 이때는 바울이 서신도 쓰고 외부인과의 만남도 허락되던 시기였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오네시모를 만났고,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바울을 지성으로 섬겼다. 얼마나 충성하였든지 바울은 오네시모를 심복(심장이라는 뜻)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칭찬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빌레몬의 노예였고 돈을 훔쳤다는 결정적인 죄가 남아있었고 이것을 알게 된 바울이 빌레몬에게 서신(빌레몬서)을 보내 그를 형제로 대우하고 함께 동역하자고 권면하게 된다. 후에 주인이었던 빌레몬이 골로새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가 네로의 박해 때 순교했고, 오네시모는 에베소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가 역시 그도 순교하였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사랑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믿음 안에서의 형제란 한 몸의 다른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최초의 신약교회인 예루살렘교회는 오직 주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 공동체였다. 공동체란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집단이다. 형제사랑이라고 해서 날마다 성도들과 함께 놀고 즐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동체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나눔과 섬김과 용서와 사랑이 끊임없이 일어나야만 한다. 지금 다시 예루살렘교회를 재현할 수는 없지만 현대교회가 초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그 원리를 철저하게 본받아야 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교회가 형제사랑이어야 하는 당위성이 충분한데도 오늘날에는 그것이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해 보자. 1. 지금 현재 한국교회는 기독교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2. 그러면 당신이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는 형제사랑(교제)이 어느 정도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3. 당신이 생각하기에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넘치게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19. 형제사랑 : 성도의 참된 교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