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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하여
그 남자네 집 마흔아홉 살 후남아, 밥 먹어라 거저나 마찬가지 촛불 밝힌 식탁 대범한 밥상 친절한 복희씨 그래도 해피 엔드 해설|험한 세상, 그리움으로 돌아가기_김병익 작가의 말 |
朴婉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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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거, 여전히 살아볼 만하다”
―신산한 삶을 ‘감칠맛 나게’ 메마른 현실을 ‘따뜻하게’ 끌어안기 2001년 벽두에 발표하여 그해 제1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그리움을 위하여」와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의 제목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2006년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힌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하여, 총 9편의 길고 짧은 단편이 이번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묶였다. 대부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작품 속 화자들은 ‘그리움’이란 말과 통어하는 회고에 젖어 있다. 본디 그리움이란 오랫동안 곰삭은 한(恨)이나 상처와 별개일 수 없는 법. 더구나 스멀스멀 육체에 기어든 병까지 감수해야 하는 노년의 그들이다. 여기서 박완서의 치밀한 서사적 구성력과 거침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문장에다, 언제 어디서고 빈틈없는 그러나 따뜻한 위무를 담보한 도덕적 성찰은 평범하고 보잘것없을 수 있는 황혼의 그들을 재조명한다. 퇴색한 기억을 반질반질 윤을 내어 그 속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야기의 소재와 향유의 대상을 실버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대로 확장시켜 절실한 공감을 형성하는 한편, 인간적인 삶,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철학적 궁구를 억지스럽지 않게 이끌어내는 문학그림. 박완서 소설이 오래도록 독자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궁극의 이유이다. 더구나 박완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를테면 식탁이나 밥상, 잠자리 등의 단어로 상징되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성찰은 우리 모두의 본원을 캐고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안 그 자체이다.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 밥 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와 흙냄새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가 콧구멍뿐 아니라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쾌적하게 스며들었다. 잠깐만, 어머니가 후남아 밥 먹어라, 다시 한 번 불러줄 때까지 잠깐만 눈 붙이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지리라. (「후남아, 밥 먹어라」, 141) “나이가 들수록 밥이 좋고 밥맛을 알겠어요. 어머니의 정성 덕인지 밥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밥그릇에 늘 뚜껑을 덮어 진기를 잡아두었던 어머니의 마음. 험한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는 것이 고향인 것처럼 엄마가 지어주는 밥이 미각의 고향, 그리움의 근원이 아닌가 싶어요.”마술처럼, 읽는 이가 미처 눈치 챌 틈을 주지 않고 한달음에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아차 싶은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 한결같은 박완서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그이들을 괴롭히는 암(「대범한 밥상』), 중풍(「친절한 복희씨」), 노인성 치매(「후남아, 밥 먹어라」 「그 남자네 집」), 관절염(「그리움을 위하여」), 잦은 건망증(「거저나 마찬가지」) 등은 척박했던 전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느라 얻은 어쩔 수 없는 화인(火印)일지언정, 현재 그들의 정신을 잠식하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무력하고 불행한 파국으로 이끄는 패스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단단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노년의 덕성(지혜 관용 이해)과 삶에 대한 진한 감수성(사람다운 삶에 대한 성찰과 갈망, 열패감에 젖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연민)을 농익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 따름이다. 중년의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저나 마찬가지」나 「마흔아홉 살」에서 부각되는 인간의 위선과 갈등도 그 흔한 풍자와 야유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들처럼 자연스러운 필요악이요 삶의 보호막으로까지 해석된다. 명치가 등에 붙을 듯이 날씬하다가도 생명만 잉태했다 하면 보름달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던 배는 이제 두꺼운 비계 층으로 낙타 등처럼 확실한 두 개의 구릉을 이루고 있었다. 허리의 후크를 풀자 역겨운 트림이 올라왔다. 