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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과 권위주의가 충돌하는 21세기 중국
눈부시게 빛나는 성장 아래 가려진 중국 사람들의 내면 풍경에 주목한 책.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의 격정에 찬 삶을 인간적으로 그렸다. 중국에 대한 편견을 교정하면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려 준다.
2015.07.17.
사회 정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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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부 1. 해방 2. 사명 3. 문명의 세계를 받다 4. 정신적 욕망 5.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6. 목숨을 건 도박 7. 맛을 들이다 제2부 진실 8. 족쇄를 차고 춤추다 9.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0. 기적과 마법 기관차 11. 독주자들의 합창 12. 저항의 예술 13. 일곱 문장 14. 닭장 속 세균 15. 모래 폭풍 16. 뇌우 17. 번쩍이는 건 무조건 18. 냉엄한 진실 제3부 믿음 19. 정신적 공허 20. 지나치다 21. 영혼을 살찌우다 22. 문화 전쟁 23. 믿음을 가진 사람들 24. 탈출 에필로그 출처/ 감사의 말/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
Evan Os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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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야망과 권위주의라는 두 가지 힘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40년 전까지 중국인에게 부와 진실, 믿음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였다. 정치와 빈곤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장사를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뛰어들 기회도 없었고, 정치적 선전과 검열에 도전할 힘도 없었으며, 공산당 밖에서 도덕적 영감을 찾을 수도 없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그들은 이 세 가지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으며 이제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거의 전적으로 타인들의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자유를 거머쥐었다. 이제는 어디서 일하고 어디를 여행하며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그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자유가 확대되는 와중에도 공산당은 이를 수용하는 데 줄곧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통제하기 위한 공산당의 노력은 ― 누가 공산당을 이끌어 나갈 것인지는 물론 기차 여승무원이 미소를 지을 때 보여야 하는 치아의 수까지 규정하기 위한 ― 당 외부의 온갖 다양한 삶과 모순된다. 중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국인들이 그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 준 정치 체제를 앞질렀다는 내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거대한 인간 잠재력의 확장을 가져왔고, 어쩌면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을 맞이하게 되었다. --- pp.16-17
이제 중화 인민 공화국은 린정이 대위가 중국 본토를 향해 헤엄쳤던 1978년 한 해 동안 수출했던 물량을 매 6시간마다 수출하고 있었다. 경제 문제는 나를 린정이가 사는 집의 현관으로 이끌었다. 중국에서 변화를 추진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경제학자들을 찾아다니던 참이었다. 그런 점에서 짧은 반백에 짙은 눈썹, 금속 테 안경을 콧잔등까지 내려 쓴 린정이는 특히 눈에 띄는 경제학자였다. 다른 경제학자에게 그의 이름을 거론하자 그는 내가 가진 수많은 책들보다 린정이 자신의 인생 여정이 중국의 붐을 이끄는 원동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넌지시 말했다. --- p.39 야망의 시대에 들어서서는 삶이 바쁘게 돌아갔다. 사회주의 체제일 때는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대약진을 향한 마오쩌둥의 환상을 제외하면 인민들은 세월이 가면 가는 대로 관료 같은 태도로 일했다. 보다 바쁘게 도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서 저녁 밥상이 달라질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루가 있던 시절의 청 제국 궁중처럼, 사회주의 중앙 정책 기획자들은 가을에 언제부터 난방을 시작할지, 봄이 되면 언제 난방을 중지할지 결정했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이 갑작스럽게 중국을 휩쓸었다. 중산 대학의 사회학자 허자오파는 일본 보행자들이 초당 평균 1.6미터를 걷는다고 전하면서 속도를 옹호했다. 그는 〈심지어 하이힐을 신은 미국인 여성들도 젊은 중국인 남자들보다 빨리 걷는다〉며 중국인들을 비난했다. 아울러 중국 동포들에게 1분 1초의 중요성을 시급히 인식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시간을 낭비하는 나라는 낭비한 그 시간 때문에 도태될 것이다〉라고 썼다. --- p.92 우리 일행이 실물로서 만난 서구 사회는 사실상 〈유럽〉보다 훨씬 유럽적이어서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여러 측면에서 세련되지 않았으며 평범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은,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일당제가 효율적이라고 찬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끔씩 검열되지 않은 순수한 통찰력을 접했고 인간적이고 개방적인 삶을 엿보았으며 한때는 금지되었던 세상에 매료되었다. 혁명의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집권당은 사실상 인민들이 이제 정치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생업에 복귀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쉽사리 그들의 바람처럼 되지는 않을 터였다. --- p.162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으로는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이 파괴한 중국의 오랜 신앙 체계를 재건할 수 없었다. 부에 대한 끈질긴 추구는 중국이 과거에 겪은 궁핍을 덜어 주었으나 국가와 개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진실은 명백했다. 