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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인페르노
원안자의 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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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 Sa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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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되살린 아들과 13년의 시간 후 만난 아들,
우리는 어느 쪽을 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역의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 ‘자이언트 밸리’, 13년 전 이곳을 출발한 캠핑버스는 가족들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수색 작전이 벌어진 끝에 몇몇 아이들은 주검으로, 일부 아이들은 실종된 채로 사건은 종결된다.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거대한 절벽의 이름을 따 이 사건을 ‘블랙 인페르노 사건’으로 호명한다. 그런데 한 자본가가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child-13’이라고 이름붙인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정보, 학교와 공원 등 공공 CCTV 등의 정보를 취합하여 버추얼 세계 ‘낙원’에 아이들을 되살려 내는 일로, 유가족들은 VR 고글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왼쪽 상단에 보조 화면이 생성되었다. 보조 화면은 칠판을 등지고 수업을 진행하는 한 선생님을 비췄다. 그는 에릭 정이 손에 든 유백색 고글을 끼고 있었다. 이내 화면이 전환되면 실종된 열세 명의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선생님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다. “저희는 양자 컴퓨팅 시스템이 분석한 큐비트를 바탕으로 child-13의 아이들이 사건 직전의 나이만큼 성장하는 전 과정을 배속으로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본능적인 습관부터 사소한 말투와 태도는 물론이고 사고 실험에 따른 도덕적 인식 범위와 교양 수준까지 실제와 동일한 상태로 재현했습니다.” 화면에 비친 아이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핵심 인력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낙원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 26~27쪽 그 캠핑버스에는 메건의 아들인 열 살짜리 남자아이, 제이든도 타고 있었다. 메건은 사건 직후 블랙 인페르노 절벽에서 자살을 기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그 이후 그녀는 ‘child-13’을 이용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한다. 국경의 출입국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매해 캠핑버스가 출발한 그날마다 절벽 앞으로 가 자신만의 애도기간을 갖고, 이를 딱하게 여긴 동료 에단은 절벽이 있는 국립공원 입출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는 미러링 장치를 메건에게 건네준다. 제이든이 캠핑버스를 타고 출발한 지 13년째 되는 날, 블랙 인페르노에서 자신만의 애도를 하던 메건은 급작스런 경찰의 부름을 받는다. 이제 메건은 취조실의 매직미러 앞에 서 있었다. 미러 너머에는 초췌한 행색을 한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저 남자 알아보시겠어요?” 메건은 곧바로 몸을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남자는 눈동자로 실내를 여기저기 살피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 바람에 철제 의자가 덜덜덜 떨려왔다. 그 난해한 광경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겠다는 듯 윌리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이든 그레이 씨가 돌아왔습니다.” ―본문 53쪽 한편, 워싱턴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 국경 지역의 경찰 ‘마사’는 길거리에서 발견한 한 부랑자 소년을 통해 최근 국경 지대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의 증언을 통해 사건이 벌어진 장소의 특징을 확보한 마사는 마을 창고를 습격하게 되고, 세 명의 일당을 검거한다. 그곳에서 빈민가 아동 연쇄 납치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마사는 검거 당시 창고에 없었던, 부랑자 소년이 묘사한 ‘리더’격의 인물에 대해 대대적 조사를 요청하지만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서장에 의해 무산된다. 용의자가 국경을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마사는 국경 너머 워싱턴 주의 경찰 윌리엄과 접촉하게 되고 거기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제이든 그레이가 최근 캐나다에서 벌어진 빈민가 아동 연쇄 납치 살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말씀이죠?”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는 듯 다시 한번 마사의 의도를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마사 형사님.” “네, 말씀하세요.” “형사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그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겁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까지도 마사는 윌리엄의 반응이 미국 경찰이 곧잘 쓰는 과장된 경고 정도라고 생각했다. “제이든 그레이는 13년 전에 일어난 블랙 인페르노 사건의 실종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생존자이고요.” ―본문 100~101쪽 돌아온 제이든을 돌보느라 메건은 점점 ‘천국의 아이들’에 접속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이 된 제이든이 ‘천국의 아이들’에 접속하게 되고, 제이든에게서 VR 고글을 벗겨낸 메건은 AI 제이든을 달래기 위해 오랜만에 ‘천국의 아이들’에 접속한다. 그러나 AI 제이든의 말에 메건은 지금까지의 불안한 평화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는데……. “이 작품은 내가 만든 어두운 구렁에 관한 이야기다” 원안자인 연상호 감독은 ‘원안자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은 ‘어두운 구렁’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분명 거대한 절벽에 대한 이야기이며, AI와 타인이라는 그 매혹적이고 두려운 구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삶에 가까워졌다는 말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들릴 정도로, AI와 버추얼 시스템은 삶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AI 기술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것이라면, AI 기술이 가장 먼저 따라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학습’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삶은, 학습은 인간을 변화시키므로. 실제로 AI 기술은 학습을 통해 스스로 확장된다. 챗봇은 개인 맞춤화되어 있지만 동시에 무한히 뻗어나간다. 그 무한함에 대한 미심쩍음, 소설은 이 섬세한 균열을 한 축으로 한다. 유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AI 버추얼 시스템 ‘천국의 아이들’ 속 제이든은 메건이 잘 아는 제이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메건이 아는 것과 다른 제이든이 되어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무한히 확장된 데이터 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를 가르는 일은 어느 순간 불가능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미심쩍음이 불화로 터져 나오는 순간, 딛고 서 있는 발밑은 심연이 된다. 한편, 타인은 어떤가. 곁에 있으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세계. 서로 다른 경험의 총체. 하물며 그 사이에 오랜 시간이라는 강이 놓인다면 우리는 그를 정말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하나 더 있다. AI 세계의 데이터와 달리 실제 세계의 인간은 간편히 삭제해버릴 수 없다. 타인은 고유하게 존재하며 우리는 심지어는 타인을 인간으로서 믿어주어야만 하지 않는가? 비극에서 살아 돌아온 제이든을, 아들을 대하는 메건의 복잡한 심리는 이 의무감을 넓게 감싸고 돌며 비극의 모양을 그려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절벽은 매혹적이다. 한 걸음 앞으로 가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은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소설가 오성은의 힘이 있다. 거침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도 AI 제이든을 끌어안는, ‘허공의 둘레를 끌어안는’ 메건의 손길에 집중하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제이든의 아이 같은 울음의 질감을 포착해 독자 앞에 풀어낸다. 이질감과 의심, 믿음과 동정. 곳곳에 도사린 섬세한 균열들을 면밀하게 포착하며, 소설은 독자를 점점 더 깊은 서스펜스로 이끌고 간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 독자는 ‘블랙 인페르노’의 끝에 도달한다. 원안자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그리고 독자가 다다른 마지막 풍경에 오랫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에 심연이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