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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를 둘러싼 영,러의 대립과 그 여파
2. 구미 열강과의 수교와 한국 3. 한반도에서 영,러의 대립과 그 여파 4. 청,일 개전과 구미 열강 5. 청,일 강화와 구미 열강 6. 3국 간섭과 구미 열강 7. '민비' 시해와 구미 열강 8. 아관파천과 러,일의 상호 견제 9. 러시아의 여순,대련 점령과 열강의 대응 10. 미,영의 대일 지원과 한국 |
崔文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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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진출에 뒤늦은 미국은 열국 공동 보증으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자는 10월 6일자 영국의 제의를 즉각 거부했다. 유럽 열강이 개입하면 그들의 영향력이 강화되어 결과적으로 자국의 아시아 진출에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처음부터 영국의 '아시아 약화 정책'을 도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해서도 '공정하고도 엄정한 중립'을 표방하며 그야말로 '수동적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구동적 방관자' 자세는 이후 1개월도 안 되어 수정되었다. 10월 6일자 영국의 공동 개입 제의에는 냉담했던 미국이 그것과 내용이 별로 다를 것이 없는 11월 3일자 이홍장의 개입 호소에는 남다른 지지를 표했던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의 대승이 확정됨에 따라 유럽 열강의 간섭 위험이 높아지자 클리블런드 대통령이 아시아의 전쟁에 무관심하던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돌연 일본에 대해 미국 단독으로 강화를 중재하겠다는 뜻을 제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이미 주일 공사 던(Eduard Dun)을 시켜 자국의 거중조정을 수락할 것인가를 일본 정부에 문의하도록 했다.(11. 6). 그리고 그레셤 국무장관은 그 전날(11. 5) 미국주재 일본공사 구리노(율야신일랑)를 초치, 미국이 다른 열강과 공동 개입하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각서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 pp. 133-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