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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를 펴내며
기획의 말 우찬제 ‘나’와 ‘남’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광호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 하기’의 역사적 몽타주 강동호 낭만적 무의식─진실한 ‘나’의 역사적 근원들 강계숙 한국 여성시의 시작(始作/詩作)을 돌아보다─‘탄실이’부터 ‘비리데기’까지 심진경 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여성-나’의 서사 전략과 정치학 우찬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탈존의 주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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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믿는 ‘나’는 이미 무지한 육체이다. ‘말하는-쓰는 나’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언어는 이데올로기적 호명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필연성과 인과관계를 우발적이고 우연한 ‘나’의 존재론으로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원의 부재로서의 ‘나’는 우연이고 공백이며 그럴 때 ‘나와 세계’의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잠재성이 열린다. [……] ‘나’의 비결정성은 ‘세계’의 비결정성이고, 그것이 ‘나’와 ‘세계’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문제는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지의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미지의 ‘아이-노인’을 지금 껴안고, 그렇다면 ‘나’는, ‘너’는.
--- 「이광호,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 하기’의 역사적 몽타주」 중에서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진실한 나’를 지향하고, 그에 부합하는 사상적?이념적 내용과 언어적 표현 형식을 모색해왔던 근대문학의 역사를 낭만주의라는 틀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은, 문학이라는 자기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시험해왔던 지난 시기의 수많은 분열과 실패의 국면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미완과 미결의 풍경들을 다시 포착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과거의 역사적 분열과 실패를 동시대의 문화적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균열과 연결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 「강동호, 낭만적 무의식─진실한 ‘나’의 역사적 근원들」 중에서 글쓰기-주체로의 존재 변이가 근본적 불안을 야기하는 상태를 무시하고 남성성/여성성을 구획하는 기존의 성차적 이분법을 암암리에 전 제한다면, 한국 여성시의 기원은 감정 과잉의 상태 혹은 감정 여과의 실패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 근대적 개인으로서 자기를 정초하려 는 노력, 즉 여성의 자발적 주체화가 사회적 조건과 마주하며 빚어낸 다양한 자아의 양상 및 그 문학적 형상은 감상성/애상성의 형태로 드 러날 때라도 그 자체로 이미 ‘근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상주의가 절제와 지적 연마를 요구하는 남성적 정전의 영향이나 방법과 달리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되는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남성적 시선에 의한 대상화를 거부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정립을 비로소 가늠할 수 있다. --- 「강계숙, 한국 여성시의 시작(始作/詩作)을 돌아보다─‘탄실이’부터 ‘비리데기’까지」 중에서 ‘여성-나’의 문제에는 내부의 타자로 식민화된 여성의 존재론적 조건, 그 속에서 반복된 여성 혐오적 폭력의 역사, 성적?사회적 욕망의 각성을 통한 주체로의 전환,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자아로의 확장 등 훨씬 더 다양한 층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런 만큼 한국문학의 장에서 ‘여성으로서의 나’를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진정한 자아를 발굴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자아가 언제, 어떤 담론적 조건 속에서 가능해졌는가를 묻는 일이며, 여성 자아의 역사적 구성 과정을 기록하는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자기-되기’는 텍스트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여성문학사 자체의 존재 방식이다. --- 「심진경, 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여성-나’의 서사 전략과 정치학」 중에서 현대문학사에서 나는 혼돈 속에서 주름으로 접혀 있다가 탈존의 구체적 계기에 따라 새로운 가능 주체로 거듭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단일한 방향으로 전개되거나 일회적으로 발현되는 게 아니다. 다방면으로 역동적으로 흐른다. 변화하고 재구성된다. 주름에 접혀 있던 무한한 가능성이 다채롭게 발산하는 계기들도 탄력적이다. [……] 나를 탐사하는 문학사는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는 기획이 아니다. 