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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를 펴내며
기획의 말 김형중 계보 없는, 폭력의 문학사 이수형 국가와 폭력, 혹은 국가폭력의 기원 김영찬 폭발하는 분노와 충동의 목소리─충동의 문학사, 혹은 돌연변이의 계보학 임유경 문학과 검열─한국 현대문학의 형성과 제도적 무의식 권희철 중지한다, 금지한다, 너의 죽음을─5·18 소설을 중심으로 본 애도의 문학사 김형중 통치성의 소설사 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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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탄생이 국가폭력의 탄생이었다는 앞의 언급을 상기한다면 사실 모든 근대 국가가 그 안에 불법적·범죄적 기원을 내장하고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잘 감춰온 서구 선진국들의 정치적 신화에 비하면 이스라엘 못지않게 우리나라 역시 국가의 기원에 시원적 폭력이 수반되었다는 역사적 참상을 노골적으로 증언하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폭력의 문제를 단지 지우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은폐하거나 외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도 아닌, 그것을 직시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이번 12·3 비상계엄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폭력의 망동(妄動)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 「이수형, 국가와 폭력, 혹은 국가폭력의 기원」 중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충동의 서사는 일차적으로 한국적 근대의 폭력에 대한 문학적 반응의 한 양식이었다. 그것은 대부분 통제되지 않는 분노와 짝지어져 있었고, 그런 만큼 소설 스스로가 폭력적 현실의 증상이 되어 격렬한 자기 파괴적 비판과 부정의 정신증적 드라마를 펼쳐놓고 있었다. 하지만 충동의 서사가 갖는 가능성은 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국문학에서 그 가능성은 아직 절반도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출몰한 충동의 서사가 대부분 끔찍한 살인과 폭력을 동반하는 병리적 서사 너머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 「김영찬, 폭발하는 분노와 충동의 목소리─충돌의 문학사, 혹은 돌연변이의 계보학」 중에서 문학은 검열과 함께 태어난다. 이는 문학과 검열이 서로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체계 속에서 서로를 전제하며 상호 구성된다는 점을 뜻한다. 양자는 발화의 임계, 즉 무엇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조건 안에서 작동한다. 이때 임계는 단일하고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미세하게 진동하는 허용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지칭한다. 바로 이 유동성과 가변성으로 인해 검열은 단순한 금지 장치를 넘어 발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늠하고 배치하는 기준이 되며, 문학은 저항의 수사에 그치지 않고 우회, 생략, 다성적 발화, 형식적 변주를 통해 그 임계를 교란하고 재편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게 된다. --- 「임유경, 문학과 검열─한국 현대문학의 형성과 제도적 무의식」 중에서 『소년이 온다』에서는 애도가 바로 그런 것으로 그려져 있다. 고통을 향해 기울어지고 다가가며 또 다른 기울어짐을 모으고 휘말린 채로 살아가기. 그런 의미에서의 애도 작업은, 장례식은, 일상의 다른 흐름들로부터 격리된 예외적인 구간이 아니고, 그 예외적 구간을 지나고 난 뒤에 망자와 생자가 각자의 안정된 자리로 복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애도는 고통을 통해 타인을 끌어안고 타인에게 안기며 살아가는 삶의 형식이 된다. 그렇게 해서 “삶이 장례식”이 된다. 삶이 장례식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이 죽음과도 같이 어둡고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만이 아니고, 애도하면서 살아가고 애도를 통해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존재들의 위태로움에 마음 쓰고 기울어지고 휘말리는 일은 이전의 안정적이고 완결된 ‘나’가 허물어지고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니 변화를 겪고 낯선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장례식이 된 삶, 애도하는?삶이다. --- 「권희철, 중지한다, 금지한다, 너의 죽음을─5·18 소설을 중심으로 본 애도의 문학사」 중에서 통치성의 소설사를 쓰려는 시도의 난점이 이로부터 유래한다. 세 메커니즘이 착종된 생명 정치의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문학사의 연대기적 서술이 불가능한 것이다. 주권 권력과 규율 권력, 그리고 생명 권력이 착종되어 거의 동시대적으로 작동했던 1960~80년대 시기 한국의 권력 작동 양상을 살펴보면 이 난점은 도드라진다. 박정희의 ‘가족계획 사업’은 어떤 권력 메커니즘에 속하는가? 그것은 국가 주도로 강제되었다(주권 권력). 