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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우사 시집 서문
1제 용문에서의 기로회(龍門耆會) 11수 1. 계호(啓好) 강세은(姜世誾)의 7언 율시 2.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의 7언 율시 3. 호린(皓隣) 강세백(姜世白)의 7언 율시 4. 임하(林下) 이경유(李敬儒)의 7언 율시 5. 좌은(坐隱) 강세모(姜世謩)의 7언 율시 6.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7.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8.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9.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0.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2제 용숙에서의 기로회, 소리정으로 자리를 옮기며(自龍塾耆會, 移席素履亭) 43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2.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4.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6.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7.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9.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10.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1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13.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14.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15.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16.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7.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8.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19. 임하 이경유의 7언 절구 20. 지원 강세륜의 7언 절구 21. 호린 강세백의 7언 절구 22. 대언 이승배의 7언 절구 23. 좌은 강세모의 7언 절구 24. 계호 강세은의 7언 절구 25. 임하 이경유의 5언 절구 26. 지원 강세륜의 5언 절구 27. 좌은 강세모의 5언 절구 28. 호린 강세백의 5언 절구 29. 계호 강세은의 5언 절구 30. 대언(大彦) 이승배(李升培)의 5언 절구 3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32.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33. 이열(而悅) 이학배(李學培)의 5언 율시 34.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36.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37.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3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39.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40.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41.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4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43.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3제 상령고슬 6운으로 전기의 시에 화운하며(湘靈鼓瑟六韻和錢起) 5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5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5언 고시 4. 계호 강세은의 5언 고시 5. 좌은 강세모의 5언 고시 4제 하량에서 소무를 떠나보내는 6운의 시(河梁別蘇武六韻) 5수 1. 임하 이경유의 7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7언 고시 4. 좌은 강세모의 7언 고시 5. 계호 강세은의 7언 고시 5제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읊으며(罷歸途中口號) 3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3.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6제 봉하 시회에서의 의고 이별시(鳳下社會擬古別離) 5수 1. 임옹(林翁) 이경유의 5언 고시 2. 남애(南厓) 강봉흠(姜鳳欽)의 5언 고시 3. 긍암(兢菴) 강세규(姜世揆)의 5언 고시 4. 기치(杞癡) 강세백의 5언 고시 5. 동초(桐焦) 강세륜의 5언 고시 7제 임하 댁 모임에서 연구(聯句)로 지은 노룡단가 (林下社飮聯句賦老龍壇歌) 1수 15연 8제 호린 댁 모임에서 지은 경도가(晧隣宅社飮賦競渡歌) 4수 1. 지원 강세륜의 시 2. 임하 이경유의 시 3. 긍재 이이순의 시 4. 남애 강봉흠의 시 9제 지원 댁 모임에서 지은 6언시(芝園宅謾賦六言) 18수 1. 임하 이경유의 6언시(3수) 2. 호린 강세백의 6언시(3수) 3. 긍재 이이순의 6언시(3수) 4. 지원 강세륜의 6언시(3수) 5. 남애 강봉흠의 6언시(3수) 6. 순삼(舜三) 강용흠(姜龍欽)의 6언시(3수) 10제 우산 정종로가 돌아가신 후 시사를 여러 달 못했다. 대개 절구질이 멈추었다는 의미다. 백하 숙황 황반로가 이 일을 말하자 슬퍼하며 송파 이서우의 운을 골라 함께 시를 짓고 시사의 여러 군자에게 부치다(愚山喪後, 社事曠月廢. 盖舂不杵之義也. 白下黃叔璜, 至話此事, 泫然拈松坡韻同賦, 寄社中諸君子) 2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백하(白下) 황반로(黃磻老)의 7언 율시 11제 모임에 가서 임하와 마주 대하노라니 슬픔과 탄식뿐이네. 시에 그리운 마음을 드러내며 함께 즉흥으로 화운하다(適小會林下相對, 悲吒而已. 詩到聊思, 同率爾拚和)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2제 춘방(春坊 : 세자시강원)의 부르심에 가는 지원 학사를 전송하며(送芝園學士赴春坊召命)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3제 이별하며(留別) 1수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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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내에는 구주(九州)가 있으니, 해·달·별은 온 누리를 비추고 태산·형산·화산·항산·숭산은 온 대지에 뻗었다. 풍기(風氣)와 인성(人聲)이 비록 크고 작은 구분이 있었지만 스스로 일가를 이룬 점은 똑같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소화(小華)라 하고 영남을 추로(鄒魯 : 맹자와 공자)의 고장이라 불렀으니, 이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 오는 말이다. 유독 세상의 의론을 괴이하게 여기는 자가 영남은 문장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도 시에 대해서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영남 사람들이 말을 할 줄 아는 어려서부터 선배의 가르침을 따르고 익혀 오로지 사서와 경전의 훈고에만 힘썼으므로 그 말을 할 때 논리가 우세하고 문채는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니, 염락(濂洛)의 시풍만 본받고 한위(漢魏)의 시풍은 숭상하지 않아서이겠는가?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염락의 시풍은 이남(二南)의 유풍이며, 한위는 열국(列國)의 여파다. 진실로 근원을 끝까지 추구했다면 초지일관 확실하게 정변(政變)을 구별했을 텐데, 후세에 기이함을 좋아하는 선비가 취사선택을 정밀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 선대왕께서 주자의 시를 아송(雅頌)과 짝했으니, 이 어찌 미천하고 견문이 좁은 선비와 유생이 엿볼 수 있겠는가!
