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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초록으로 선명해지는 인생의 해상도봄1억 6,000만 년 전의 봄, 목련압도적인 아름다움의 축제, 벚나무마법 같은 세 번의 변화, 삼색참죽나무봄에 끼얹은 휘핑크림, 산딸나무살아남으려는 끈기, 미선나무와 통조화울릉도 호박엿의 비밀, 후박나무가로수의 수난, 버즘나무와 소나무여름여름 그늘 속 존재감, 노루오줌알지만 모르는 꽃, 무궁화세상에서 가장 큰 잎, 빅토리아수련자연을 찬탄하는 일, 태산목땅 위에 뿌려진 황금비, 모감주나무사시사철의 매력, 배롱나무신비로운 악마의 열매, 큐슈곤약이것이 없다면 여름에 대한 죄악, 플록스고목이 있던 자리, 우산고로쇠가을옹기종기 숨어 사는 숲의 유령, 야고만 리까지 퍼지는 천상의 향기, 목서막대 사탕 또는 달콤한 껌, 풍나무가을에 달린 붉은 루비, 화살나무출렁이는 깊은 바람, 팜파스그래스창조와 번영의 가을, 유럽너도밤나무열매를 깨기 위해서라면, 칠엽수겨울한 계절 앞서가는 꽃, 동백정원의 크리스마스 불빛, 호랑가시나무잠든 듯한 땅에도, 말채나무상상의 협소함을 깨는 존재, 풍년화솟아오르는 뿌리, 낙우송바닷가의 거친 바람 뚫고, 삼나무눈 녹이는 봄의 전령, 복수초와 헬레보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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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목련축제를 치르고 나면 정작 만개한 목련 아래서 찍은 내 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난해에 비해 직박구리가 목련꽃을 많이 뜯어 먹는 것 같다고, 유난히 덥고 습한 여름에 선녀벌레가 생각보다 많이 퍼져 화초들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하는 일들이 아직은 즐겁기만 하다.” _서문 중에서서울 도심을 누비던 신문기자에서산과 바다가 맞닿은 서쪽 숲 나무의사로물론 수목원에서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는 뒤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를 뽑느라 하루가 다 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엔 심어도 심어도 끝나지 않는 구근 심기를 무한 반복한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벌레에 물리고, 벌에 쏘이는 일도 예사다.” 하지만 수목원에서 일하며 저자는 “스스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의 중요함을 배워간다. “모든 식물이 해가 쨍쨍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노루오줌이나 홍지네고사리처럼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 노랑꽃창포처럼 뿌리가 물속에 잠겨도 잘 자라는 습지식물도 있다.” 사람 또한 그렇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속 나와는 맞지 않는 곳에 뿌리내리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서고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 받으면 40킬로미터 떨어진 시내에 나가서 써야 하는 ‘슬로 시티’ 태안에서의 속도감이 비로소 딱 알맞다고 여긴다. 봄은 각종 축제로 가드너들이 가장 바빠지는 계절이지만, 시야 전체가 초록빛 필터가 쓰인 듯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악보 위를 걷는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여름엔 신비로운 빅토리아수련을 꽃피우기 위해 뜨거운 햇살 아래 가슴장화를 입고 수조 속으로 들어간다. 이끼와 부유물을 걷어내고 변색된 묵은 잎들을 잘라내며 진흙 반죽 속에 비료를 넣어 아래로 가라앉히는 동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가을 정원을 채우는 팜파스그래스가 깊은 바람에 출렁일 때 북페어와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일에는 인구 소멸을 목격하는 지역 청년으로서 주민들에게 뜻깊은 문화생활을 제공한다는 나름의 사명감도 담겨 있다. 잠든 듯한 겨울 땅에도 할 일은 많다. 양손 가득 갈퀴와 삽을 들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화단에 쌓인 말채나무 낙엽을 긁어모으고, 그 위로 수십 포대의 멀칭재를 덮어준 뒤 좁은 길을 따라 부산물을 다 나르고 나서야 하루 업무가 마무리된다.“우당탕탕 굴러가다 머물게 된 곳이 천리포수목원이다. (…) 모감주나무는 영어로 ‘황금비나무(Golden rain tree)’라고도 불린다. 비를 맞아 땅에 떨어진 꽃잎이 마치 황금비가 내린 것 같아서다. 수목원 해설을 할 때 꽃이 핀 모감주나무 앞에 서면 나는 탐방객들에게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보여주며 이 말을 할 생각에 한 5초 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나무를 심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다.그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숲으로 출근하며 넓어지는 ‘나’와 ‘우리’의 개념책에는 사계절별로 저자가 선별한 식물종들이 생동감 가득한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4월 중순부터 돋기 시작하는 붉은 순이 자랄수록 연해져 노란 잎으로 변했다가 햇살이 따가워지는 6월경에야 초록색을 띠기 시작하는 ‘삼색참죽나무’의 변화는 마법 같다. 봄꽃으로 친숙한 목련은 무려 1억 6,000만 년 전에 등장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원시 식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비롯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보통 초봄에 꽃을 먼저 피운 뒤 잎이 나는 것으로 알지만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다가 여름에 사람 얼굴만 한 꽃을 피우는 목련인 ‘태산목’도 있다. 8월 한여름 옥수수 같은 열매를 맺는 ‘큐슈곤약’은 처음엔 올리브색이었던 열매가 점점 분홍색부터 파란색, 짙은 남색까지 그러데이션을 띠며 익어간다. 자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쨍한 색감에 ‘악마의 열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심각한 독성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매년 가을 수목원 탐방객들의 후각을 사로잡는 ‘금목서’는 그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불리며 ‘샤넬 No.5’의 모티브가 되었다. 엉킨 실타래 같기도, 뒤집어진 마녀의 머리채 같기도 한 독특한 모양새의 ‘유럽너도밤나무’, 비슷비슷한 갈색빛 속에 붉은 포인트가 되어주는 ‘화살나무’도 이색적이다. 흙 위로 솟아오른 뿌리가 시선을 붙드는 ‘낙우송’은 습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요정이 사는 숲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낸다. ‘복수초’는 눈을 삭이며(녹이며) 핀다고 해 눈색이꽃이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스스로 눈을 녹인다. 마치 동물처럼 열을 내 자신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늦겨울 꽃망울 주변에 쌓인 눈을 녹이며 개화하는 것이니 자연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다.“생을 다 바쳐 사랑해도 나무의 수명은 사람의 수명을 훌쩍 넘어서기 마련”(정세랑 추천사)이다. 우리가 고목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경외심과 안도감에 대해 저자도 말한다. 이 나무들이 몇백 년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하루 지나 사라지는 온갖 이슈들에 허덕이는 일은 그리 큰일이 아니라고. 그가 숲으로 출근하며 배우는 것은 같은 땅을 공유하는 생명들에 대한 겸손이고 또 그 순정한 마음을 다음 이에게 이어주려는 태도다. 수목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멸종위기 식물들의 개체를 증식하고 대체서식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 기준으로 보면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수목원 생활이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를 뛰어넘는 자연과의 연결 속에서 삶의 지평이 새로워지고 ‘나’와 ‘우리’의 개념은 확장된다.“수목원을 걸을 때 부러 우산고로쇠가 있는 산책로로 돌아 걷는다.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우산고로쇠 묘목 위로 볕이 드리워지는 장면을 한참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걱정과 고민이 많은 사람의 불안하고 모난 마음이 어느새 둥그렇게 닳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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