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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머리말
들어가기 제1부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 이론 편 1. ‘사회적 히키코모리’란 무엇인가 2. 사회적 히키코모리의 증상과 경과 3. 다양한 정신 질환을 동반하는 ‘히키코모리’ 4.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병인가 5. ‘히키코모리 시스템’이라는 관점 제2부 ‘사회적 히키코모리’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 실천 편 1. 정론·설교·논의의 극복 2. 가족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각오 3. 치료의 전체적인 흐름 4. 일상 생활에서 5. 가정 내 폭력의 슬픔 6. 치료, 그리고 사회 복귀로 7. ‘히키코모리’와 사회 병리 끝으로 히키코모리 대응의 프로세스 후기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
Tamaki Saito,さいとう たまき,齊藤 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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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히키코모리가 모든 세대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히키코모리는 어디에서든, 누구든, 몇 살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p.7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복잡하고 넓은 범위를 가졌으며 좀처럼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 병리만으로 두고 볼 수 없는 문제에서 관점을 어디에 둘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문제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히키코모리’를 그 자체로 ‘병’이라 단정 짓기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장기화될 경우 다양한 병리의 온상이 되기 쉽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동기는 바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부족한 이해로 인해 그때마다 다른 대응이 이루어지고 해결이 늦어지는 것, 사회병리나 세대적인 병리라는 인식 때문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의 검토가 늦어지는 것. 이처럼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 p.17~19 ‘사회적 히키코모리’라는 말은 ‘Social withdrawal’이라는 영어의 직역이라 익숙하지 않은데,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대인 관계의 거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하면 됩니다. 가족 이외의 모든 대인 관계를 피하고 거기서 철수해 버리는 것. 그것이 ‘사회적 히키코모리’입니다. --- p.27 사회적 히키코모리 문제는 개인의 병리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으며 반드시 사회와 가족을 끌어들이는 하나의 병리 시스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 증후군’ 같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낼 수 없는 현상입니다.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끊임없이 늘어난 데다가 좀처럼 줄어들지도 않고 있는 것, 유행하는 증후군보다 무서운 것은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아닐까요? --- p.33 사회적 히키코모리에 따르는 다양한 증상은 이차적인 것입니다. 즉, 먼저 ‘히키코모리 상태’가 있고 그 상태에 이어지는 식으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히키코모리 상황을 다양한 증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p.35~36 질환으로서의 넓은 범위나 만성성은 물론이요, 사회에 대한 관계라는 점에서 볼 때 ‘사회적 히키코모리’가 현대사회에서 ‘항생제 이전의 결핵’과 같은 위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둘 모두 어떠한 소모 체험(후에 쇼크나 피로감이 오래 지속되는 체험)에 뒤이어 발생합니다. 치료보다는 환경을 조정하며 ‘보양’과 같은 대응이 필요합니다. --- p.45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아무 생각 없이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분명한 오해입니다. 그들은 사실 주위의 가족 이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바심이나 절망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가 절망감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것도 그들의 판단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p.60 임상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히키코모리 사례의 배경에 극단적으로 파탄이 난 가정 환경이나 학대와 같은 ‘큰’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적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히키코모리’를 여러 의미에서 일본의 가장 평균적인 가정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은,이 문제가 현대 일본의 사회 병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 p.63 히키코모리는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함과 동시에 심리적 외상이 심리적 외상을 계속 만들어 내는 일종의 악순환 시스템으로 보입니다. 단서는 성적 저하나 친구와의 불화, 왕따 체험 등에 있겠지만 그 때문에 일단 틀어박히고 나면 대인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치유의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타인은 심리적 외상이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외상으로부터의 회복도 불가능해집니다. ‘히키코모리’의 자연 치유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타인과의 유익한 접점이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p.66 (조현병 본래의) ‘망상’과 히키코모리의 ‘망상적 관념’은 이론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양자의 가장 큰 차이는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과묵한 성격이라도 전자의 사례라면 본인이 말하고 싶은 바를 표정이나 행동 등을 통해 어떻게든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사람을 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과의 만남을 갈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p.70~72 사례 속의 개인만을 다룬다면 그것이 ‘사회 공포’나 ‘회피성 인격 장애’여서 안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진단의 문제만으로는 전부를 논할 수 없는 곳에 이 문제의 특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랑스 심리학자의 지적처럼 그들이 중증 정신 장애를 안고 성인이 되었다면 분명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20대, 30대가 되어도 부모가 일할 수 있다면 계속 부양해야만 한다는 것. 