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조선개교50년지
대곡파본원사 조선개교감독부편
가격
22,000
5 20,900
YES포인트?
440원 (2%)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서문 006
편집자 서문 014

제1편 조선 교계(敎界) 개관 041
제1장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불교 043
제2장 조선시대 불교금압(佛敎禁壓) 048
제3장 기독교의 개교 052
제4장 불교의 부활과 사찰령 054

제2편 개교(開敎)와 건설 059
제1장 개교의 남상(濫觴) 061
오쿠무라 조신(奥村浄信) / 고덕사(高德寺) 사지(寺趾)에 대해
제2장 개교와 국가와의 관계 066
개교 직전의 일본과 조선 / 개교사의 파견 / 본원사의 포부
제3장 부산 개교 070
당시의 부산 / 별원 창설 / 유학생 파견 / 당시 포교상황
제4장 원산 개교 077
별원 창건 / 당시의 원산 / 동포 중심의 포교 / 개시장(開市場)과 오쿠무라 승려 / 조선인 노동자의 구제 / 쟁투(爭鬪)를 중재하다.
제5장 인천 개교 088
개교에 이르기까지 / 포교소 설치 / 당시 포교상황 / 당우(堂宇) 건축
제6장 경성 개교 095
개교 당시의 상황 / 별원 설치와 부지 매입 / 조선왕조 하사금 / 고리(庫裡, 임시 본당) 건축 / 이나미 승려 취임과 공사의 일별(一瞥) / 별원의 궁박(窮 迫)과 러일전쟁 / 본당 건축의 착수 / 조선왕조의 원조 / 본당의 낙성
제7장 광주 포교 117
개교 전기(開敎前記) / 드디어 광주에 낙착(落着)하다. / 남매의 해후(邂 逅)와 오쿠무라 승려의 경영 / 포교 의견 상신 / 조선인 최초의 본산 참배 / 오쿠무라의 보고서
제8장 목포 개교 132
포교소 설치 / 영사의 무정(無情)
제9장 각 포교소의 설치 134
군산포교소 / 진남포포교소 / 평양포교소 / 신의주포교소 / 영산포포교소 / 조치원포교소 / 대전포교소 / 진주포교소 / 밀양포교소 / 안주포교소 / 전 주 백응사 / 청진포교소 / 성진포교소 / 수원포교소 / 청주 서원사 / 구포포 교소 / 춘천포교소 / 포항포교소 / 공주포교소 / 용산포교소 / 삼랑진포교 소 / 절영도포교소 / 진해 일심사 / 대구포교소 / 삼천포포교소 / 논산포교 소 / 영엄포교소 / 송정리포교소 / 정읍포교소 / 평강포교소 / 회령포교소 / 광천포교소 / 간도포교소
제10장 개교의 고심과 기쁨 171
초창기 이리 / 남평개교의 고심 / 철원포교소 / 함흥에서의 개교 / 맞이함 의 기쁨

제3편 조선문화로의 공헌 193
제1장 본원사와 조선지사(志士) 195
본원사와 이동인 / 인천개항의 뒷이야기 / 새로운 문물의 소개 / 지사(志 士)의 내방과 어학생 / 이시가와 윤번과 윤웅렬
제2장 본원사와 교육사업 207
부산에서의 교육 / 원산에서의 교육 / 인천에서의 교육 / 경성에서의 교육 광주에서의 실업교육 / 목포에서의 교육 / 그 밖의 교육
제3장 사회사업의 효시(嚆矢) 218
부산교사(釜山敎社) / 청일전쟁·러일전쟁과 부산교사 / 부산교사의 개혁 제4장 향상회관(向上會館) 229
향상회관 건설의 첫 번째 동기 / 향상회관 건설의 두 번째 동기 / 향상회관 건설의 세 번째 동기 / 본 회관의 사명 / 본 회관의 사업 / 산업전습부 사업 / 수학부 사업 / 종교부 사업 / 염원 / 향상회관 연혁 / 향상회관의 5년 / 부록:행려병자(行路病人) 구호
제5장 본원사와 조선사찰 및 승려 246
제6장 조선왕조와 본원사 254
영패(靈牌) 봉안과 답례사(答禮使) / 대한아비타본원사(大韓阿彌陀本願 寺) 편액(扁額)
제7장 순난 개교사(殉難開敎使) 263
제8장 개교감독부와 개교 50년 267