오히려 왜 나를 찾을 수 없는지, 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지, 그에 대한 변명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렇긴 하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긍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빛나는 크고 작은 나의 고원들을 탐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여로가 될 수 있다. --- 「우찬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탈존의 주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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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난 세상 모든 ‘나’의 오랜 문학적 모험
유동하는 자아상의 좌표들을 점묘하며 선명해지는 시대의 초상 이광호의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 하기’의 역사적 몽타주」는 존재론적 주체를 넘어서 수사학적 주체가 탄력적으로 형성될 가능성과 그 다채로운 맥락을 성찰하며, 수사학적 ‘나’의 풍경을 역동적으로 구성한다. 문학 공간에서 ‘나의 글쓰기’는 ‘나’의 주체성을 탐문하는 과정이자, 역설적으로 ‘나’의 불완전성과 가변성을 발견하는 복합적 수행 도정이다. ‘나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특히 ‘나의 글쓰기’는 수행적 역동성을 통해 동일성의 닫힌 틀을 넘어 타자들에 다각적으로 스며들면서 다양한 가능 세계를 생성한다. 자아의 감옥을 파옥하는 분열적 격렬성은 물론 타자와 더불어 해방의 계기들로 탈주하는 심미적 실험성으로 말미암아 종종 ‘일인칭 하기’는 위험한 글쓰기의 모험을 수행한다. 위험한 위반을 통해 거듭 다시 태어난다. 경험하는 ‘나’와 쓰는 ‘나’ 사이의 역동적 방정식과 더불어 ‘일인칭 하기’의 모험 속에서 한국문학은 잠재적이자 가상적인, 그야말로 ‘버추얼’한 ‘나’를 발명해왔다. 그런 일인칭 하기의 문제성을 역사적?정치적?젠더적?문화적?문학적 맥락 등에서 다층적으로 몽타주한다. 가령 일제강점기 염상섭과 백신애는 기행문이나 편지 등의 수사학적 장치에 탈식민적이거나 젠더적인 정치성을 내장한 일인칭 하기를 시도했다. 젠더와 일인칭 하기는 한강과 배수아의 사례를 통해 더욱 상징적으로 전경화된다. 한강의 소설에서 ‘나’의 목소리의 리듬 자체를 재맥락화하거나 배수아의 소설에서 낯선 여성 주체를 생성하는 일인칭 글쓰기 양상을 주목한다. 최인훈과 이청준을 통해 소설 쓰기와 그 불가능성의 문제를 탐색하는 일인칭 글쓰기의 심미적 수행성을 해찰한 다음, 이상과 김혜순을 중심으로 일인칭 하기의 급진성을 논의한다. ‘나’의 동일성과 일인칭 진정성 신화를 통렬하게 난타하면서 분열증적 활력으로 혼돈과 생성의 새로운 탈주를 보인 일인칭 하기의 미학과 윤리를 점검한다. 강동호의 「낭만적 무의식?진실한 ‘나’의 역사적 근원들」은 동시대 문학/문화에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는 낭만적 충동 혹은 낭만적 무의식의 역사적 지속과 변화상을 중층적으로 탐문한 글이다. 부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진실한 나’에 대한 낭만적 열정은 하나의 역사적 근원을 지닌 것이 아니다. 무의식처럼 저변에 흐르면서 다양한 계기와 주름을 형성하는 낭만적 무의식을 통해 ‘나’와 ‘나’의 시학이 변형?생성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갈등하면서 복합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시적 주체(들)의 양상과 담론을 성찰한다. 한국 근대문학의 주요한 ‘기원origin’(들) 중 하나로 낭만주의를 주목하면서 그 낭만적 충동의 역사적 분열과 실패를 동시대성으로 재해석하고 재성찰한다. 과학과 예술,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사이에서 탈마법화와 재마법화의 혼란스러운 착종 및 분열의 증후를 드러냈던 이광수, 시의 본질을 주관적 심령의 신비로운 발현으로 이해하면서도 시형의 음률과 호흡 사이 분열을 보였던 김억, ‘영률(靈律)’이라는 신비스러운 내면의 감응으로부터 시의 근거를 낭만적으로 탐문했던 황석우를 거쳐 김소월의 자유시 담론에 깊은 눈길을 준다. 김소월의 시적 화자 ‘나’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헤아리면서 자유시 담론을 발본적으로 들여다본다. 전통적 ‘한’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시적 화자 ‘나’의 잉여 의지를 응시하면서 김소월 시의 예외성과 혁명성을 읽어낸다. 서정적 동일성의 근대적 원근법을 역설적으로 전통적 형식의 틀 안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한 김소월을 “자신의 가능성을 능동적으로 변주할 수 있는 주체적 계기를 모색한, 내면의 입법자였다”라고 평가한다. 이런저런 현상과 담론의 심연에서 낭만적 무의식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점묘하면서 동시대성 문제와 관련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강계숙의 「한국 여성시의 시작(始作/詩作)을 돌아보다?‘탄실이’부터 ‘비리데기’까지」는 여성시의 시작과 진화 맥락을 성찰한다. 남성 중심의 시단을 거슬러 한국 여성시의 다양한 정념의 주체들이 새로운 자아상을 창조함으로써 일련의 계보를 구축해왔음을 숙고한다. 김명순에서 노천명, 모윤숙, 김남조, 홍윤숙을 거쳐 강은교에 이르기까지 여성 시인이 맞닥뜨린 이중 구속 상태로부터의 탈주 도정을 역동적으로 헤아린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상재된 1925년에 『생명의 과실』을 출간한 한국 최초의 여성 시인 김명순과 그녀를 둘러싼 문제적 상황을 주목한다. 여성의 자기표현에 징벌을 가하고 축출하려 했던 조선조 말의 질서가 낳은 근대 여성의 불안 가운데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자기를 주체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이가 김명순이다. 그녀의 개인-주체-되기를 통한 여성 문인의 탄생 사건이 추방과 유폐라는 비극적 귀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문학사적 불화의 풍경을 생생하게 논의한다. 