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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은 미술관
골목길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삶
김정화
쌤앤파커스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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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들라크루아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로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라 로슈 저택, 빌라 사부아)

자코메티 미술관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수학했다.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연구소 연구교수와 명지대학교 박물관학과 교수,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공예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개관을 총괄했다. 오랜 시간 파리에서 생활하며 문학과 미술, 도시의 층위를 함께 경험해온 그는, 작품을 개별적인 대상으로 보기보다 그것이 놓인 공간과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시선을 발전시켜왔다.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 전시와 제도를 설계해온 경험은, 예술을 ‘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그러한 시선이 가장 자연스럽게 귀결된 결과물이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수학했다.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연구소 연구교수와 명지대학교 박물관학과 교수,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공예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개관을 총괄했다.
오랜 시간 파리에서 생활하며 문학과 미술, 도시의 층위를 함께 경험해온 그는, 작품을 개별적인 대상으로 보기보다 그것이 놓인 공간과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시선을 발전시켜왔다.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 전시와 제도를 설계해온 경험은, 예술을 ‘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그러한 시선이 가장 자연스럽게 귀결된 결과물이다. 파리의 크고 유명한 미술관이 아닌, 한 인물의 삶과 작업이 응축된 작은 미술관들을 따라 걸으며, 작품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축적된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풀어낸다. 작가의 작업실이었던 집,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원, 기억이 켜켜이 쌓인 전시 공간을 통해 미술관을 단순한 관람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로 읽어내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파리를 ‘보는 도시’가 아니라 ‘읽는 도시’로 다시 펼쳐 보인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140*200*19mm
ISBN13
9791124070949

책 속으로

60세에 가까운 노년의 작가가 이렇게 막역한 친구들과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동네를 떠나 센강 좌안의 협소한 집으로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아마 의뢰를 받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지지부진하고 있는 생쉴피스 성당 벽화 작업을 끝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골목을 나와 생제르맹 대로를 건너 조금만 걸으면, 가까운 곳에 생쉴피스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 p.27, 〈들라크루아 미술관〉 중에서

‘신비한 다리 같은 것’을 만드는 회화의 힘. 들라크루아는 그 힘의 모티브를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비롯하여 많은 문학 작품 속 갈등에 사로잡힌 인물에서 가져왔다. 특히 당시 영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던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바이런의 희곡 『사르다나팔루스』에서 영감을 받아, 멸망에 처한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자결하기 전 자신의 애첩과 말들을 모두 죽이는 장면을 그린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 대표작이다. 환락과 멸망을 다룬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혼란하고 폭력적인 장면 구성 위에 강력한 붉은색이 피바다처럼 전 화면에 걸쳐 칠해져 있는 이 작품은 당시 살롱전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 p.35, 〈들라크루아 미술관〉 중에서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2년 후인 1863년 8월에 퓌르스탕베르가의 집에서 숨을 거둔다. 죽기 두 달 전인 6월 22일, 그가 수첩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회화의 첫 번째 장점은 우리 눈에 축제가 된다는 것이다”로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눈이 그림의 세밀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눈은 가짜고 생기가 없다. 이들은 말 그대로 사물만 볼 뿐 그 안의 본질은 보지 못한다”라고 끝맺는다. 들라크루아는 무엇보다 진정
으로 예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찾고자 한 사람이었다. 보들레르는 그가 “열정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었으나, 열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가능한 한 명료하고 냉정하게 결연했던 사람”이며, “꽃다발 같은 겉모습에 예술적으로 감춰진 화산 분화구”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 pp.56~58, 〈들라크루아 미술관〉 중에서

폴 마르모탕도 미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미술에 눈을 감았고, 오로지 아카데미가 고수하는 전통적인 예술의 미학과 가치만 옹호했다. 그가 1886년에 출판한 『프랑스 회화1789~1830』의 서문에서 전통적인 미술이 잊히고 있음을 한탄하며 당시 등장하던 새로운 미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데생을 하지 않고, 그저 형태를 대충 끄적거리기만 한다. 이게 작금에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경향이다. …… 이런 문란함은 예술애호가들이 무식해서, 혹은 그들이 너무 관대해서 그저 ‘인상’이나 찾는 것에 자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걸 회화라고, 아니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pp.70~71,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중에서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가구와 조각들, 인물화 사이로 나폴레옹 1세와 두 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의 결혼을 기념하는 그림이 흥미롭다. 이 그림은 세로 2미터가 넘고 폭은 1미터 정도인데, 아마 그림을 걸려고 했던 벽에 맞춰 그렸을 것이다. 상단은 하늘과 나무의 풍경이 차지하고 아래로는 궁정의 풍경이 담겨 있다. 콩피에뉴 성에서 황제가 황후를 대동하고 사냥을 떠나는 장면으로, 말을 탄 나폴레옹 1세가 앞장서고 뒤에 황후가 시녀와 함께 황금색 마차를 타고 뒤따르고 있다. 하늘에는 황제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쏘아 올린 불꽃놀이가 아직 빛을 발하고 있다.
--- pp.80~82,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중에서