부록 : 남산본원사 범종 270
해제 272

저자 소개 1

동서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일본지역연구과에서 일본 신종교를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근대 일본불교를 연구 주제로 문학연구과(일본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DC/PD)을 거쳐 현재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신종교회학회 상임이사,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학술이사로 있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국내외 일본계 신종교 활동, 근현대 한일 종교 현황, 특히 한일 양국 불교의 활동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성과로는 『植民地近代という???植民地朝鮮と日本近代
동서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일본지역연구과에서 일본 신종교를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근대 일본불교를 연구 주제로 문학연구과(일본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DC/PD)을 거쳐 현재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신종교회학회 상임이사,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학술이사로 있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국내외 일본계 신종교 활동, 근현대 한일 종교 현황, 특히 한일 양국 불교의 활동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성과로는 『植民地近代という???植民地朝鮮と日本近代??』(저서), 『근대 일본의 종교 담론과 계보』(역), 『근대 일본계 종교의 조선 포교 양상과 그 영향』(편저), 『植民地朝鮮と宗?』(편저) 등이 있고, 그 외 다수 연구 논문과 공동저서가 있다.

제점숙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514g | 152*225*20mm
ISBN13
9791193385302

출판사 리뷰

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일러두기
1. 한자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자(정자체)로 변경하여 번역했다.
2.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용어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에 설명을 붙였다. 이러 한 용어 설명은 사전 포털사이트(네이버, 야후재팬 등)를 참고했다.
3. 지명이나 연호는 일본식 발음으로 번역하고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사찰명, 불교 종파 등은 한자음으로 번역했다.
4. 일본인 이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음보다는 일본 발음을 그대로 번역했다. 참고로 일본인 이름 읽는 방법은 개인, 지역, 가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특히 드문 이 름이나 한자 조합의 경우 다양한 읽는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역서에서는 유명한 인물 외 일반인은 통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일본인 성과 이름을 표기하고, 특히 승려 이름은 한자음 기준으로 번역했다. 따라서 일본인 이름표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5. 처음 등장하는 인명 또는 지명에는 한국어와 한자를 함께 표기했다. 그 이후 동일 명칭 에는 한자를 생략했다.
6. 일반적으로 ‘師’는 일본에서 승려를 지칭한다. 역서에서는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 해 ‘師’를 일괄 승려로 표기했다.
7. 일본 연호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력으로 변경했다.
8. 조선, 한국의 명칭은 원문에 따라 번역했다.
8. 원문과의 대조를 위해 본문에 별도로 원문의 쪽수를 ( )로 표기했다.

서문

서(序)
조선 땅에 정토진종(淨土眞宗)이 처음으로 유포(流布)된 것은 지금으 로부터 300여 년 전 아주 오래된 일이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진종대 곡파 개교(開敎)는 메이지(明治) 초운(初運)을 시작으로 오늘에 만50년 세월이 흘렀다. 그간의 고신(苦辛) 경영(經營)은 실로 상상도 못 할 정 도다. 참으로 여래대비(如來大悲) 선포에 정진하고 동시에 일본과 조 선과의 문화융화를 유도하는데 지대하게 공헌했으니 이는 오래도록 세상이 기억하고 이체상의(二諦相依)1)의 종풍(宗風)을 선양(宣揚)하는 것 이니라.

이번 가을 조선개교감독부는 개교 50주년 기념비 법회를 경성 남 산의 본원사에 영위했는데 과거 노력하신 선각의 덕을 기리고 여러 기념사업을 기획하여 한층 더 진전을 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획 사업의 일환으로 포교 활동의 업적과 사료가 인멸될 것을 안타깝게 여 겨 『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를 편찬하고 이를 서문에 미리 언급하니, 모든 기록을 편찬하는 바 참으로 비장한 개교 비사(祕史)로 먼 훗날 미래에 모범이 될만한 대비전 보화(大悲傳 普化)2)의 정신을 북 돋우는 참으로 심대한 것이니라. 이와 같은 내용을 덧붙이면서 서(序) 로 대신한다.

