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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의 주름
우찬제
문학과지성사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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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창작/이론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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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차례

책머리에
나스카의 숭고한 주름들, 그 횡단 미학의 풍경

1부 횡단의 상상력
횡단의 상상력과 상상력의 횡단
말라가는 희망의 물방울, 마르지 않는 고통의 샘
고통의 심연을 비추는 노근리 북극성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 그 5월의 횡단

2부 숭고의 주름
숭고의 주름―횡단 미학 비평
11시 59분의 허세, 혹은 희망?―숭고의 주름·2
물의 눈으로 듣는 바람의 노래―숭고의 주름·3
별거 아닌 별거
‘질풍로또’ 시대의 교환 은유

3부 횡단하는 소리풍경
‘시·시·비·비’를 넘어서―정현종의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무적’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바람의 노래―최하림의 『우리들을 위하여』 다시 읽기
강원도 파우스트―김주연의 『강원도의 눈』
정겨운 유목민, 혹은 낙타의 소리풍경―이재무의 『정다운 무관심』
‘사람 사막’에서 비를 비는 시혼―이승하
사람-풍경의 고현학―곽효환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함께 횡단하는 아트라베시아모의 서정―한경옥의 『바람은 홀로 걷지 않는다』

4부 디아스포라 횡단
분단 상황의 초극을 위한 ‘문화형’ 문학의 발명─최인훈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홍성원의 『주말여행』 다시 읽기
연처럼, 새처럼―김원일의 소설 시대와 분단 문학의 매트릭스
권력의 바깥, 상상의 비상―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
해운대의 상상력, 혹은 영도의 글쓰기―함정임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
고통의 법열(法悅)과 깊은 주문(呪文)―한강

저자 소개 1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문학비평가.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시대의 상상력』(2010), 『고독한 공생』(2003), 『타자의 목소리』(1996), 『상처와 상징』(1994), 『욕망의 시학』(1993) 등을 썼고, 대산문학상, 팔봉비평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 했다. 최근엔 영랑호와 설악산을 오가며, 기후 침묵의 기억을 환기하고, 기후 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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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14쪽 | 152*225*30mm
ISBN13
9788932045276

책 속으로

나스카의 신비한 그림들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지만, 정작 시선이 닿지 못하는 잔여의 주름에 그 진실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발터 벤야민이 “일체의 미를 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던 숭고가,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며 그 미세한 진동 속에서 낯선 광휘로 다가오는 것처럼, 나스카의 풍경 또한 그러했다. 그 주름들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이 접촉하는 사건의 표면이었고, 이질적 층위들이 교차하며 새로운 사건을 생성하는 감응의 동력이었다.
--- p.6 「책머리에」 중에서

고통이 바로 사유의 시작이라고 했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예술을 ‘고통의 언어’라고 불렀던 테오도르 루드비히 비젠그룬트 아도르노, 예술적 쾌락원칙의 역승화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 현실원칙의 강고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야기와 함께 경험되는 허구적 체험을 절망 속에서 하는 희망의 체험이라고 논의한 폴 리쾨르,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 나타나는 상처/고통과 신궁의 기예 사이의 역설에서 예술가의 존재론을 착안하여 상처와 고통을 통한 예술적 영광을 강조했던 미국의 평론가 에드먼드 윌슨 등등의 사유와 고민들이 「백년 여행기」에 동참하면서 예술 수용의 지평을 심화하게 해준다. 다른 자리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어쩌면 ‘고통의 향유’란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고귀한 예술적 과정이 아닐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응시하면서, 예술의 이름으로, 문학의 이름으로, 역설적으로 고통을 향유할 때, 예술이나 문학은 자연스럽게 치유의 지평을 알게 될 터이니 말이다.
--- pp.20-21 「횡단의 상상력과 상상력의 횡단」 중에서

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고통의 향유’라는 지점에서 그들은 넉넉하게 만나 교감했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는 고통의 심연에서 피어난 연꽃이었을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의 심장과 교감하며, 자기만의 스타일로 고통을 향유할 때 피어나는 서사적 리듬의 풍경이었을 터이다. 뛰어난 작가들은 대부분 역설적인 고통의 향유 방식을 통해 나름의 비극적 숭고미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 pp.38-39 「고통의 심연을 비추는 노근리 북극성」 중에서