상주 지역에 시사가 있으니, 호린(皓隣 : 강세백), 임하(林下 : 이경유) 두 어르신이 날을 정해 시를 주고받으며 마치 옛 낙사(洛社)와 난정(蘭亭)의 모임처럼 행했고, 지원(芝園 : 강세륜), 긍암(兢庵 : 강세규), 남애(南厓 : 강봉흠) 3인의 군자가 그에 따라 화답하곤 했다. 내가 날마다 그 시사를 방문해 그 시함(詩函)를 읽어 보니, 두 어르신의 시가 맑고 평이하고 담백하면서도 풍성하고 화락해 염락의 시풍도 아니고 한위의 시풍에도 가깝지 않아 참으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세 사람의 시가 또한 참으로 굳세면서도 아름답고 맑고 빼어나서 옛사람의 시풍에 깊이 젖어 들었으니, 아아! 누가 우리 영남 사람들이 시를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겠는가! 내가 이에 다시 느끼는 바가 있다. 상주라는 곳은 낙동강의 상류에 위치하고 선생과 큰 덕을 가진 자들이 즐비하니 지금까지 시인과 달사(達士)들이 그 시풍이 끊어지지 않게 선배의 뜻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 논한 자의 일 때문에 배워 온 풍습을 바꾸지 말고 한결같이 경술과 품행을 밀고 나가 화미(華美)한 수식을 훌륭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른바 ‘천지의 중성(中聲)’이 여기에 있게 될 것이며 산천과 풍기 속에만 갇히지 않을 것이다. 후대에 풍속을 살피는 자가 그것을 채록한다면 어느 것이 염락의 시이고 어느 것이 한위의 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니, 우리나라 시교(詩敎)의 융성함이 반드시 우리 시사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중국 사람들이 어찌 우리나라의 시를 경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작자들도 또한 마땅히 영남의 시를 정종으로 삼을 것이다. 하루는 지원 강세륜이 나에게 한마디 써 주기를 부탁하기에 내가 마음속에 느낀 바를 위와 같이 기록하는 바다. --- 「죽우사 시집 서문」 중에서 竹雨詩社序 海內之爲州有九, 而三光五岳, 焜曜蟠際, 風氣人聲, 雖有大小之別, 而其爲自成一家則一也. 是以我東爲小華, 而嶺號鄒魯, 亦古今之傳言也. 獨怪夫世之論者, 於嶺稱文而不與詩, 豈嶺之人, 自童穉能言, 服習先輩之敎, 專用力於四子經訓, 故其發之於聲也. 理勝而文隱, 動效濂洛, 而不尙漢魏也耶. 私竊思之, 濂洛二南之遺風也. 漢魏列國之餘波也. 苟能推原而極本, 其初言志, 固有正變之別, 而後世好奇之士, 不能精於取舍, 惟我先大王以朱詩配之雅頌, 此豈韋布末學之所可窺管耶. 商山有詩社, 皓隣, 林下, 二丈人, 分日酬唱, 如古洛社蘭亭之會, 有芝園, 兢厓三君子從而和之, 余日過其社而閱其函, 二老之詩, 淸平豐融, 不純乎濂, 不泥乎漢, 信乎其自成一家矣. 三子之鳴, 亦皆遒麗淸絶, 浸浸乎古人之聲氣, 嗚呼! 孰謂吾嶺之不能詩也. 余於是又有感焉, 商之一方, 處洛上游, 先生長德, 仡仡相望, 至今韻人達士, 不絶厥聲, 繼玆以往, 莫或以論者之故, 而變其所習, 一以經行廸之, 不爲葩藻之勝, 則所謂天地之中聲, 於是乎在, 而不囿於山川風氣之中矣. 使後之觀風者採之, 不知其孰濂孰漢, 而我東詩敎之隆, 未必不自吾社始矣. 若是則中國之人, 豈可以東音而少之哉. 吾東作者, 亦當以嶺聲爲正矣. 日芝園子屬余一言, 余以所感於中者, 書之如右. --- 「竹雨詩社序」 중에서 저녁노을 비스듬히 여린 버들잎 밝게 비추고 갠 날 구름은 산 빗장에 와 상긋거리네. 의관 입고 술자리에 향사(香社)처럼 둘러앉았으니 노새와 말 타고 연달아 먼 물가로부터 오네. 문을 여니 멋진 달 기약한 듯 대낮같이 비추고 부드러운 꾀꼬리 소리 푸른 숲에서 들리네. 용문 서당에서의 좋은 유람 꽃 앞에서 다시 연 것은 지난 가을 다하지 못한 정 때문이라네. 返照斜穿嫩柳明, 晴來雲物媚山扃. 衣冠醞籍圓香社, 驢馬聯翩自遠汀. 好月如期開戶白, 軟鶯時聽隔林靑. 龍門勝事花前重, 爲了前秋未了情. --- 「호린(皓隣) 강세백(姜世白)의 7언 율시」 중에서 만 굽이 찰랑찰랑 물은 오래도록 흐르는데 행인은 다리가 없다고 원망하지 않네. 