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선화 • 7
화선 • 21 권커니, 그대여 종일토록 취하시라 • 59 누마의 여름 • 79 화적 • 153 연화검, 혹은 흩날리는 티끌 • 169 동백 • 205 그리고 낙원까지 • 241 작가의 말 • 343 수록지면 • 345 |
김인정의 다른 상품
|
“아무리 고운 비단에도 수를 놓아야 값이 더하는 것을, 사람도 마찬가지다.”
--- 「선화」 중에서 “네 등에 극락을 다 옮기면 내 거기에 가 살련다.” --- 「선화」 중에서 “연정은 갈망이 되고 갈망은 곧 원념이 되느니 그리움은 그리움만을 낳아 헛된 줄 알면서도 지극히 악해지기만 하더이다.” --- 「화선」 중에서 “인간의 눈이 깊고도 맑아 홀로 푸른 솔을 닮는 일이 간혹 있다 하더이다.” --- 「화선」 중에서 “모든 것을 만드는 마음이 고스란히 무엇을 죽이더이다.” --- 「화선」 중에서 “배 속 비었어도 월궁(月宮)을 노니는 듯 허허공공(虛虛空空) 만방을 굽어보는 양하니, 이것이야말로 하잘 데 없이 먹물 든 놈의 업보일러라.” --- 「권커니, 그대여 종일토록 취하시라」 중에서 “진세의 삶이란 과연 먼지 같소이다.” --- 「화적」 중에서 “차라리 꿈에서나마 장래의 일 보아 속세의 정 버리기를 빌며 사람은 산다.” --- 「화적」 중에서 “그리하여 닿을 리 없는 낙원까지 피 흘리며 가매 지옥만이 영원하단들 그 또한 어떻겠느냐?” --- 「그리고 낙원까지」 중에서 “정확하게 절망하고, 눈부시게 부서진다 하더라도 삶은 삶이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
작가의 말
덧없이 함께. 다정하기를. 정확하게 절망하고, 눈부시게 부서진다 하더라도 삶은 삶이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지나가더라도, 찰나의 눈부심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허락하는 다정한 지옥 같은 마음이, 때로는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이 모든 얄팍함과 부서지기 쉬운 결의 속에서도, 누군가는 무언가를 아끼고 세상은 대체로 아름다우며 삶은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끝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설프지만, 그것이 어렸던 나와 지금의 내가 똑같이 긍정하고 싶은 것이다. (…) 나는 여전히 어리석고, 쉽게 겁을 먹고, 멀리서만 바라보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싸우는 사람들을 오래 동경한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을. 그리고 이 세상이 좀 더 모두에게 관대하기를, 부서지고 깨질 때 누구도 완전히 혼자가 아니기를 소망한다. 별것 아닌 순간에 태어나는 애정이나, 무작정 오래 남는 미련 같은 것들이 무수히 이야기되기를 원한다. 약점투성이의 우리들이 이 먼지와 진흙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기어이 서로를 위해 곁을 내어주는 것. 기꺼이 찰나의 다정함을 발명해 내는 것. 그렇게 살아 나가는 것. 그것을 바란다. 덧없이 함께. 다정하기를. ― 2026년 봄, 김인정 오직 파멸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핏빛 낙원 먼지와 진흙으로 가득한 세계 속, 찰나의 다정함을 발명해 내는 약점투성이들의 이야기 우리는 왜 실패가 예정된 사랑에 매혹되는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끝내 서로를 난도질하고 영혼마저 잿더미로 만들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불나방처럼 뛰어들고야 마는 관계. 일상의 안전하고 밋밋한 사랑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 이른바 ‘망한 사랑’의 서사 안에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지닌 가장 치열하고 맹렬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한국 장르문학계에서 독보적인 동양적 서정성을 다져온 김인정 작가의 소설집 《다정한 지옥》은 바로 이 ‘망한 사랑’이 빚어내는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미학의 결정체다. 그리고 그 참혹한 아름다움이 가장 완벽하게 피어나는 절경은, 단연 소설집의 중심을 묵직하게 받치고 있는 단편 〈그리고 낙원까지〉에서 펼쳐진다. 무협의 외피를 두른 〈그리고 낙원까지〉는 시작부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잉태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고수이자 이검귀(二劍鬼)라 불리는 살수 연교는 유가장의 가주를 단숨에 참살한다. 억겁의 업보처럼 눈이 쏟아지던 겨울, 가주의 어린 딸 아설(설련)은 험한 눈보라를 헤치고 아비의 원수인 연교를 찾아온다. 놀랍게도 그녀의 목적은 당장의 얄팍한 복수가 아니라, 원수에게 직접 검을 가르쳐 달라는 서늘한 청원이다. 아비의 원수에게 검을 배우는 소녀와, 언젠가 자신보다 강해진 제자가 제 목을 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스승. 두 사람의 관계는 섣부른 타협이나 용서가 끼어들 틈조차 없이, 오직 죽음을 향해서만 직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작품 속 연교의 조소 섞인 독백은 이 기이한 관계의 본질을 관통한다. “가게 두게나.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을 거닐며 살았으니 죽어서라도 낙원을 밟아봐야 할 것 아닌가.” 피와 살점이 비산하는 살육의 현장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는 연교는, 세상의 무도함을 경멸하면서도 스스로 그 지옥의 일부가 되어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세속을 등지고 산에 든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낙원’을 밟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낙원은 평온한 안식이 아니라, 아설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파멸을 기꺼이 껴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 사이에는 원한을 뛰어넘는, 세상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유대감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다정한 밀어나 온기로 표현되지 않는다. 권력자의 자객이 되어 떠나려는 아설을 향해 연교가 건넨 마지막 당부는, 차라리 가장 잔인한 형태의 청혼과도 같다. “아설, 하산할 때는 내 목을 베고 가라.” “내 목을 가져가라, 아설. 곧장 떠나면 네 주인의 의심을 더 받지 않아도 되리라.” 의심받을 제자의 앞길을 닦아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이 형벌 같은 선언은, 오직 서로의 파멸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망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나는 무도한 놈이지만 무정하지는 않거든.”이라며 죽음의 사지로 뛰어드는 연교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디까지 맹목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리고 낙원까지〉가 보여주는 핏빛 연정은 소설집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거짓된 낙원을 부수기 위해 스스로 육신을 파괴하는 기생의 이야기 〈선화〉나, 인간 사내에게 영적 징표를 모두 내어주고 기꺼이 파멸을 택한 정령의 이야기 〈화선〉—과 맞물리며 거대한 지옥도를 완성한다. 《다정한 지옥》의 인물들은 현명하게 계산하고 안전하게 머무는 법이 없다. 이들은 영원한 흉터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맹렬하게 서로를 베어내고, 영혼의 밑바닥까지 스스로를 산화시킨다. 안전한 거리 두기와 가벼운 관계 맺기가 미덕이 된 시대, 김인정 작가가 그려낸 이 지독하게 망해버린 사랑의 기록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 섣부른 해피엔딩이나 얄팍한 위로 대신, 파국인 줄 알면서도 기어이 한 발을 들이밀고야 마는 인간 연정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야 한다. 기꺼이 그 안에서 영원히 길을 잃어도 좋을, 압도적으로 매혹적인 지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