그러나 각종의 의학 캠페인과 계몽 조직들, 언론, 관료 기구들, 말하자면 다양한 ‘장치들’의 작동에 의해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규율 권력). 그리고 그 정책은 한편 생물학적으로 환원된 ‘인구’에 대해 통계와 비용 계산의 효율성에 따라 실행되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이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마찬가지다(생명 권력). 이렇듯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은 한국적 통치성의 역사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현상이다. --- 「김형중, 통치성의 소설사 시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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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과 통제 아래 봉합되지 않은 국가폭력의 상흔들
분열된 사회에서 ‘폭력’의 계보를 되짚고 진정한 애도를 사유하다 이수형의 글 「국가와 폭력, 혹은 국가폭력의 기원」은 ‘(국가)폭력’의 개념 자체를 (정치철학의 역사를 더듬어) 발본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이인직과 이청준의 작품을 거론하지만, 한국문학사를 국가폭력의 역사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사양한다. 김영찬의 글 「폭발하는 분노와 충동의 목소리?충동의 문학사, 혹은 돌연변이의 계보학」도 마찬가지다. 마치 ‘분노와 충동의 문학사’처럼 읽히는 이 글에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계보에 속하는 작품들의 ‘계보 없음’(“계보 없는 계보”), 곧 ‘돌출성’이다. 임유경의 「문학과 검열?한국 현대문학의 형성과 제도적 무의식」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검열의 연대기를 쓰고 있지만 필자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검열은 특정한 텍스트나 매체를 넘어, 피지배 주체의 일상과 삶 전체를 관리하는 통치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명백히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향해 있는 이와 같은 주장은 ‘검열의 문학사’라기보다는 검열이라는 ‘장치’의 작동 방식에 대한 계보학적 고찰에 가깝다. 권희철 역시 ‘애도의 문학사’를 쓴다. 그러나 그의 글 「중지한다, 금지한다, 너의 죽음을?5·18 소설을 중심으로 본 애도의 문학사」에 역사는 없다. 임철우에서 한강까지, 그는 이른바 ‘오월 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애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밀하게 다루지만 통시성은 거의 배제된다. 즉 한국전쟁이나 4·3, 용산참사, 세월호참사 등은 그의 애도의 문학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시성 없는 채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분명 ‘문학사’적 서술에 속하는데, 이유인즉, 그가 이 글을 통해 이행기 정의의 대상이 되는 모든 국가폭력, 그리고 참사 트라우마에 따른 애도 작업에서 문학이 맞닥뜨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중이 「통치성의 소설사 시론」에서 푸코의 권력이론에 따라 기존의 한국문학사에 도전할 때 가장 강조하는 점도 자신의 글쓰기가 계보학적이며, 연대기적이고 인과적인 문학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통치성은 ‘장기 지속’하며 특히 한국적 통치성은 연대기를 불허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어떤 독자는 ‘폭력’이라는 주제로 묶인 여기 다섯 편의 글에서 산만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애초부터 그런 사태를 감수해야 할 부담으로 떠안고 출발했다. 함께 출간되는 ‘동시대 문학사’의 다른 책들과 관련 속에서 볼 때, 이 책은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그러나 총체적이고 단일하게 관통할 수는 없는) 키워드들 중 하나인 ‘폭력’의 주제계에 속한다. 그리고 그 주제계를 이루는 몇 개의 ‘성좌들’을 추렸다. 폭력, 분노, 검열, 애도, 통치성이 그것이다. 이 키워드들은 상호 관련되지만 하나의 메타 서사로 봉합되지 않는다. 벤야민의 어법을 빌려 ‘성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우리는 하늘의 별들에 자리를 부여해 성좌를 그려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좌를 이루는 별들이 각각 다른 시공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렇게 한다. 그것들은 연관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분리되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 책은 일종의 ‘집합체’(브뤼노 라투르)다. 그런 문학사 아닌 문학사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런 무모해 보이는, 그러나 분명 유의미한 시도를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어주길 바랄 뿐이다. 기획의 말, 「계보 없는, 폭력의 문학사」 기획위원 김형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