자신이 비곗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메마른 설움이 복받쳤다. 위선도 용기도 둘 다 자신이 없었다. 울고 싶은 갈망과는 동떨어진, 여자들이 찧고 까불고 비웃는 소리가 귓전에서 잉잉댔다. (「마흔아홉 살」, 108) 그러다가 전세 든 사람에게 이렇게 일을 시켜도 되냐고 묻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괜찮아, 괜찮다니까. 거저나 마찬가지로 차지하고 있는 집이니까. 나는 언니가 뻔질나게 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거저나 마찬가지란 소리도 그만큼 자주 듣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말에 길들게 되었다. 그런 게 체념이라는 것일 것이다. 언니가 남편까지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내 호칭은 별장지기로 바뀌었다. 나는 비로소 ‘거저나 마찬가지’를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저면 거저고 아니면 아니지 마찬가지란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이런 심각한 의문에 사로잡혔을 때는 이미 나의 오백만 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저나 마찬가지」, 176~178) 모닥불의 잔광 같은 희미한 빛을 보았다기보다는 느낀 어느 날 저녁, 그날은 마누라가 아들을 위한 별식 같은 걸 한 날도 아닌데 나는 슬쩍 산책 나가는 척 혼자 나가 맞은편 아들네 아파트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연거푸 두 번 세 번까지 눌러보았다.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느낌으로 안에서 웅성대는 인기척과 현관문에 달린 동그란 렌즈가 비정한 외눈으로 변하는 걸 알았다. (「촛불 밝힌 식탁」, 195)인간의 내밀한 속사정(은밀하고도 편협한 이기심, 세속적 탐욕, 허위의식)을 가차 없이 까발리고, 복잡 미묘하게 뒤얽힌 인간사의 미세한 갈등들을 명쾌하고도 시원스러운 어조로 풀어나가는 박완서, 그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고개 숙이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여기에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묘파(「거저나 마찬가지」 「촛불 밝힌 식탁」)하는 가운데서도 특유의 반전(「대범한 밥상」)을 꾀하게 하는 적재적소의 유머와 재치(「그래도 해피 엔드」)는 물길처럼 자연스럽게, 억지스럽지 않은 인생을 향한 예찬이며 동시에 매끄러운 서사의 표면을 닦는 윤활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편의 마지막 나날도 그러했겠지만 나도 끝까지 걸리는 게 자식들인데 돈이 걸린 문제는 자식들과 터놓고 의논을 할 수 없다는 게 나를 꼬이고 꼬이다가 종영 시기를 놓친 티브이 연속극처럼 구제 불능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대범한 밥상」, 207) 좀 전에 혹독한 교육을 받은 걸 복습하려 했지만 혼란만 점점 더해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좀 낳을 것 같은데 너무 창피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던 맏딸한테도 차마 그 얘기만은 못할 것 같았다. 겨우 그까짓 일이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이 되다니. 가당찮게도 내가 살아온 비교적 평탄한 일생까지 무가치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해피 엔드」, 275~276)냉철한 사실주의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평범한 일상의 파편에서 재발견해낸 수다한 이야기와 경쾌한 재미, 속악한 인간사에 대한 씁쓸한 비애, 그리고 생과 죽음의 섭리에 대한 겸허하고 평온한 각성. 이 모두가 허울뿐인 관념의 더께를 거부하고, 복잡하고 진한 살내로 가득한 ‘육체의 문학’을 좇아온 박완서 소설이 갖춘 미덕이며 동시에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다. “소설의 밑그림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거다 싶은 표현을 발견해 퍼즐처럼 맞춰 글이 완성될 때 더 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독자도 이런 기분을 알게 되면 작가인 나와 같은 ‘황홀경’에 취할 것 같아요. 그러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지요. 언어에는 그런 의사 전달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시적 표현 같은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재미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작가 박완서의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요, 그야말로 삶의 무게로 빚은 우리 소설 문학의 높고 깊은 경지라 할 것이다.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죽기도 억울하고, 누굴 죽일 용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너 죽고 나 죽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그 갑은 너무 작아서 허공에 어떤 선을 그었는지, 한강에 무슨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엔 그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만 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幻)을, 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한 환희로 지켜본다. (「친절한 복희씨」, 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