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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문학동네 199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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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Eun Hui Gyeong,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25년 여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한국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인생'의 흔들리는 역정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포옹한다.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도중(道中)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서로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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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6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59쪽 | 148*210*30mm
ISBN13
9788982810244

책 속으로

황사현상은 지나갔다지만 먼지 바람이 꽤 부는 날씨였다. 창밖가득 버드나무의 허연 먼지솜털이 수없이 날리고 있엇다. 먼지속에 또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가.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서 허공 속에 버드나무 솜털을 한꺼번에 흩어 놓는 바람에 시야가 흐려졌다. -먼지 속의 나비 끚맺음-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여자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액을 뒤집어 쓰면서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인다는 미용사의 호들갑에 따라 웃다가 그녀는 문득 눈가의 주름이 파상형으로 잡힌 채 웃고 있는 자기의 얼굴이 '젊다'가 아니라 '젊어 보인다'고 표현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자기가 젊게 보였던 것은 실제 육체가 젊어서가 아니고 젊게 보이는 데 자신감을 가졌던 스스로의 분위기 덕분이었다는 것을 한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큰 절이 아니라 그런지 영추사에는 불이문이 없어. 불이문? 응. 분별을 떠난 절대의 경지야. 해탈문이라고도 하고. 그 기억이 맞다면 아마 불전까지 가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머릿속에 그가 사랑을 맹세했던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영추사의 수장을 애도할 자격도 없었다. 애도할 마음도......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취할수록 남자는 점점 여자가 미웠다. 사랑하는 너, 결국 이렇게 떠나려 하고 있구나 넌 혹시 사랑이 양지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니 그래 우리는 햇살 속에서 깔깔댔지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어두워,그렇다고 완전히 어두워져 버린거니? 해가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할 순 없어? 너는 네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고 우리의 사랑을 네 인생에 별 볼일 없는 주변 사건으로 내팽개치는 모양인데 인마 사랑은 그게 아냐

--- 본문 중에서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많았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버스나 전동차에 우산을 두고 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의 우산을 갖고 따라내리는 남자는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칠칠찮다고 투덜댔다.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분이었나봐요. 당신이 좋아할 만한 남자군요. 그녀는 안심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 동안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가 두려웠던 게 아닐까 하고.

--- 본문 중에서

지금 그녀를 끌고 가는것은 어린이잡지를 읽던 마루였다. 그녀는 '믿거나 말거나'라는 페이지를 읽고 있다. 어린이여러분, 아프리카의 어떤 원시인들은 숫자를 둘까지 밖에 세지 못한대요. 하나, 둘, ......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세는지 아세요? '많다'예요. 셋이상은 무조건 많다고 하는 거래요. 셋 부터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나 봐요.

--- 본문 중에서

이중주

가만 안둘거야. 인혜는 그말이 마음에 든다. 그말이 현석의 과장된 감상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과장된 감정에 유치함을 느끼던 그녀가 술을 좀 마셨기로 현석의 순정에 감동한 것일 리는 없다. 그 말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인혜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현석의 거친 말투 속에 깃든 파탄적 예감 같은 것이 시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너무 오랬동안 틀 속에 갇혀 틀지기 노릇을 해왔다. 그러느라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하는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마구 잘라냈다. 그녀 혼자서 사지를 벌려 네모반듯한 가정이란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가족이라는 것을 키워갔다. 가족, 결혼... 그것을 지키기위해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닳아 없어져간다. 원래 그 공간은 부부라는 두 쪽의 지붕이 맞닿아 안정된 구도로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녀 혼자만 풍상에 시달리며 사지가 찢기도록 그 공간을 지키느라 안간힘이었던가.
그렇게 해서 만든 그 공간은 또하나의 틀이 될 뿐이다.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내 딸을 '나'라는 틀 속에서 키워 또다시 하나의 틀로 만드는 것이, 그런 체념적인 답보가 여자들의 삶인가. 인혜는 취했다. 취했으므로 지금 전혀 자기답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자기답지 않은 방임, 자기답지 않은 과장, 그리고 자기연민.

--- 본문 중에서

내가 서른일곱이란 나이에 등단한 것을 두고 한 선배가 덕담을 해준 적이 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알고 시작했으니 더 좋지. 자기 소설 속에서 치기를 보는 부끄러움은 면할 수 있잖아.'

그러나 인생에서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모양이다. 스스로 안심이 될 때까지 품안에서 충분히 묵히기도 전에 겁없이 세상에 내놓는 것 역시 치기의 한 형태일 테니까. 특히 나 자신의 기질적인 감정 기복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지나친 긴장이 불연속선으로 이어져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 보기에 아슬아슬하다. (p. 358)

--- 본문 중에서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떠밀렸다고는 하지만 그런 내가 박대리와 함께 병원에까지 그녀를 따라왔다는 점은 도무지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주어 담뱃불을 비벼 껐다. 내키지 않은 자리에 가게 되면 반드시 내키지 않은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전에도 몇 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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