1927년 8월 28일
진종대곡파부관장(眞宗大谷派副官長)
오타니 에이죠(大谷瑩誠)

서(序)
우리 대곡파가 조선 개교에 뜻을 가지게 된 것은 바야흐로 50년 전의 일로 오쿠무라 엔신(奥村圓心)씨가 몸소 조선에 건너가 개교의 선 례를 세웠지만, 그 시작은 이미 3백여 년 오래된 일이다. 그동안 수 많은 선각(先覺)이 여러 난관에 고군분투하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 고 우리 종파 개교의 지반을 구축해왔다. 그 후 여래의 자광(慈光)을 계림팔도(鷄林八道)에 선포함과 동시에 일본과 조선의 융화에, 문화 보 급에, 사회 교화에 이바지한바 절대 적지 않다. 우리 교파의 개교는 근대 조선불교사의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을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개교감독부는 올가을 개교 50년 기념법회를 근수(勤修)3)하여 이 기념사업의 하나로 개교50년지 출판을 기획하고, 후지나미(藤波)씨가 편찬을 담당했는데 고심 끝에 출판하는 날이 가 까워짐을 들으니 실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은 조선개교 과거 를 전하는 귀중한 문헌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개교에 좋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처럼 우리 대곡파가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회로 더욱 절대타력(絶對他力)의 대도(大道)를 이끄는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대비 (大悲) 전보(傳報)화의 성업에 노력함과 동시에 내선융화(內鮮融和)의 열 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념사업이 될 것이다.

8월 28일
대곡파본원사 사무총장(大谷派本願寺寺務総長)
이나바 마사마루(稲葉昌丸)

서(序)

대곡파본원사의 조선 포교는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교뇨쇼 닌(敎如上人)4)의 명을 받아 오쿠무라 조신(奧村浄信)이라는 승려가 조선 에 건너온 것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그 후 몇 번인가 시도했지만, 차질이 생겨 지금에 이른 것은 1877년 가을 조신의 후예 오쿠무라 엔 신이 부산에 상륙한 뒤부터다. 그로부터 원산, 인천, 경성 등 조선 전 역에 포교를 확산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1877년부터 숫자로 따지면 올해가 정확히 만 50년이 된다. 지금 개교 50년을 기념하고 자 하는 것은 대곡파 당국의 의지이며, 또한, 부족하지만 올해 4월 현 직을 명받은 불초(不肖)의 염원이다.

어떻게 기념해야 할지 실로 큰 고민이다. 공연히 축제와 같은 소 동은 피하고 싶다. 조용히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서서히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현재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 장 의미 있는 기념이라 생각한다.

50년이라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많은 깨달음과 또 가르침이 있었다. 동시에 그 세월의 흐름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잘 암시해준다. 따라서 50년지를 편찬하는 것은 기념사업으로서는 매우 귀중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실로 안타까운 점은 집필하는 데 있어 쉽게 참고할 만한 문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10월에는 법 주대하(法主台下)와 그 부인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를 개최하고 또한 두세 개의 기념사업에도 착수하려 하기에 반드시 그때까지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우 무리한 기획이지만 이 무리한 업무를 후지나 미다이엔(藤波大圓) 승려에게 부탁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일단 일에 착수하자마자 후지나미는 조선개교상 공 로가 있는 몇몇 선배 승려들과 조선 내 각지에 현존하는 고승을 방 문했다. 그분들로부터 상세하게 그 상황을 전해 들으니 현존하는 자 료 외 확실한 자료가 많지 않다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후지나미는 7 월 더위가 한창일 때 일본 내 및 조선을 여행하면서 양국 관계와 정 치 상태, 사상계, 사회상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집필의 배경인 까닭에 이에 관한 연구도 필수 불가결했다. 실로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모든 것을 섭렵하여 바로 집필하는 대단한 연구 활동을 한 것이다. 후지나미 승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편, 불법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인간과 함께 그 빛 을 발한다. 인간은 또 그 불법으로 불멸의 생명을 영위한다. 50년의 역사는 혈석희생(血汐犠牲)5)의 순교와 순수한 눈물 어린 신고(辛苦) 등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단시일의 이야기라 간과할 수 없는 이 일은 불법의 힘과 교도의 신념이 입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뒤를 계 승하는 자로써 여기에 감분(感奮)의 뜻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50년은 불교가 대부분 근절됐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문야(文 野)7)를 종교적으로 배척해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불교 의 씨앗을 조선 동포 가슴속에 심어줄 때이다. 교화하기에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8)과 석존(釋尊)의 선언에 따라, 또한 십방중생(十方衆生) 동등한 구원은 아미타불(阿比陀 佛)의 비원에 따라 반드시 조선의 전 지역에 자광(慈光)을 널리 알리고 빛나는 때가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의 역사는 지금 조 선에 있는 승려, 신도에 이 대업을 계승하도록 하고 있다. 우러러보 아 불타(佛陀)의 정신을 체득하고 회고하여 역사를 일궈낸 인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계획에 찬성하여 많은 원조를 해주신 일본 본토와 조선의 여러분들, 공사다망한 가운데 제자(題字)9)를 맡아주신 대하(台 下) 및 총독 각하, 또한, 서문을 써주신 부관장님, 사무총장님에게 감 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1927년 8월 28일
조선개교감독(朝鮮開敎監督) 쓰다 켄(津田賢)

