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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의 정체성
2. 통일이전의 지리적 환경 3. 분열과 분쟁: 로마제국에서 르네상스까지. 400~1494 4. 정체와 개혁의 시대. 1494~1789 5. 민족 문제의 등장. 1789~1849 6. 이탈리아의 통일 7. 자유주의 정부와 사회문제. 1870~1900 8. 졸리티 내각. 제1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등장 9. 파시즘 10. 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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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80년대 유럽 계몽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던 낙관주의, 이성, 관용, 그리고 특권과 무지와 반反인문주의를 제거함으로써 좀더 인도적이며 풍요로운 세상이 건설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불확실성을 띠게 되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지역국가들은 로마 교회의 세력을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빈곤, 도적 행위, 구걸, 부랑의 고통은 여전했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개혁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악들은 비생산적인 귀족계급이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를 완수하려는 군주들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은증폭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개혁을 위한 유일한 희망은 사회제도 전체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새롭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절망적인 유토피아니즘utopianism은 1770년대 프리메이슨Freemason 결사단체의 급격한 확산과 1780년대 평등주의적이며 공산주의적인 이념을 설파한 일루미나티Illuminati(계명결사啓明結社)와 같은 조직들의 등장을 배경으로 출현했다.
군주들과 정부에 대한 믿음이 점차 감소하자, 좀더 나은 세상을 갈구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걸 또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가 수학적으로 그 미덕을 묘사했던 대중에게 눈을 돌렸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법률을 결정할 권리를 혁명적으로 주창한 미국의 독립전쟁에 의해 고무되었다. --- pp. 128-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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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사를 이해하는 키워드
영국 리딩대에서 '이탈리아 사회'를 연구해온 저자 크리스토퍼 듀건은 이탈리아사를 관통하는 몇가지 논점들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근·현대사를 집중 서술하고 있지만, 이탈리아의 고대와 중세에 대한 관심도 결코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정치적·경제적 주제들에서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영화 등에 걸쳐 있으며, 그의 수많은 지적과 인용된 사실들은 이탈리아사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오늘날 이탈리아의 제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광활한 영토의 로마제국을 건설하고 서구문명의 근간이 된 르네상스를 처음 꽃피웠던 곳, 이탈리아. 단테의 『신곡』에서부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비토리오 데 시카의 신사실주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는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유럽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861년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인 주세페 가리발디에 의해 통일이 되기 전까지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의 조합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이탈리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탈리아의 통일을 원했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는 결코 이탈리아를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인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드라마틱한 통일과정과 여전히 그 해결이 요원한 지역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이탈리아의 노력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여전히 망국적 지역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탈리아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탈리아는 G7 국가이자 경제적으로도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5번째 강대국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남부의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 등 유럽연합 내 가장 가난한 지역과 북부의 밀라노, 베네치아 등 유럽연합 내 가장 부유한 지역이 함께 공존한다. 이러한 남북의 극심한 경제적 차이는 11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불리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일찍부터 산업 발달에 힘쓴 북부와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중앙집권적 봉건구조를 유지해온 남부의 상이한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기인한다. 최근에는 분리독립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이탈리아 남북의 격차는 심각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탈리아의 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탈리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 또한 그 연원이 오래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 1861년 통일이 될 때까지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들과 중부의 교황령, 남부의 나폴리 왕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언어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강대국들의 이권을 둘러싼 각축장이었다. 19세기 중반 마침내 통일이 완성되었지만, '이탈리아' 혹은 '이탈리아인'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혼돈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에게 '이탈리아'는 명확하고 독립성을 '국가'로 여겨지지 못했다. 더욱이 경기 침체와 정치적 혼란은 이탈리아를 총체적 위기에 빠뜨렸다. 그 결과는 파시즘의 등장이었고, 파시즘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전쟁에서 찾았다. 그러나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마피아, 조직범죄와 테러, 거대한 지하경제, 정치·경제 커넥션 등 현대 이탈리아에게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은 여전히 요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