김명순류의 저주받은 여성 시인의 말하기-글쓰기 양상과 그 수용은, 멜로드라마적 숭고의 주체와 성화(聖化)된 자아상을 보여준 모윤숙과 김남조를 거쳐 강은교에 이르면 새로운 단계로 진화한다. 남성의 대상 존재가 되기를 마다하고 남성 시선의 내면화를 예리하게 거스르면서 여성의 주체화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남성적-근대적 주체의 비판을 통해 탐색한 강은교로부터 한국 시의 여성시학이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경계의 존재, 이성적?합리적 세계로부터 이탈하여 근대적 남성성이 자랑하는 명확성과 확실성에 의문부호를 다는 식별 불가능한 존재. 그러한 존재-되기로서의 주체화 선언”을 전경화한다. 심진경의 「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여성-나’의 서사 전략과 정치학」은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해체되어왔으며 타자로서 혹은 타자 되기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미학을 열어왔는지 심도 있게 탐문한다. 여성 자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서사 전략과 젠더 정치적 맥락에서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여성-나’의 문제에는 내부의 타자로 식민화된 여성의 존재론적 조건이라는 저변에서 되풀이된 여성 혐오와 그 폭력의 역사, 성적?사회적 욕망의 각성을 통한 주체로의 전환 그리고 타자에의 공감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자아로의 확장 등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층위와 테마 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여성 자아가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과정 혹은 여성의 ‘자기-되기’가 변형?생성되는 과정을 성찰하는 작업은 여성문학사의 유의미한 실천이 될 수 있다. 근대문학 형성기 여성의 삶을 스스로 언어화하려는 정치적 수사학을 펼쳤던 김명순과 나혜석의 시도, 그것을 왜곡하고 배제하려 했던 낙인찍기의 역사, 그 부정적 영향으로 가부장제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어적인 창작을 해야 했던 1930년대 여성 작가들, 그런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지배적인 언어로 대항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은폐와 폭로의 이중 전략을 구사해야 했던 문학사적 풍경을 살핀다. 남성 중심적 규범에 저항하는 ‘불복종 여성’의 초상을 그린 백신애의 「광인수기」를 거쳐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이르는 경로가 주목에 값한다. 히스테리적 서사 전략으로 여성적 쾌락을 잔존시키며 가부장제와 공모하는 체하면서 그 교란을 수행하려 했던 최정희와 오정희의 소설을 거쳐, 1990년대 여성문학 대폭발 이후의 다층적 궤적들을 헤아리면서 “여성 정체성을 넘어 다자성의 윤리로” 이행하는 흐름을 읽어낸다. 여성문학이 자기 자신과 맺어온 관계와 그 변화의 자취를 살피면서 ‘나’와는 완전히 다른 무수한 정체성(들)과 연관된 여성의 ‘자기 발견’ 문제를 깊이 성찰한다. 우찬제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탈존의 주름」은 왜 나를 찾을 수 없는지, 왜 내가 나임을 입증하거나 말할 수 없는지 변명할 심미적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해 복합적 시간 여행을 수행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나’들은 탈존의 탈주선에서 늘 생성 중인 역동적 심미성을 가까스로 추구한다. 이상의 유리 거울, 윤동주의 물거울과 구리 거울, 김동리와 오정희의 구리 거울 등 탈존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은 실로 만화경처럼 다양하다. 게다가 그 거울들은 때때로 일그러져 있거나 주름 잡힌 형상임을 성찰한다. 주름은 안과 밖, ‘나’와 남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한다. 상상하는 ‘나’는 그토록 무수한 주름의 교차와 상호작용 속에서 중층적이고 다각적으로 형성된다. 마치 천이 접힐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탈주하듯 상상하는 ‘나’ 또한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부단히 변형되고 혁신된다. 늘 새롭게 자기 존재를 입증하려 하지만, 그 또한 입증하기 어렵다는 사실의 알리바이이기도 하다. 한국의 현대 작가들은 존재의 주름에 갇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온 존재를 기울여 탈존의 계기를 모색하려는 산문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현실과 대결하려는 의지와 이데올로기가 강한 ‘큰 나’들의 고원과 비루한 존재의 잔주름을 파고드는 ‘작은 나’들의 협곡이, 서로 스미고 짜이는 가운데, 그 차이와 반복으로 현대문학사의 어떤 동력을 형성했다. 존재 비용으로 말미암아 고립의 주름 속에서 고통받는 ‘나’들의 풍경, 그러다 자기 거울에 갇히기도 하고 갇힌 거울 속에서 새로운 탈존의 터를 마련하고자 궁리하기도 하는 정경, 생명의 벼리를 성찰하는 ‘나’들과 여성의 탈존 지평을 숙고한 ‘나’들의 초상 그리고 20세기 한국 역사와 현실, 공동체와 대화하며 상호주관성의 지평에서 탈존의 심미적 터전을 마련하려는 모색 등을 살핌으로써 20세기 한국인의 존재론과 역정에 관련한 심층적인 질문들과 마주한다. 이광수의 계몽주의에서 원종국의 포스트휴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나’와 ‘나’의 말을 위한 혹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너’를 위한 탄력적인 상상력을 헤아린다. 기획의 말, 「‘나’와 ‘남’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기획위원 우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