그런 가족 관계가 영원히 갈등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야말로 일본적인 특이성일지도 모릅니다. --- p.94 ‘히키코모리 문제’는 시작이 개인 병리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반드시 가족을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태가 더욱 복잡해져서 병리성이 깊어집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개인의 병리라는 문제를 넘어 사회 정신의학이나 공중위생학과 같은 영역에서도 중시되어야 하며 개인의 정신요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례 연구나 가족을 통한 치료적 개입 등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어떻게 본인을 치료하는가’보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적 개입을 할 것인가’라는 점에 비중을 두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 p.99 대인 관계의 세 가지 영역은 개인, 가족, 사회인데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이 모든 영역에서 어떤 종류의 악순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장기화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대부분의 정신장애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히키코모리는 이 세 영역이 서로 무척 폐쇄적이 되기 쉽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마치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처럼 꼬이면 꼬일수록 안정되어 갑니다. 그리고 일단 시스템이 안정되고 작동을 시작하면 약간의 치료 노력으로는 이러한 순환을 멈추기 어려워집니다. 저는 이 악순환을 일단 ‘히키코모리 시스템’이라고 칭하려 합니다. --- p.101~102 가족 모두가 사회를 기피하는 ‘미국형’ 히키코모리가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진정 원하기 때문에 떠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구도가 장기화된 갈등을 초래하는 구조로서의 ‘히키코모리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 p.109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가치관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히키코모리를 ‘부인’하고 맙니다. 히키코모리 사례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사회적 통념, 바꿔 말하면 ‘히키코모리를 부인하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만 합니다. 즉, 그들이 ‘사람으로서 잘못 살고 있다’라고 봐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교나 논의, 때로는 폭력으로 그것을 ‘부인’하는 방법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 p.113~114 저는 무엇보다 가족이 히키코모리 상태를 포용하려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일방적인 수용’은 일방적인 설교와 마찬가지로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적인 자세로 삼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틀이 필요하다’라는 점은 종종 망각되는 상식입니다. --- p.114~115 ‘히키코모리’의 치료를 성숙의 문제와 연결 지을 수 있는데, 실용적인 관점에서 성숙에 대해 간단히 정의하자면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안정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고, 타자와의 만남에서 과도하게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다. --- p.116 성숙은 ‘트라우마에 대한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을 다쳤다가 그로부터 회복’하는 것은 ‘감염되었다가 회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즉, 나중에 ‘면역’과 비슷한 변화가 남습니다. ‘성숙’의 과정에서 ‘트라우마 체험과 회복’이라는 세트는 빼놓을 수 없으며 이 세트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타자와의 만남’입니다. ‘외상에 대한 면역 획득’이란 ‘유효한 타자의 이미지’를 학습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p.117~118 히키코모리 사례에서 가족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정 폭력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가족을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사소통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타자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 p.119 본인이 어찌 되었든 부모만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치료를 시작해 본인에게 나아가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대처법이 명확하게 제시된다면 우선 가족이 안정됩니다. 가족이 서로 협력하고 전문가와 연대하며 끈기 있게 다룸으로써 이러한 종류의 문제를 절반 가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p.121 가정 내 폭력 또한 ‘사랑’의 산물입니다. 격렬하게 폭력을 휘두른 후 필사적으로 사과하면서 동정을 보이려고 하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마냥 안아 주는 어머니. 그곳에는 서로 간의 거리와 통제를 상실한 ‘사랑’의 무참해진 모습이 존재할 뿐입니다. ‘사랑’은 ‘맹목’적이기에 치료를 어렵게 합니다. --- p.126 강한 사랑은 그만큼 공격성 등의 반동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친절함’에는 이렇게 격렬한 양가성이 없습니다. 지적 이해와 정서적 공감에 기반한 ‘친절함’의 태도야말로 가족에게 요구되는 이상적 태도입니다. --- p.131 받아들이는 데 틀이 필요한데, 여기서 ‘틀’이라는 것은 스킨십 금지입니다. 응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어의 수준에서 그쳐야지, 신체 접촉을 동반하는 응석은 원칙적으로 피해야만 합니다. --- p.159 사회적 히키코모리 사례는 높은 비율로 ‘가정 내 폭력’을 동반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폭력을 당하기 쉬우며, 오랜 시간 동안 마치 노예처럼 취급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춘기 문제의 전문가들은 이런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하는데, ‘자발적으로 폭력에 노출된다’는 행위는 위험한 도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 p.164~165 정당한 ‘체벌’이든 공감할 수 있는 ‘복수’든, 방법론적으로 모든 폭력은 부정되어야 합니다. 폭력의 거부란 ‘폭력을 억누르기 위한 폭력’조차 거부하는 것입니다. 