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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이 톨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땐 열두 시 이십 분경이었다. 하이패스 카드가 설치된 밴은 따로 정지할 필요도 없이 단번에 통과했다.
“자, 이제 서울로 진입합니다. 하하하.” 굵직한 기사의 목소리 위로 또 하나의 가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휴대폰에서 흘러나온 큰딸의 목소리였다. “엄마, 지금 어디쯤 오고 계세요?” 바로 그 순간 밴이 롯데타워 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응. 저만치 롯데타워가 보여.” 휴대폰 뚜껑을 덮고 나서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부터 몰락한 것마저도 끌어안으며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 하리라.’ 잠시 후 떨리는 듯한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포물선을 그리며 차 안을 채우고 있었다. “몰락의 아모르파티, 몰락의 아모르파티, 몰락의 아모르파티!”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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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몸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생의 찬란한 고백, “아모르파티”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하던 일상이 멈춘다면? 매일 똑같던 중력의 법칙이 버겁게 다가오고, 내 몸이 더 이상 내 의지를 따르지 않게 되었을 때, 세계는 거대한 미궁으로 변한다. 그 미궁 같은 세상을 건너 기어코 희망의 문을 열어젖힌 놀라운 서사가 탄생했다. 『울새가 노래하는 곳』, 『애플망고』에 이은 최정원 작가의 세 번째 작품집 〈몰락의 아모르파티〉는 삶의 미궁 한복판에 선 인물을, 불행한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재활 난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펼쳐낸다. 이 소설은 ‘재활’이라는 고독한 투쟁의 시간을 지나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깊고 푸른 영혼을 만나는 기록의 여정이다. 그러하기에 단순한 병상 일기를 넘어, 인간의 존엄이 어디까지 부서질 수 있으며, 그 부서진 파편들이 어떻게 다시 빛나는 별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지 서정적이고도 치열한 문체로 그려냈다. 재활 병원 그 회색 담장 너머에서 시작된 ‘살아 있음’의 고고학 소설의 시작은 재활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향하는 화자의 하루에서 시작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수만 번의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 눈으로 화자는 더 이상의 번민도 어리석은 희망도 품지 않은 채 오롯이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떠올린다. 불행한 사고가 있던 날의 기억에서부터, 같은 병실 환자들의 다양한 인간군상, 인간적이기도 극도로 이기적이기도 했던 여러 의료진들의 모습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동정과 연민을 잃어버린 간병인의 모습까지. 화자의 시선은 정밀화처럼 세밀하게 독자를 재활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몰락, 그 비극적 이름의 축복 화자에게 있어 ‘몰락’은 파멸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과정일 뿐. 화자가 자신의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찰나의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듯 작가는 삶이 운명과 부딪히는 그 순간순간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섬세한 문장에 집중한다. 길고 긴 재활의 여정, 화자는 매일 넘어지고 몰락하면서도 기어코 단단한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는 자아를 만나게 된다. 그 순간, 비로소 삶의 배경음악은 레퀴엠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찬가로 변주된다. 무너진 오늘을 향해 건네는 단단한 위로 최정원의 문장은 차갑고 서늘하면서도 생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품고 있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운명과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잠언 같은 말들. 각자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고백들. 이 소설은 육체의 고통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실에 갇혀 홀로 울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구원의 교향곡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엔, 독자들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떼는 주인공의 모습 위로, 다시금 생의 리듬을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매일 조금씩 몰락하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 이들을 위한 찬가, 삶을 다시 살아내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출간을 알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