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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의 꼽추
청목사 200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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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광인 교황의 날
2. 시인과 집시 여인
3. 노틀담 성당
4. 분홍신
5. 숙명
6. 마녀 재판
7. 연정과 욕정
8. 기적궁의 사람들
9. 땅으로, 하늘로

저자 소개 1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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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Marie Hugo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에는 희극 [에르나니](1830)의 초연이 낭만파와 고전파 사이의 ‘에르나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1850년경까지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도 위고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시집 『가을 낙엽』(1831), 『내면의 음성』(1837), 『햇살과 그늘(1840)』, 희곡 [마리용 드 로름](1831), [힐 블라스](1838) 등을 발표했다.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는 위고에게 민중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으며, 1841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뒤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전념했고, 1848년 2월 혁명 등을 계기로 인도주의적 정치 성향을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을 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 등에서 거의 1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징벌』(1852), 『정관』(1856), 『여러 세기의 전설』(1부, 1859), 소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들』(1867) 등 대표작의 대부분이 출간되었다. 특히,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로서,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위고 필생의 걸작이다.

1870년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자, 위고는 공화주의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1874년에는 『93년Quatrevingt-treize』을 출간했다.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878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정계에서 은퇴했다. 국민 시인으로서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고,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며, 『웃는 남자』(1869), 『끔찍한 해』(1872), 『93년』(1874), 『여러 세기의 전설』(2부, 1877; 3부, 1883) 등을 발표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빅토르 위고의 다른 상품

역자 : 김영한
충북 출생으로 고려대 불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역서로는 『겨울 해바라기』『숲속의 어린양』등 다수가 있다.
저자 : 빅토르 위고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1802년 2월 26일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인도주의 문학의 대표주자로 시와 극작등 여러 장르를 통하여 심대한 사상과 예술을 꽃피운 위고는 1843년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틀담의 꼽추』를 발표한다. 프랑스의 격동기에 살았던 위고는 걸작 『세기의 전설』은 인류사를 읊은 프랑스 최대의 서사시이고, 그의 소설로서 가장 유명한 『레미제라블』(1862)은 『노틀담 드 파리』『바다의 눈동자』(1866)와 더블어 3부작을 이룬다. 마지막 작품 『구십삼년』(1840)이 발표되고, 1855년 5월 22일 83세의 일기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2쪽 | 412g | 148*210*30mm
ISBN13
9788930705905

책 속으로

부주교는 온몸이 공포에 사로잡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때때로 고통스런 마음으로 비록 백년이 계속 될지라도 좋으니 그 아래에서 생애를 마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관은 시시각각 조금씩 낭떠러지 쪽으로 휘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부주교는 분노와 공포로 거품을 뿜으면서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노력을 다하기 위해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았다. 그는 이무기를 위에서 힘을 다해 두무릎으로 벽을 밀고, 양손으로 돌 틈바귀 하나에 매달렸다. 아마 한자쯤은 기어오르는데 성공했으리라. 그러나 이 동요에 그가 의자하고 있던 연관의 위쪽이 갑자기 휘어져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지에 법의가 쫙 갈라져 나갔다. 부주교는 눈을 감고 아무기틀을 놓아 버렸다. 그는 아래로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그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득한 추락은 좀처럼 수직일 수 없는 법이다. 허공에 던져진 부주교는 처음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양팔을 펴고 떠렁지다가, 이어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그는 바람에 날려서 어떤 집 지붕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죽지는 않았다. 그가 또다시 손톱으로 지붕의 합각머리를 붙잡으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합각머리의 면은 너무나 가파랐고, 그에겐 이미 기운이 없었다. 그는 떨어져내리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미끄러져 포석 위에 떨어졌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카지모도는 에스멜다 쪽으로 눈을 돌려 교수대에 매달린 그녀와 마지막 단말마의 전율로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곤 양아버지에게로 다시 눈을 돌려 종탑 아래 인간의 형체도 불분명한 채 뻗어 있는 걸 보았다. 그러더니 가슴을 세게 들썩거리고 흐느끼면서 말했다.

"오 ! 난 저 모든 것을 사랑했었는데!"

--- pp.291~292

갑자기 그녀는 그를 돌아보며 '페뷔스'하고 무한한 사랑을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게 당신의 종교를 가르쳐 주세요.'

'내 종교를? 내 종교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지?'

'우리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지요.....'

중대장의 얼굴은 순간 놀람과 멸시의 태연스러움과 방종한 정열이 한데 뒤섞인 표정을 띠었다.

'쳇,누가 결혼한댔나?'

집시 아가씨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슬픈 듯 가슴위로 머리를 떨어뜨렸다.

--- 202001/03/31 (bright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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