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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병은 죽어서 천국에 임할 것이다. 그가 지옥에서 그의 청춘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엉터리, 개 같은 수사학이었다. 지옥에서 청춘을 탕진했다 하여 감히 천국에 입장할 수 있다고 뻥을 치다니! 설사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일찍이 지옥에서 생을 물 말아 먹은 건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데라면, 거기가 바로 천국은 커녕 무간지옥이리라. 게다가 그는, 그토록 터무니없이 바싼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천국 나부랭이는 원치 않았다. --- p.5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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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은하의 모든 별들, 천국과 지옥을 포함하는, 죽음의 문을 지나온 일체 범주의 극한소멸. 완전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 끝이라는 단어조차도 지워진 끝. 혼돈이라는 개념이, 혼돈 이후가 아니라 혼돈 이전으로 숨어버린 무한공허.
그는 그것을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이는 인간에게는 전대미문의 축복으로서, 해탈이라든가 영생구원으로의 희망이 박살난 상태. 당연히 윤회의 고리도 절단나고, 부처라든가 구세주의 이름도, 혁명가의 선동과 선지자의 예언도 부질없는 시점. 신과 천사와 악마와 나무. 벌레. 물고기. 사람을 비롯한 온갖 짐승, 특히 여인에게 멸시받던 뱀들의 섭섭함도 더불어 사라질 거였다. 그는 그런 파국이 필요했다. 특별한 이유? 물론 너무나 명백한 이유가 있긴 있었지. 그는 저 혼자 파괴되기엔 담이 약하고 쓸쓸한 데다가, 어디에든 - 그곳이 비록 황금빛투성이의 극락일지라고 - 갇히거나 되풀이해 태어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망상, …… 급격한 졸음이 밀려왔다. 아프리카에는 수면병이라는 게 있어서 잠만 자다가 죽는다는데, 그는 지금 자신이 딱 그랬으면 싶었다. ---pp.5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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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칭자리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황도 십이성좌의 악보를 읽으려 고개를 쳐들었다. 눈물 따윈 흘러나오지 않았다. 모난 빛을 발하는 은하의 유성우와 차갑고 강한 우주늑대의 이빨만 선명할 뿐이었다. 분명 대낮이엇고, 구름이 많이 끼여 곧 스콜이 내릴 듯하였는데도, 그의 충혈된 두 눈엔 그게 보였다. 그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은 이러하였다.
--- p.99-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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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어둠에 갇힌 한 사내의 몰락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얼마 전 창작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과 장편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한꺼번에 펴내며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젊은 작가 이응준의 신작소설이다. 시적인 감수성과 서정적인 문체로 김승옥, 윤후명, 윤대녕과 같은 선배작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그가 이번에는 좀더 어두운 필치로 자신의 종전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소설을 써내었다. 하지만 이 소설 역시 낭만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환멸의 낭만주의로 나아갔던 그의 기준 작품과 마찬가지로 외로움, 부재,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쓸쓸한 상황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써 돌파해 나가려는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넌 주인공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카(Ka)'라는 이름의 우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저 평범한 푸른 향로일 뿐이다. 여기에서 기껏해야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상으로 만든 것은 목숨없는 '카' 자신이 아니라 그것을 숭배하고자 하는 'T'라는 인간이다. 김미현은 이것을 인간이 그 나약함으로 인해 도망가는 곳, 즉 인간의 고독한 실존이 만들어낸 어둠이며 욕망의 그늘, 내부의 적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의도한대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마저도 위선이라 조롱한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 나약한 것을 참지 못하기에 위선적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T가 섬겼고 그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만들었던 우상 카(Ka)는 그저 물질이었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에 의해서 가공할 악마로 창조된다. 작가는 김미현과의 대담에서 "어떤 존재들이 균형을 잃고 어두운 곳으로 완전히 기울어졌을 때, 그것은 곧 '카'가 된다. 애초부터 푸른 향로는 푸른 향로였고, 큰 칼은 큰 칼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카(Ka)는 이 세계의 일체의 부조리와 욕망, 그리고 폭력성의 상징인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건과 각각의 인물들이 행위 등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아 주길 바란다. 부조리를 조리로써 설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