힘으로 가정 내 폭력을 제압하려 한다면 거의 확실하게 실패합니다. --- p.167 히키코모리 상태가 10년 이상 계속되거나 나이가 벌써 40세 가까이 된 경우 등은 냉정하게 다음 단계를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정년이 되거나 병에 걸리면 치료를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기에는 무리가 따르며 이와 같은 경우 특히 경제적인 상황에 관해 현실적인 계획을 일찍부터 세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197 인간은 자신이 만능이 아님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타인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생깁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거세’되지 않는다면 사회 시스템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가 아이들에게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라는 환상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문제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사회적 히키코모리 사례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은데 그 이유로 우선 현대 일본의 사회적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기대치가 여성에 비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일본에서 특히 여성에 대해 사회 시스템 전체가 ‘거세’를 성공시키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더욱 빠르게 성숙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비해] 칩거하는 [남자]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과거 학교에서 강요당했던 ‘평등하다는 환상’을 저주해 마지않습니다. 히키코모리 젊은이들이야말로 바로 강제된 ‘거세 부인’의 희생자로서, 끝나지 않는 사춘기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 p.206~210 ‘히키코모리’, 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현상은 이제 한국에서도 만연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과거였다면 흔한 ‘일탈’이나 ‘비행’, ‘괴짜’ 정도로 여겨졌을, 모든 관계를 절단하고 자기 방 혹은 내면에 틀어박히는 행위가 드디어 문제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를 문제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불안감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해결을 향한 첫걸음을 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점에서 히키코모리를 문제시한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히키코모리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그간의 사고방식으로 대처하기 어려움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키코모리에 대처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논리 바깥에 있던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곳에 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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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관계와 사회가 함께 드러내는 현실일 수 있다
『사회적 히키코모리』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히키코모리와 마주하려면 - 익숙한 통념을 넘어 스스로 걸어 잠근 문. 누군가 그 닫힌 방 안에 오래 머문다.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고, 말을 줄이거나 아예 입을 닫은 채 사회적 관계에서 물러난 듯 살아간다. 우리는 이런 존재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고 여긴 나머지 너무 쉽게 설명해 버리곤 한다. 게으르다, 의지가 약하다, 사회성이 없다, 가족이 잘못 대응했다는 식의 말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문제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바로 그 익숙한 설명의 틀을 의심하게 하는 책이다. 사이토 타마키는 히키코모리를 한 개인의 성격이나 결함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히키코모리를 개인의 심리, 가족 관계, 사회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얽힌 상태로 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히키코모리’를 말하지 않고 ‘사회적 히키코모리’를 말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문제를 개인 내부의 결함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개인과 가족, 사회가 맞물린 구조 속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대응의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처음부터 다시 묻는 것은 단순하다.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먼저 보자는 것이다. 기존의 도덕적 판단이나 상식적인 훈계만으로는 이 문제를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저자의 논의는 출발한다. 히키코모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병명보다 상태와 구조를 보는 시선 저자는 히키코모리를 단일한 병명으로 간단히 환원하는 태도에 신중하다. 이 책에서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자택에 틀어박혀 사회 참여를 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다른 정신장애를 가장 큰 원인으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히키코모리는 무언가를 단번에 진단하고 이름 붙이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저자는 이를 하나의 증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장기화될 경우 여러 정신적·사회적 어려움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겉으로는 무기력하고 정지된 상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초조함, 수치심, 가족과의 긴장, 관계의 단절이 복합적으로 자리한다. 이 책의 중요한 전환점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히키코모리를 당장 교정해야 할 비정상 상태로만 보지 않고 “곤란한 상황에 놓인 성실한 사람”의 상태로 보자는 제안이다. 이 말은 히키코모리를 낭만화하거나 문제를 축소하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당사자가 아무 생각 없이 무기력에 빠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관계 속에서 깊은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말이다. 그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정론과 설교, 훈육과 압박이 왜 실패하는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저자가 보기에 히키코모리 문제는 개인을 고쳐 바깥으로 내보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가 놓인 곤란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문제다. 장기화와 고령화 - 더 이상 청년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개정판에서 특히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시간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히키코모리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일시적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1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80세의 부모가 50세의 자녀를 돌보는 ‘80-50 문제’가 사회적 현실로 부상했다. 