편집자 서문 (9쪽)
첫 번째로 내가 곤란했던 것은 자료라 할 만한 문헌이 대부분 없 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사할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 선개교50년지』 편찬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6월 중순 무렵이었다. 그 리고 기념 법회는 10월 1일이었다. 편집자로서 가능하다면 그때까 지 완성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매우 무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렇게 생각하고 또 결심했다.
8월 10일 지나서 각 지역의 선배와 지인으로부터 힌트를 얻고 조 사를 반복해 드디어 어느 정도 틀을 완성했다. 9월 중순 무렵까지 제 본 완성을 하지 않으면 10월 1일 기일에 맞추지 못한다.

어찌 됐든 모은 자료만이라도 정리를 하면서 서둘러 집필을 해나 갔다. 먼저 쓴 분량부터 인쇄하고 또 원고를 계속 적으면서 수정하 고 또 수정하고, 완전히 원고 지옥에 빠져버렸다. 이러한 까닭에 완 성된 글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은 물론, 한마디로 말해서 원고는 미완 성 그 자체다. 언젠가 이를 바탕으로 더 완성도 높은 것을 만들고자 한다. 특히 제3편은 가장 세밀한 조사를 필요로 하는 부분임에도 불 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오늘부터 나 는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한다. 결국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무리하게 원고를 완성했지만, 전반적인 교정을 끝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친우 이와미 마모루(岩見護)씨가 이를 맡아 교정을 해준 것은 나에게 있어 큰 행운이다. 이에 깊이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시고 편의를 봐주신 분들의 이름을 여기에 기록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교인님(淨暁院殿), 와다 엔주(和田圓什)씨, 오타 유케이(太田祐慶)씨, 와다 코토(和田康道)씨, 이나미 센쇼(井波潜彰)씨, 다츠야먀 곤유(龍山嚴雄) 씨, 본산 지도료(侍董寮)10) 이시카와 료세이(石川了整)씨, 요시하타 추타 로(葭濱忠太郎)씨, 다치바나 엔주(橘圓壽)씨, 구라시나(藏品)씨, 이타쿠라 진시치(板倉甚七)씨, 조선총독부 관방비서과(朝鮮總督府官房秘書課), 대곡 대학도서관장(大谷大學圖書館長) 나가사키 아미야(長崎阿彌也)씨, 기노시 타 반케(木下萬溪)씨, 도이 신교(土井信暁)씨, 재조선 각 포교소 주임, 와 다 츠네이치(和田常一)씨, 고덕사 오쿠무라(高德寺奥村)씨.

또한 실로 단시일에 인쇄제본 완성에 힘써 주신 문영당(文榮堂) 사 장 다나카 겐타로(田中源太朗)씨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1927년 9월 3일 후지나미 다이엔(藤波大圓)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0,900
1 2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