천장이 나지막한 전시실 전체에 연못에 비친 하늘과 구름, 수련, 흐드러진 수양버들, 연못가에 핀 붓꽃,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하다. 전시의 끝부분에 이르면서는 ‘이게 모네 그림이라고?’ 놀라며 다시 좌우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크고 굵은 붓질이 화면을 쓸고 지나간 듯하기도 하고, 얽히고설켜 있는 붓 자국이 혼란하기도 하다. 전체가 붉은색으로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은가 하면 검정에 가까운 진한 녹색이 몰아치기도 한다. 전시장 입구에 써 있던 “……분출일 뿐”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 pp.95~96,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중에서

돌마당을 가로질러 〈지옥의 문〉을 향해 간다. 가는 길 도중에 멀리서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을 설치해놓았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중 〈지옥편〉을 형상화한 군상들이 문과 양쪽 기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위, 정가운데에 한 남자가 턱에 손을 괴고 고통이 들끓는 지옥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전에 만난 〈생각
하는 사람〉과 같은 남자다. 〈지옥의 문〉의 일부분으로 구상했던 것을 독립 작품으로 만들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 p.110, 〈로댕 미술관〉 중에서

그의 새로운 결심을 담아 처음 발표한 작품이 1877년 작 〈청동 시대〉다. 이 작품은 종래의 조각이 아름답게 미화하여 신성한 존재로 표현하던 남자의 신체를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다. 모델을 보고 조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몸을 그대로 석고로 떠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로댕은 공개적으로 다시 작업 과정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입증해야 했다. 로댕의 창작품이라고 판명이 나서야 국가
가 석고본을 구입하여 1880년에 청동으로 주조하였다.
--- pp.120~122, 〈로댕 미술관〉 중에서

특히 손만 모아놓은 전시실에서는 로댕이 인체의 부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사람의 손이 이렇게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 한 손은 외로움의 비탄을, 또 다른 손은 고통의 절규를, 어떤 손은 창조주의 전지전능한 힘을 표현하고, 어떤 손은 은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다.
두 개의 오른손이 맞닿아 기도와 사랑을 형상화한 작품 〈대성당〉에서는 신체의 일부가 온전한 감정의 주체가 된다. “손이나 다리 하나만으로도 얼굴만큼이나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로댕의 주장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 p.126, 〈로댕 미술관〉 중에서

이 시기에 로댕과 클로델의 작품은 양식적으로 서로 너무 유사하여 누구의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후대에 로댕의 유작들을 정리하면서 그의 작품이라고 분류되었던 일부가 클로델의 작업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클로델의 작품인 〈밀짚 다발을 든 소녀〉를 그대로 가져와 로댕이 대리석으로 〈갈라테이아〉를 제작한 사례는 두 사람의 복잡한 예술적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 p.134, 〈로댕 미술관〉 중에서

살로메는 신약성경에서 헤롯의 의붓딸로,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춤으로 그를 만족시키고 그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 가져오게 만든 인물이다. 많은 화가들이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인간의 욕망과 죄에 대한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모로가 1870년대에 묘사한 살로메는 성경 속의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에로티시즘과 신비함을 발하는 요부, ‘팜 파탈’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특히 〈환영〉에서는 춤추는 살로메의 눈앞에 잘린 요한의 머리가 허공에 빛을 발하며 등장한 순간을 묘사함으로써 신비함이 더욱 커진다.
위스망스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모로의 살로메는 단순한 무희가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자신을 바라보는 것,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묘사한다.
--- pp.148~149,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중에서

3층과 4층은 모로의 작업실을 개조하여 새로 만든 전시실이다. 3층에 오르는 순간 눈앞에 천장이 높고 탁 트인 전시실이 펼쳐지면서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만난다. 휘둥그레진 마음으로 몸을 한 바퀴 돌려 전체를 둘러보다가 4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의 아름다운 곡선에 시선을 사로잡히고, 그러고 나서야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3층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파트로 임대를 주었다가 1895년 미술관으로 개조 공사를 하면서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천장을 높이고 북쪽 벽은 통창으로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 p.168,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중에서

모로가 활동한 1850년대에서 1890년대 사이의 미술을 떠올려본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그리고 당시에는 살롱전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나중에는 ‘이발소 그림’이라고 치부되면서 미술사의 뒷전으로 떨어지고만 그림들까지도. 미술이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미술은 왜 그런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가, 또 어떤 내용을 어떻게 그리는가, 미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등 예술가들이 던졌던 질문들은 모두 달랐고, 그에 따라 다양한 화풍이 교차했지만, 모로는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고 어떤 화풍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 pp.171~172,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중에서

