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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1장 인내의 시간(1635년, 엑상프로방스) - 편지로 세계를 잇다2장 응집의 날(1839년, 맨체스터) - 청원이 불씨를 지피다3장 상상하는 글(1913년, 피렌체) - 선언문은 미래를 현실로 만든다4장 논쟁이 깃든 곳(1935년, 아크라) - 신문이 만든 지적 공동체5장 집중의 수단(1968년, 모스크바) - 반체제 인사들의 소식지6장 통제와 반동(1992년, 워싱턴) - 독립잡지로 고함을 지르다인터미션: 가상 공간의 등장7장 광장의 문(2011년, 카이로) - 페이스북은 혁명의 그릇이 될 수 있는가8장 닫힌 횃불(2017년, 샬러츠빌) - 디스코드에서 다듬은 극우의 언어9장 바이러스의 속도(2020년, 뉴욕) - 팬데믹에 맞선 메일 그룹10장 이름들과 기억(2020년, 미니애폴리스) - 해시태그로 저항할 수 있는가나가며감사의 말주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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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 Beck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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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느린 혁명의 시간: 급진적 아이디어가 자라나는 데 필요한 것들1635년, 엑상프로방스의 밤은 고요하지만 뜨거운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최초로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전역에서 동시에 월식을 측정하는 순간이었다. 성공한다면 세계 지도가 바뀔 참이었다. 지난 20년간 이 일을 주도한 니콜라클로드 페이레스크는 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편지 수만 장을 쓰느라 자신의 저서 한 권도 남기지 못했다. 그가 갈릴레오 갈릴레이만큼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덕에 페이레스크는 종교재판에 불려 가지 않으면서도 유럽 전역에 과학적 방법론을 깊숙이 이식했다.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서 말이다.이 고요하고 집요한 태도는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청원서에서, 20세기 소련 반체제 인사들의 소식지에서, 2020년 뉴욕의 보건 역학자들의 메일에서 반복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구자들의 역사는 급진적인 생각이 고요하고 느린 시간을 견딘 후에야 혁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가 찾아왔다. 이제 인내심, 상상력, 집중력, 깊은 연결이 멸종되고 있으며, 바이럴과 즉시성이 소통의 공간을 잠식했다. 이 책은 17세기 편지부터 페이스북, 디스코드, X 같은 소셜 미디어까지 두루 살피며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 변화의 씨앗을 움트게 할 방향을 제안한다.세상의 구석에서 자란 급진적 아이디어: 논쟁과 합의의 장이 된 신문의 “투덜이 구역”1935년, 아프리카 골드코스트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자기네를 이른바 ‘선량한 제국주의자’로 여긴 영국인들은 식민지에 일말의 자유주의를 허용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영국에 대한 지나친 반발심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문 발행을 허용했다. 은남디 아지키웨가 〈아프리칸 모닝 포스트〉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문의 1면에는 늘 같은 문장이 인쇄됐다. “모든 일에 독립적이되, 아프리카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것.” 이 신생 신문이 반식민주의의 거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독자 투고란인 “투덜이 구역”이었다. 이 지면에서는 무엇에 관해서든 토론할 수 있었다. 일부일처제가 우리 사회에 적합한가? 여성의 교육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유럽의 신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영국인들이 이 “투덜이 구역”을 ‘시끄럽지만 식민 지배에 위협은 주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사이, 지면을 읽고 쓴 독자들은 새로운 아프리카에 대한 합의된 상을 만들어갔다. 지배자들의 눈에서 벗어난 작은 틈, 이 좁은 지면에서 반식민주의라는 급진적 아이디어가 자라났다. 이 사상은 20여 년 후 꽃을 피웠고, 골드코스트는 아프리카 최초의 독립국이자 범아프리카주의의 거점이 됐다. 국명은 ‘가나’였다.생각의 그릇이 된 매체들: 편지와 청원, 선언문부터 페이스북, 디스코드까지페이레스크의 편지, 아지키웨의 신문처럼 모든 급진적 아이디어에는 이를 만들어내고 공유하게 한 매체가 있다. 이 책에는 역사를 바꾸어놓은 수많은 매체가 등장한다. 청원서, 선언문, 소련의 사미즈다트, 독립잡지인 진까지. 17세기 엑상프로방스에서 한 과학자가 편지에 ‘생각을 곱씹게 하고 인내심을 발휘하게 하는 속성’이 있음을 깨달았고, 1990년대 펑크록에 심취한 십대 소녀들은 진을 만들며 자신들이 “필기체를 칼로 바꾸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급진적 생각은 자신을 길러낼 매체와 만났을 때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 선구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그렇다면, 대부분의 매체가 온라인 공간으로 흡수된 지금은 어떨까? ‘아랍의 봄’은 페이스북으로 힘을 모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그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한계를 맞이했다. 반면, 백인 우월주의를 주창한 미국의 극우주의는 디스코드라는 조용한 공간 속에서 힘을 결집했다. 이는 가상 공간에서도 사회적 세력이 자라날 수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이 두 운동의 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운동은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주요 활동가들은 로그아웃을 선택했다. 오프라인 운동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다. 우리 시대의 급진적 사상은 어떤 매체를 통해 우리를 연결하고, 그로 인해 무르익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소셜 미디어는 혁명의 그릇이 될 수 있는가?: 이 도구의 한계와 대안에 대하여역사는 우리에게 혁명이 폭발의 순간이 아닌, 소수가 나누는 고요하고 긴 대화의 시간임을 알려준다. 세상을 바꾼 급진적이고 ‘위험한’ 생각들은 조용하고 폐쇄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이 생각들은 너무 새롭고 낯선 개념이기에 쉽게 흔들리고,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끊임없이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준비되기도 전에 세상의 빛에 노출된 혁명의 씨앗들은 그 잠재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21세기 소통의 거점인 소셜 미디어는 이 변화의 핵심 요소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졌다. 소셜 미디어는 소란하고, 즉각적이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개방적이다. 소셜 미디어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특징으로 인해 혁명적인 도구로 주목받았으나, 이제는 오히려 이 매체가 혁명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 자명해 보인다. 저자인 갈 베커만은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 도화선의 지도를 만들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17세기의 노과학자처럼, 20세기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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