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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창을 여는 마음
청력을 다하다 / 소리를 찾아서 / 소리의 기원 / 펼쳐진 세계 위에서 / 새와 창 / 그녀의 창 / 다정의 운명 / 한 사람 / 영혼의 일 / 노을, 호수, 산책 / 달, 밤, 산책 PART 2.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 두 개의 눈 / 계수나무 PART 3. 쓸 수 없는 문장들 모든 것들의 사이 / 좋아하는 문장 / 거의 없는 문장 / 침묵하는 문장 / 깊어진 침묵 속에서 / 비우는 일 / 쓸 수 없는 문장들 PART 4. 시각을 넘어서 겨울, 돌 / 남아 있는 것들 / 시각을 넘어서 / 분리해서 바라보기 / 확장의 세계 / 존재에 대한 / 삶을 위한 예술 / 밤하늘의 유성우 / 시간의 물결 위에 겹쳐진 장들 / 인간의 시간 / 너무나도 인간의 겨울 / 눈, 사람 / 수국이라는 계절 / 이 겨울이 지나가면 / 기다리는 마음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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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옮겨적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 완성된다는 사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수한 종들이 어우러져 있는 바로 여기, 다 다른 개별적 시간이 서로를 모르는 채 함께 흐른다.
어쩌면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삶의 경이로움과 불가사의함을 상상하고, 감탄하며, 우리가 속한 세계와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된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러한 가능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질문하며, 순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 생에서 발견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비록 미미하게라도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어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아무도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고 깨우는 마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긴다. 언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존재는 그 무엇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이름도 불러주어야 이름이 된다는 사실, 눈앞의 것이 살아 있는 풍경이 되려면, 마음을 열어 그것을 꼭 지그시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바라봐야 한다. 세계는 결코 혼자만의 독백으로는 의미가 되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이제 나는 혼자 알고 있던 세계의 떨림을 타인과 공명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 글은 그렇게 창을 여는 마음이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읽다가 다시금 덮고 열기를 반복한다. 종이라는 물성은 내밀한 이 공간과 저편의 내가 모르는 공간이 하나로 만나는 창이라는 점이 좋다. 상상은 늘 가능성을 허용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거기 닿아있는 기분이 든다. 모든 순간, 계속 스쳐 가는 숱한 세계의 창 중에서 잠시 손바닥을 맞댄 채 온기를 교환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 이들과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눈다는 기쁨이 나를 쓰게 한다. 어스름과 서서히 섞이는 이 시간이 실은 가장 황홀하다. 슬픔과 환희가 뒤섞일 때 가장 깊어지는 것처럼,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것이 동원된다. 그 순간, 나는 ‘찬란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나는 이 장면을 눈이 멀도록 감상한다. 곧이어 핏빛 노을은 물 위에 남김없이 쏟아졌고, 마지막 빛 한 줄기가 물속으로 뛰어들 듯 작렬했다. 태양은 긴 꼬리와 함께 그렇게 퇴장했다.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자락에 앉아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두가 어두움을 끌고 너머로 사라질 때, 그때 나는 알게 된 것이다. 하루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떠나감을.나는 나를 완전히 통과한 뒤 모든 것과 함께 무한히 저편으로 향한다. 슬픔도 기약도 없이, 어쩌면, 그것까지 산책인 것이다. 한 사람이 지나간 후에 남은 여운 같은 것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쉽게 잊히지만, 어떤 사람의 잔상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문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이 가고 난 후에 남아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까 향기와 분위기에 관심이 많다. 표정보다는 뒷모습에, 포옹보다는 체온에 관심이 많다. 말이 막 발화하기 전이거나 말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서 있을 때처럼.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남아있는 모든 것이 나는 늘 궁금하다. 꽃이 피는 것보다 꽃이 진 자리가 나를 떨게 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있기에,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서도 동시에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양면을 나란히 어깨에 짊어진 채, 어둠과 빛이 혼조된 어스름 사이로, 삶이라는 언덕을 오른다 그렇게 가을이 가는 동안, 찬 바람이 나무를 거세게 흔들었고, 가지 끝에 남아 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잎으로 발자국을 찍으면 나는 서둘러 가는 발소리가 자꾸만 들린다. 어느덧 바람은 모든 나무를 흔들어 깊은 잠으로 밀어 넣고, 인간인 나는 쏟아지는 가을 향기를 모두 들이쉰다. 기억하는 그 힘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기다림은 나를 더 깊어지게 한다.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시 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쳐보려면, 못다 한 계수나무 향기를 받아 적으려면. 바라봄의 깊이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나는 ‘나’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이 분리는 단순한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준다. 내가 나를 내려놓고, 외부에서 나를 바라볼 때, 내가 그토록 의식하지 못했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순간, 나는 이전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인식하게 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시선은 내가 지금까지 스쳐온 것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실제로 이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순간만 존재한다.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장면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단 한 번의 호흡이며, 시간과 물질의 얽힘 속에서 잠시 드러난 결괏값일 뿐이다. 실상 우리는 의미를 지닌 존재라기보다, 잠시 이곳에 현시된 하나의 현상이며 흘러가는 상태에 가깝다. 존재란, 실은 육신이 아닌 생명 그 자체의 근원적인 감각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를 구성한 물질 속에서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역동성, 곧 영혼 그 자체이다. 그것은 확고한 실체가 아닌, 결합하고 이동하는 운동이고, 끊임없이 촉발되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현전(現前)의 상태에 머무른다. 존재감, 그것만 남기고 바라본다.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 속에서 본질을 주시한다. 그렇게 나와 거리를 둔 채, 모든 믿음을 모두 반문하며 답을 찾아 나설 때, 나는 마침내 눈을 뜨게 된다. 끝나지 않은, 삶은, 길 위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발자국 속에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사람은 단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 울림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