평론가 김현에게, 그리고 1980년대의 많은 이들에게 5월 광주는 물리적으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면서도 정신 현상학적으로는 여전히 문제적이며 현재진행 중인 심연의 사건이었다. 그해 5월 절대공동체의 얼굴들은 그야말로 부재하는 현존 혹은 현존하는 부재였다. 결핍이었고 욕망이었다.
--- p.78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 그 5월의 횡단」 중에서

“우리 공동의 집이 불타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이건 과장된 수사가 아니었다. 이 기후위기비상행동 선언은 과연 비상한 선언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확인한다. 2025년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경북과 경남을 할퀴고 지나간 산불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그 열흘 동안 ‘우리 공동의 집’이 불타는 바람에, 3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주택 4199채가 불에 타 2000여 가구, 3314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산불의 화마에 의해 천년고찰 고운사도 처참하게 전소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단일 산불 중 가장 큰 피해라고 한다. 그 끔찍한 산불의 현장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라도 참으로 경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안도감을 추스르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가 없었다.

거기서 나는 재난적 숭고를 떠올렸다.
--- p.85 「숭고의 주름—횡단 미학 비평」 중에서

동시대의 숭고는 이제 칸트의 맥락에서 초월적 이성의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 고양되기 어렵다. 대신 인간이 집단적으로 초래한 엄청난 재난의 풍경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동시에 책임의 감정이나 죄의식으로 변형됨을 우리는 「북극을 위한 비가」의 사례를 통해 거듭 실감했다. [……] 기후 위기는 지구 전체를 구겨서 새로운 주름들folds을 만들어낸다는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말을 더 밀고 나가면, 우리는 다양한 층위의 주름들을 가로지르며 횡단미학적 성찰을 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지구 행성의 주름들, 인간의 육체와 마음에 새겨진 주름들, 상황과 주체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숭고의 주름들, 문학 텍스트의 주름들, 주름들의 리듬, 리듬의 주름들 등 복합적인 성찰을 모색할 수 있겠다.
--- pp.84-85 「숭고의 주름—횡단 미학 비평」 중에서

시원하게 시와 관련한 세속의 제도를 벗어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시도 시인도 공기처럼 가볍게 기화하는 놀라운 신비체험에 대한 몽상과 통하는 것이리라. 꿈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다시 꿈으로 일렁이는 그 역동적 몽상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혹 시인은 이미 ‘무한 바깥’ 체험을 통해 그 너머를 여기에 데리고 살며 남다른 감각의 실존을 하고 있는 것일까?
--- p.173 「‘시·시·비·비’를 넘어서」 중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공표되던 2024년 10월 10일 저녁 나는 남도 여수에 있었다. 오래된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그쪽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한강의 첫 소설집이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5)이었는데, 여수에서 첫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으니 참 공교로운 느낌이었다. 퇴원하고 귀경하면서 우연히 여수세계박람회장에 들러 「잠들지 않는 남도의 세월展—여순 10·19와 제주 4·3 미술 교류전」을 관람했다. 여수와 순천, 제주에서 무자(戊子)년(194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증거하려는 고통의 붓질이 인상적이었다. 1948년 제주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고통스럽게 보면서, 본문보다 제목이 더 긴 한강의 시 한 편을 떠올렸다.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라는 긴 제목의 시였다. 그날 본 화가 김영하의 그림 「바다 위 희망의 빛」이 절규하는 것처럼, 한강 작가 역시 그 핏빛 바다의 고통을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그래서 그 긴 제목의 시에서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라고 한 게 아닐까, 여수와 순천, 광주와 제주의 트라우마를 함께 앓기 위해 늘 “텅 빈 항아리가 되”는 자기 몸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울리는 “검은 물소리” “깊은 물소리”(「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에 귀 기울인 게 아닐까, 그러면서 샤먼 시인이자 영매 작가로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수행한 게 아닐까…… 그런 상념들을 이어갔다.

