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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빛을 밝히다
1. 홍수에 던져진 조각배가 되어 2. 조선을 잠에서 깨우자 3. 풍산트로이카, 상경하다 4. 아서원의 결의 5. 민중의 벗 6. 고려공청 책임비서 7. 조선은 조선인의 조선이다 8. 1926년 6월의 함성 9. 재판 10. 서대문형무소 11. 철관에 갇힌 사자 뒷이야기. 빨갱이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 주요 연보 부록1: 조선공산당 선언 부록2: 가일마을의 독립운동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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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설이 수감생활을 마치고 고향 땅에 돌아온 것은 1919년 늦가을이었다. 3·1만세운동을 겪은 한반도는 봄을 맞은 계곡처럼 부산하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위에는 얼음이 덮여 있었으나, 얼음장 밑으로는 힘찬 물줄기가 흐르듯이 자신감을 찾은 한국인들의 심장은 거세게 뛰고 있었다. 항일의병운동과 만주독립운동의 본향인 안동의 농민들도 누군가 선구자가 나서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권오설은 아버지 말처럼 홍수로 범람한 강물 위에 띄워진 외로운 쪽배처럼 홀연히 돌아와 민중운동을 이끌게 된다.
‘이상적인 신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뜻을 명확히 밝힌 이 편지만 보아도 권오설이 단순히 독립운동을 위해 사회주의를 빌린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에 동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와, 사회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이뤄질 공산주의 세상’을 꿈꾼 사람이었다. 사회주의가 현실이라면 공산주의는 먼 미래의 꿈으로,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이었다. … 식민지 해방투쟁기에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로 부르든 공산주의자로 부르든, 당대 혁명가들의 제1 투쟁 목표는 조선의 독립이었다. 일본의 침략을 단순한 영토전쟁이 아니라 독점자본주의가 낳은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일본을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시키는 것이 민족의 염원인 동시에 사회주의혁명의 첫 단계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상상도 하기 힘든 자기 희생을 감내한다.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36년간, 한국인의 대다수는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처우를 받으면서도 조용히 굴종하며 살았다. 침묵과 굴복에 길들어져 살던 그들은 해방이 되고서야 목청 높여 만세를 부르고 친일파 처단을 외쳤다. 일본 관헌의 총검이 살벌한 시대에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권오설은 그 깊은 어둠의 밑바닥에서 목청을 다해 정의를 외치는 극소수의 한 명이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걱정할 때 그는 정의를 걱정했고, 사람들이 내일의 생계를 생각할 때 그는 내일의 조국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시대의 영웅으로 길이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많이 늦기는 했으나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