하늘 남쪽에 비가 내리니 부족한 신하의 눈물 다하고 변방 북쪽엔 서리 내리니 돌아가는 나그네의 옷은 차네. 넓은 바다에 눈꽃이 하늘하늘 날리는데 무릉의 안개 낀 나무는 저 멀리 푸르구나. 구리 기둥을 지나니 하천은 어찌도 슬픈지 멀리 옥문을 보니 내 마음 절로 아프네. 예와 지금 이렇게 세월은 흐르는데 풍파의 푸른 물결처럼 의지할 곳 잃었네. 짧은 가을밤 아득히 이별하니 영락한 남은 별만 새벽 술잔에 어리네. 萬折泱泱水去長, 行人不必怨無梁. 畸臣淚盡天南雨, 歸客衣寒塞北霜. 瀚海雪花飛片片, 茂陵烟樹遠蒼蒼. 去經銅柱渠何怍, 遙看玉門我自傷. 今古此行如日月, 風波失所是滄浪. 悠悠離別秋霄短, 零落殘星在曉觴. --- 「지원 강세륜의 7언 고시」 중에서 팔월이라 가을바람 이는데 그대와 오늘 이별하네. 서로 날마다 멀리 떨어져 넓은 하늘에 서로를 그리워하네. 슬퍼하며 우두커니 홀로 서서 아득히 변방 달을 바라보네. 빈 규방에 첩 홀로 지키고 있을 텐데 향기로운 분내 먼지처럼 이제 사라져 버렸네. 아득한 변방에 떨어져 쓰러질 듯 정원의 풀처럼 시드네. 잠시도 잊을 수 없어 그대 꿈에라도 볼 수 있기를 원하네. 八月秋風起, 與君今日別. 相去日以遠, 相思天空濶. 惆悵佇獨立, 遙望天邊月. 空閨妾獨守, 芳塵今已滅. 杳杳邊塵隔, 靡靡庭草歇. 俄容不可忘, 願君夢寐發. --- 「남애(南厓) 강봉흠(姜鳳欽)의 5언 고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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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200년 전 낙동강 굽이굽이 흐르던 선비들의 우정과 풍류 《죽우사 시집》은 19세기 초 경북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 모임 ‘죽우사(竹雨社)’ 문인들의 한시를 엮은 번역서다. 진주 강씨, 연안 이씨 등 영남 사림의 명문가 출신이자 우산 정종로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12명의 핵심 시인들이 1816년 봄부터 가을까지 남긴 13제(題) 106수의 시를 오롯이 담아냈다. 이들의 시 모임은 단순한 문예 활동을 넘어선 세대 간의 끈끈한 연대였다. 1784년 강세백과 이경유가 주축이 된 추수사에서 출발해 1804년 죽우사로 이어졌고, 훗날 강세륜의 독려로 조카 세대가 열운사를 결성하며 50년 가까이 시맥(詩脈)을 이어 갔다. 본 시집은 그 전성기였던 죽우속사 시절의 생생한 기록이다. 절반 이상의 작품을 남긴 강세백, 이경유, 강세륜 세 사람을 필두로, 이들은 용문 서당과 소리정 등지에 모여 계절의 풍광을 노래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시집의 전반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를 짓는 풍류를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고 먼 길을 떠나는 벗과의 이별을 그린다. 하지만 이들의 시에서 이별은 절망적인 끝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매개로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다. 현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고전 번역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0년 전 선비들의 맑고 순수한 성정이 주는 청량감을 느끼는 동시에,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돕는다. 아울러 상주라는 특정 지역의 지성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도 지역 고전학의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