히키코모리는 장기화되고 고령화되며, 가족의 생애주기 전체를 흔드는 문제로 나타난다. 더 이상 한 개인의 방 안에 갇힌 사적인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의 노화, 돌봄의 소진, 지역사회와 복지의 한계, 사회적 안전망의 결손이 모두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단순한 임상 보고서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한 사람의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는 고립이 사실은 사회의 여러 층위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히키코모리의 장기화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관계망 전체가 함께 굳어지고 있다는 징후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날의 고립과 은둔을 생각할 때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그것은 특정 사례의 특수성을 넘어 현대사회가 취약성과 의존, 돌봄의 위기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함께 보여 주기 때문이다. ‘히키코모리 시스템’이라는 관점 - 개인·가족·사회가 맞물리는 악순환 이 책의 중요한 성과는 히키코모리를 개인 병리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개인·가족·사회가 맞물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히키코모리 상태는 당사자의 고통만이 아니라, 가족의 불안과 초조함, 사회의 압력과 단절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악순환을 만들어 내는 구조 속에서 지속된다. 저자가 말하는 ‘히키코모리 시스템’은 바로 그 악순환의 구조를 가리킨다. 당사자는 사회에서 물러나고 가족은 불안 속에서 정론과 압박으로 반응하며 사회는 이해 대신 낙인과 통념으로 문제를 덮어 버린다. 그렇게 세 층위 사이의 의사소통과 접점은 끊기고, 단절은 다시 문제를 만성화한다. 그래서 히키코모리 문제에 대한 대응도 단순히 당사자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끊어진 접점과 의사소통의 통로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개념적 설명과 실천적 지침을 함께 제공한다. 왜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 왜 어떤 개입이 실패하는지, 왜 가족의 불안이 문제를 더 깊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차분히 보여 준다. 『사회적 히키코모리』가 오랫동안 읽혀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히키코모리를 ‘이상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사회가 함께 드러내는 현실로 보게 만든다. 대화가 지속되려면 - 설득보다 존중, 압박보다 의사소통 사이토 타마키의 태도는 단호하지만 일률적이지 않다. 그는 히키코모리를 무조건 치료의 대상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도 방치해서 해결될 문제라고도 보지 않는다. 개정판 머리말에서 저자는 지금은 지원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도 가족 관계가 복원되면 새로운 요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한 번의 강한 개입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거절당하더라도 다시 다른 기회를 살피는 일이다. 이것은 무력한 방임과도, 강압적 통제와도 다르다.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버티는 태도, 접점이 다시 열릴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책이 강조하는 것이 ‘대화’다. 저자는 설득이나 논의가 오히려 당사자의 힘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하며 타자를 철저히 존중하는 대화의 자세를 강조한다. 개정판 머리말에서 언급되는 열린 대화(Open Dialogue)에 대한 관심 역시 같은 연장선 위에 있다. 정중한 자세로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적이고 부담 없는 대화를 지속하는 일이 관계를 개선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며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상담 기법이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아니다. 상대를 바꾸기 위한 말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말의 윤리에 가깝다. 『사회적 히키코모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이 책은 당사자를 이해하는 방식과 그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동시에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정 내 폭력과 거리의 상실 - 낭만화 없는 실천적 시선 또한 이 책은 히키코모리 문제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저자는 가정 내 폭력이 히키코모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며, 가족 내 거리 상실과 의사소통의 붕괴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실천 편에서 구체적으로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막연한 공감만을 말하지 않는다. 가족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어디까지를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경계를 세워야 하는지, 치료와 사회 복귀는 어떤 흐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함께 짚는다. 이론 편과 실천 편으로 이루어진 구성은 바로 그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책은 개념 설명에 머무는 이론서도 아니고, 대처법만 나열하는 실용서도 아니다. 이해와 대응, 분석과 관계의 언어를 함께 묶어 내는 책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다시 읽는 이유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고립과 은둔은 더 이상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너무 빨리 이름 붙이고, 너무 쉽게 개인의 실패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곤 한다.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그 속도를 늦추게 하는 책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재빨리 판정하기보다 지금 어떤 고통과 단절,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현실 앞에서 어떤 말이 상처가 되고 어떤 말이 관계를 다시 열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당사자와 가족, 상담·복지·교육 현장의 실무자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인간의 취약성과 공존의 조건, 돌봄과 관계의 윤리를 고민하는 독자에게도 중요한 책이다. 고립을 낙인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대응의 언어로 다시 말하고 싶은 이들에게, 『사회적 히키코모리』는 오래 곁에 둘 만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