무엇보다 그를 편안히 받아준 것은 술집과 유곽의 여인들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고, 그는 일상을 기록하듯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그리면서 화가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물랭 루주가 생기자 그는 단골이 되었고,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서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무희의 춤과 객석의 표정, 서로 다른 각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밤의 장면들을 화면에 담았다. 향락에 취해 있으면서도 어딘지 외로움이 배어 있는 실루엣들, 그것이 로트레크가 남긴 몽마르트르의 얼굴이다.
--- pp.191~193,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르누아르의 작업실이 있던 코르토가 12번지는 오늘날 ‘몽마르트르 미술관과 르누아르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시의 건물 두 채와 정원을 합친 공간이고, 정원에는 그림 속 그네를 재현해두었고 장미 정원도 갖추어놓았다. 미술관 본관은 두 건물 중 아래쪽 건물이다. 코르토가의 입구로 들어가 작은 정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계단 몇 개를 내려가면 소박한 건물이 나온다. 마당을 둘러친 낮은 돌담 너머로 언덕 아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전망이 좋다. 무엇보다 담벼락 아래로 몽마르트르에 남아 있는 마지막 포도밭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 pp.205~206,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수잔 발라동은 화가다.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었기에 화가가 될 수 있었던 화가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를 말할 때는 이런 표현이 오히려 가장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몽마르트르 골목에서 신산한 삶을 살던 천덕꾸러기 소녀가, 화가들의 모델로 살았던 젊은 시절을 지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중년의 나이에 당당한 화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곳 몽마르트르였기에 가능했던 인생의 굴곡이 이 전시실에 하나의 서사로 펼쳐져 있다.
--- p.207,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냥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소용돌이치며 변하던 세상을 몸으로 통과한 사람들의 숨결이 배어 있기에 아름답다. 지난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꿈꾸던 세계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태어나고 자리 잡을 수 있었기에 아름답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마법 같던 시간의 기억과 흔적이 골목길 구석구석에 깊게 남아 있기에 아름답다. 그래서 이 언덕의 풍경은, 오래 바라볼수록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처럼 느껴진다.
--- p.228,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그리하여 국립 피카소 미술관은 1985년 10월 개관했다. 벌써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미술관은 대대적인 개축을 거쳤다. 2009년부터 5년간 문을 닫고 건물을 전면 복원해 17세기의 화려함을 되살리는 한편, 전시실을 확장하고 관람 동선을 재정비했다. 소장품도 꾸준히 증가했다. 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고, 개인 소장가들의 기증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이자 두 번째 정식 부인인 자클린이 1986년에 사망하자, 다시 한 번 상속세 물납으로 많은 작품들이 대납되면서 피카소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피카소 컬렉션을 자랑하게 된다.
--- pp.243~244, 〈피카소 미술관〉 중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남은 〈화가와 모델〉을 보면, 입체주의를 떠나 고전적인 데생으로 돌아가 ‘영원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림 속 피카소는 모델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이후 그는 생의 거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자신’을 반복해서 그린다. 노년에 그린 그림들에서는 쓱쓱 그어버린 듯한 붓질로 물감이 흘러내리는 듯해도, 모델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빛만은 이상할 만큼 생생하다.
--- p.253, 〈피카소 미술관〉 중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바뀌면 화풍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삶과 작품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는 심장이 뛰는 대로 사랑했고, 숨 쉬는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과 조각 앞에서 자꾸만 묻게 된다. 그는 모델을 바라보며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작품을 하고 있었을까를.
--- p.259, 〈피카소 미술관〉 중에서

그에 따르면 수 세기에 걸쳐 구조와 장식, 즉 양식만 바꿔왔던 건축은 이제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순수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듯이 장식을 배제하고 기하학적으로 명료한 형태만으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현대적인 재료로 만들어지고 가장 최신의 기능을 발휘하는 기계들인 비행기, 선박, 자동차를 사례로 들며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 정의한다. 건축 역시 기계처럼 설계되고 표준화되어 대량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건축만이 도시와 인간의 삶을 현대사회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혁명’이 가능하다는 건축 철학의 선언이었다.
--- p.271,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중에서

‘건축적 산책로’를 걸으며 붙박이 가구의 치밀함, 기능성을 전제로 한 큼직한 부엌, 수영장처럼 보이는 목욕 공간의 디자인을 발견한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빌라 사부아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그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 pp.286~288,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중에서