--- pp.398-399「고통의 법열(法悅)과 깊은 주문(呪文)?한강」중에서

출판사 리뷰

장르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파노라마

『숭고의 주름』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 「횡단의 상상력」에서는 페루 나스카 지상화의 거대 기호에서부터 사유를 출발시킨다. 수천 년 전 대지에 새겨진 그 주름들이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이 접촉하는 사건의 표면”임을 통찰하며, 그 힘을 동시대 예술과 문학으로 이어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고대 석관의 시선을 현대 관람자의 시선과 맞세운 갈라포라스-김, 100여 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한인 디아스포라 서사를 백년초 이주 설화와 겹쳐 읽은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 그리고 이중 스파이라는 분열된 존재를 통해 식민과 탈식민, 가해와 피해의 이항대립을 해체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까지. 고통의 심연을 횡단해야만 비로소 열리는 상상력의 지평을 추적한다. 나아가 김승희, 장수진, 주민현의 시편을 경유하며 신자유주의의 건조한 현실 속에서 ‘말라가는 희망’을 진단하고, 한국전쟁의 노근리 학살과 광주의 5월로 이어지는 고통의 역사를 따라간다. 시대의 폭력과 역사적 참상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일, 저자는 그 서늘한 ‘고통의 향유’야말로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지점이라고 말한다.

2부 「숭고의 주름」은 인류세의 기후 재난을 다룬 예술 작품들을 횡단하며 동시대적 숭고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롱기누스와 칸트로부터 이어져온 숭고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숭고의 주름’이라는 관점으로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무력감과 윤리적 책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특히 파국 직전의 시간인 ‘11시 59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동시에 물의 눈으로 바람의 노래를 듣는 생태적 감수성이 어떻게 새로운 시적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탐문한다.

3부 「횡단하는 소리풍경」에서는 동시대 한국 시를 ‘소리풍경’이라는 독창적 프리즘으로 읽어낸다. 시를 ‘공기 중에 날려버리’기를 꿈꾼 정현종의 시 세계를 두고, 만물과 시선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무한 바깥”을 향해 비상하는 시인의 몽상이 어떻게 시적 깨달음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광주 바깥에서 광주의 5월을 경험한 최하림의 시에서는 “심연으로 내려가는 바람의 노래”를, 이재무의 시에서는 ‘정겨운 유목민’의 ‘낙타의 소리풍경’을 읽어내며 각각의 시인이 도달한 서정의 깊이를 짚는다. 이승하의 ‘사람 사막’에서 비를 비는 시혼, 곽효환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하는 시선, 그리고 한경옥의 시집을 ‘아트라베시아모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독해까지. 저자는 시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횡단하며 도달한 ‘소리풍경’을 되살려낸다.

4부 「디아스포라 횡단」에서는 한국 문학이 분단과 역사, 권력과 상상의 문제를 어떻게 넘어섰는지를 해부한다. 분단 상황을 초극하기 위해 ‘문화형 문학’을 발명한 최인훈의 성취를 재조명하며, 이념과 체제의 벽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긴다. 홍성원의 『주말여행』에서는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김원일의 소설에서는 연처럼 새처럼 분단의 매트릭스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힘을 발견한다.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을 통해서는 권력의 바깥에서 가능한 상상의 비상을, 함정임의 소설에서는 해운대와 영도라는 장소성이 품은 글쓰기의 힘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문학 세계를 향한 깊고도 뜨거운 헌사를 건넨다.

한강의 ‘고통의 법열’과 ‘깊은 주문’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문학 세계를 “고통의 법열(法悅)과 깊은 주문(呪文)”으로 정의한다. 2024년 10월 10일 저녁, 남도 여수의 병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한강의 첫 소설집이 바로 『여수의 사랑』이었음을 떠올리고, 그 공교로운 인연에 깊이 놀란다. “텅 빈 항아리 되어” 역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울리게 한 한강 문학의 비밀을 비평의 언어로 풀어낸다.

세계의 고통을 껴안는 가장 뜨겁고도 서늘한 기록

저자에게 비평이란 타자의 고통에 공명하고, 그 상처를 제 몸으로 앓으며 새로운 사유의 주름을 열어나가는 과정이다. 나스카의 주름이 수천 년을 지나 여전히 접히고 펼쳐지듯, 저자는 동시대의 문학예술 앞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새로운 비평의 주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숭고의 주름』은 넘쳐나는 가벼운 감상들 사이에서, 비평이 어떻게 세계의 고통을 껴안고 새로운 윤리적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뜨겁고도 서늘한 기록이다.

평론가 우찬제에게 독자란 이 시대를 함께 읽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동료들이다. 세계의 균열을 기꺼이 제 몸의 주름으로 받아내는 『숭고의 주름』의 문장들은, 절망의 시대를 견디며 새로운 숭고를 탐색하는 이들에게 묵직하고도 다정한 언어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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