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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기억의 정원/ 리타의 정원/ 영원의 정원/ 사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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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들 때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쓰다가 이내 서글퍼지는 것보다, 산책이 더 위로되기도 한다. 자연은 너 왜 그러냐고 의심하지도 않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외면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상처 주지 않는 친구들은 늘 자연뿐이니. -자연으로의 산책은 언제나 조용한 위안이 된다. 나는 세상과 차단된 이 숲에 속해서야 비로소 서서히 메마른 자리를 메우는 심호흡을 느낀다. 사람에 지쳐 퇴근할 때는 가까운 사람들과 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것보다도 늘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장소를 찾아 걸었다. 나는 강이나 산, 바다나 숲 같은, 자연의 심장부에 당도하고 나서야 부드럽고 촉촉한 심리를 되찾는다. 자연은 내게 늘 안정감을 주고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준다. 그들에게는 어떤 계획도 공식도 술수도 없다. 늘 받기만을 바라는 인간들 곁에서 그는 아낌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부모와 같다. 내면의 소란스러운 자아는 한없이 베푸는 자연의 영향력 앞에서 아이처럼 이내 온순해지고 만다. 살아있는 느낌, 보호받는 느낌, 다시금 고요해지는 심장 박동 소리. 자연은 나에게 유일한 특효약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 이곳은 낙원이다. 이곳은 천국이고, 마음이다. 이곳은 내 전부이고, 내 삶이다. 나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사색하고, 밤이와 논다. 그리고 여분의 시간에 글을 쓴다. 이 책을 통해 산책길에 사유했던 내면을, 한 번도 발설한 적 없는 나의 속내를, 전부를 보여주고자 한다. -비가 내리거나, 어떤 계절의 온도가 살갗에 닿을 때, 혹은 산책을 하다가 일순간 어떤 풀 내음을 맡을 때, 감관은 재빠르게 아득한 과거의 통로를 지나 한 장면 앞에 데려다 놓는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나는 거기에 있고, 그 속에서 땀을 흘리던 내가 있고, 울었던 내가, 가만히 부는 바람을 맛보던 내가, 꽃향기에 취한 내가, 휘파람을 부르던 내가, 빗소리를 듣는 내가 있었다. 나는 오래 이날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자연의 악장을 듣는다. 들리지 않음으로써 듣게 된다. 부르지 않음으로써 느끼게 된다. 이 고요와 평온이 얼마나 지상을 떨리게 하는지, 가만히 앉아 느껴보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도 있다. 자연이 말을 걸면 나는 그들의 서사를 번역했다. 그 사이 모란이 지고, 맞은편으로 작약꽃 무리가 기상을 준비했다. 명자꽃이 긴 잠에 들면, 옆에서 노란 장미의 꽃대가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베어지고 잘린 풀들에서 강한 풀내음이 났다. 그것이 자기 혁명 아니고 무엇일까.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비명, 혹은 혁명. 여린 것들의 생명은 쉬 죽지도 않고 다시 자라난다. 다시 잘려 나가더라도 생명은 무기보다 강하고 풀들은 나를 이긴다. -무모한 줄 알면서도 하는 일. 손가락질 받을 줄 알면서도 개척하는 일. 인간 곁에서 일말의 온기를 끝끝내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일. 남들보다 더 커다란 마음의 집을 가지고 살아내는 일. 이 모두 나의 일. 그리고 그 모든 걸 기록하는 일. 혁명: 불가능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을 아마 나는 이번 생에서 하겠지. 목숨껏 울어야겠지. 나 자신에게만큼은 그리 당당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는 사람인가, 보이지 않는 향기를 맡는 이는 누구인가. 저 망망한 눈길 위에 찍고 있는 영혼을 바라보는 자는? 분명 넋들의 노래를 듣고 옮겨 듣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복합적인 존경과 더불어 그의 삶의 태도에 절로 감복하게 된다. 그들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지 않으면서도, 그 지나감을 섬세히 옮겨 적는다. 나 역시 그들의 삶을 흠모하며,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갗 아래 보이지 않는 막대한 무엇을 감각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이라 불러도 좋고 마음이라 불러도 좋으며 생의 의지라 칭해도 좋다. 그것이 이 안에서 굶주리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안락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이 몸을 빌려, 끝내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도달하고자 한다. 힘이 닿는 데까지 육신을 이끌고 닿고 싶은 곳까지 저 멀리 걸어 보기를 바란다. 마음이 속박을 느끼거나 병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 둔감해지지 않기를, 전율하기를 심장이 계속 고동치기를, 살아 있다는 이 떨림이, 언젠가 어떤 빛으로 이어지기를, 더 큰 세계를 향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새의 마지막 발자국이 찍힌 모래톱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 같은 것, 갓 태어난 꽃들에 우산을 씌워주는 연민 같은 것, 꽃향기를 따라 계속 걸어보는 것, 땅에 등을 맞대고 누워 밤하늘의 유성우를 기다려보는 마음, 그것도 아니면 햇살이 내려앉은 대지 위에 발목을 드러낸 채 풀밭에 맨발을 가지런히 올려보는 마음, 겨울 산새들을 위해 나무의 열매를 남겨 놓는 마음, 그런 인간의 마음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설사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런 마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물의 빈 여백 사이로도 사유하고 연민하는 능력을 지녔으니 마음은 이렇듯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도 있다. 눈의 눈을 열고 귀의 귀를 열지 않으면 지금 머리 위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을 듣지 못할 확률이 높다. 벤치에 앉아 깊은 정념에 빠져 눈앞의 밝은 세계를 자꾸만 놓칠 때, 우리의 내면은 시력을 잃어간다. -바라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는, 붙잡는 것도, 끌고 가는 것도 없는, 실망하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는, 거기 그대로 있는, 늘 요동 없이 있는 그것이 마음. -꽃은 한파 속에서 아무리 보채도 피어나지 않는다. 때 되면 자연스레 개화한다. 기다리지 말 것. 조급하지 말 것. 제대로 된 수렴을 거쳐야 하니 피어나기 전까진 태양, 물, 바람 실컷 맛볼 것. 잘 먹고 잘 잘 것. 그것만 할 것. 우리의 마음이 만발하려면.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의 꽃은 더욱 곱게 필 것이라 믿는다. 이번에는 어떤 색, 어떤 향의 꽃이 필까 가만히 기다려 본다. 강추위를 아름다움으로 갈무리하고 싶다. 화사한 봄의 정원에서 꽃으로 만나려면, 우리. 다만 거기서 꽃대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다하기로 하자.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