그의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인체 공학에 적합한 형태와 재료를 연구하여 실제 제작 가능한 디자인으로 완성해낸 핵심 인물이 샤를로트 페리앙이다. 1927년, 대학을 갓 졸업한 페리앙이 『건축을 향하여』와 『오늘날의 장식미술』을 읽고 르코르뷔지에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 “우리는 쿠션에 수를 놓지 않는다”며 돌려보냈다가, 전시장에서 그녀의 작품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p.298,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중에서

이 작업실이 특별한 이유는 자코메티가 생전에 사용하던 작업실에 있던 오리지널 작품은 물론, 가구와 벽을 그대로 가져와서 재현했다는 점이다. 자코메티가 스위스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파리의 작업실에는 그가 작업하던 모든 것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형이 숨을 거둔 날도 동생 디에고는 부랴부랴 작업실로 돌아와 형이 작업하던 조각에 젖은 천을 덮어 마르지 않도록 돌보았다고 한다. 부인 아네트는 드로잉이 여기
저기 그려져 있던 벽체도 떼어서 보존했고 낡은 의자, 화병 하나, 그야말로 먼지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 pp.317~318, 〈자코메티 미술관〉 중에서

이후 자코메티의 작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는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개인적인 특성이나 이야기를 배제하고 보편성을 발전시키는 방향이다. 사회의 혼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입장을 주장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시간에서 벗어나 초연한 존재를 그리려 한 것이다. 또 다른 방향은 이와는 반대로, 모델을 직접 보고 존재를 인식하면서 작품으로 옮기려는 노력이다. 그가 조각만큼이나 회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 p.327, 〈자코메티 미술관〉 중에서

이 길의 끝이 바로 알레지아가다. 비 오는 날 자코메티가 이 길을 건너가던 순간을 브레송이 포착해 잊을 수 없는 사진으로 남긴 바로 그 길이다. 1961년 그날, 자코메티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작업실에서 나와 늘 가던 몽파르나스의 카페나 술집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나도 그가 걷던 알레지아가로 나선다.

--- p.334, 〈자코메티 미술관〉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한 작품, 한 작가와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그곳

화가가 살아생전에 벽을 칠할 페인트의 색깔, 각 작품들이 배치될 위치, 관람객의 동선까지 예측하여 구상한 미술관이 있다면. 그런 미술관이라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예술가의 머릿속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관들이 바로 그런 공간들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르코르뷔지에, 귀스타브 모로 등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거장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는 없지만 그들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곱 개의 미술관을 소개하려 한다.

- 들라크루아 미술관: 주차장이 들어설 뻔했던 작업실을 앙리 마티스, 모리스 드니 등 후배 화가들이 지켜내다.
-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인상주의를 혐오했던 젊은 부자가 세계 최고의 인상주의 미술관을 남기다.
- 로댕 미술관: 〈생각하는 사람〉부터 〈지옥의 문〉 등 인간의 내면을 새긴 조각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
-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고 어떤 화풍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았던 단 한 명의 화가
- 몽마르트르 미술관: 그 시대에 오직 몽마르트르였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화가들의 작품이 여기 모이다.
- 피카소 미술관: 상속세로 만들어진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피카소 컬렉션
-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기능과 효율, 편의를 최우선했던 그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
- 자코메티 미술관: 책상 위 잡동사니들의 위치, 먼지 하나까지 그대로 복원한 〈걷는 남자〉의 탄생 장소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읽는 방식
익숙한 감상법을 뒤집는 또 하나의 시선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작품을 ‘무엇으로 그렸는가’로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수많은 전시와 미술관을 기획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의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낸다. 작품이 놓인 위치, 방과 방을 잇는 동선,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방향과 시선의 흐름까지, 이 모든 요소가 어떻게 감상의 순서를 만들고, 예술가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지를 치밀하게 짚어낸다.
예를 들어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서는 화가가 생전에 직접 설계한 전시 방식이 거의 그대로 구현되어, 층을 따라 이동하는 동선 자체가 그의 작업 세계를 점층적으로 이해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들라크루아 미술관에서는 침실과 식당 등 작가 살아생전의 사적인 공간과 작업실이 맞닿아 있는 구조를 통해, 작가가 어떤 환경 속에서 그림을 완성해나갔는지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만든다. 또 자코메티 미술관은 작업실의 사소한 사물과 배치까지 복원함으로써, 하나의 조각이 탄생하기까지의 밀도 높은 시간을 공간 전체로 확장하여 보여준다.
이처럼 이 책은 한 작품, 한 작가를 나열하는 대신, 공간과 전시,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화가의 선택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독자들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다시금 제안한다. 그 결과 독자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로 읽어내는 경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미술 작품과 예술가에 얽힌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미술관이라는 건축적 요소, 파리라는 도시의 예술사적 가치, 그리고 이 도시를 스쳐 지나간 찬란하게 빛났던 예술가 등 작품을 ‘보는 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는 경험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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