중국 공산당은 야만적 자본주의, 뇌물 수수, 만연한 불평등으로 가득한 나라를 통솔하고 있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전력 질주하면서 중국은 한때 부패와 부도덕을 저지하던 모든 방어 장치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중국인의 삶에는 〈징선콩쉬(精神空虛) 즉 〈정신적 공허〉라고 이름 붙인 빈 자리가 생겼고 이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워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 p.391 사고가 일어나고 20초 뒤에 흰색 셔츠와 짙은 색 바지를 입는 남자가 걸어왔다. 그는 아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뿐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그대로 지나쳤다. 5초 뒤에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자는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10초 뒤 또 다른 남자가 지나가며 그녀 쪽을 힐끗 보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9초 뒤에는 소형 트럭이 다가와 재차 샤오웨웨를 치고 그녀의 다리를 깔아뭉개며 지나갔다. 이후로도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파란색 우비를 입은 사람, 검은 티셔츠를 입은 오토바이 운전자, 교차로에서 물건을 싣던 일꾼 등. 오토바이를 탄 어떤 남자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본 다음 근처의 가게 주인에게 알렸지만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최초 충돌이 발생한 지 4분이 지났을 때 열한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여성이었다. 그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취페이페이가 그랬듯이 딸을 학교에서 데려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 가게 주인에게 길가에 스러진 아이에 대해 물은 다음 황급히 딸의 손을 이끌고 사라졌다. 사람들은 계속 지나갔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도 있었고 걸어온 남자도 있었고 예의 길모퉁이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도 있었다. --- p.415 이따금 나는 만일 중국의 지도자들이 레이펑 깃발이나 조화로운 사회라는 기치를 내거는 대신 정부 기관들을 보다 윤리적이고 믿음직하며 정직하게 만들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신호를 보여 준다면 중국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적어도 공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는 행동과 비행동을 통해 도덕적 견해를 피력한다. 공자는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라고 말했다. 인권 탄압과 기만에 빠진 중국 정부는 현대 사회에서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당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경제적 번영과 안정, 공허한 영웅들에게 의지했다. 그 결과 영혼을 두고 벌이는 전투에서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고 중국 국민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상을 찾기 위해서 관념 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 p.429 나는 전향을 결심한 그의 용기에 반해서 수년 전부터 그에게 끌렸다. 그의 선택이 이상주의자로서의 행동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뒤로 몇 년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그 선택에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 야망을 위해 어떠한 대가도 감수할 사람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그가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냉엄한 진실을 남긴 중국의 붐을 이끌어 냈던 원동력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 p.481 다음 날 아침 마이클은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도 꼬박 13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는 언젠가 비행접시 모양의 역에서 출발하는 초고속 열차를 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지만 아직은 그날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규정했던 과거의, 그리고 매우 절실하게 창조하고자 하는 미래의 무게를 모두 떠안고 있었다. 순응을 요구하는 구세계와 자립을 요구하는 지금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학생들이 따라 읽을 수 있도록 그 상황을 한 문단으로 정리했는데, 내게는 그것이 만트라나 성모송, 주문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들이 읽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만을 위한 기도문이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p.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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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푸 이야기 ― 타이완의 전도유망한 군인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1979년 5월 16일 밤, 중국 연안에 인접한 어느 섬에서 스물여섯 살의 육군 대위 린정이가 초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물가로 향했다. 바다를 헤엄쳐 중국으로 망명하려는 것이었다. 린정이의 가족은 본토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린정이는 1971년 타이완 최고의 명문 국립 타이완 대학에 입학했다. 그해 10월 국제 연합은 UN총회에서 타이완의 의석을 박탈하고 그 자리를 인민 공화국에 넘겨주기로 결의했다. 인민 공화국을 중국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린정이는 신입생 대표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공산당 강도들에 맞서 투쟁할 것을 외쳤다. 타이완에서 가장 열정적인 젊은 행동주의자 중 하나로 부상한 그는 기자들 앞에서 육군 사관학교로 학교를 옮기겠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모든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일깨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생각도 없지 않았다. 사관학교로 옮기면 학비가 무료일 뿐 아니라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아무도 그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는 중국 본토에서 불과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 지역인 진먼 섬(금문도)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를 바라보며 린 대위의 역사의식은 바뀌고 있었다. 두 나라는 원래 하나였고 하나의 민족이었다. 그는 다른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혼란의 30년을 마감한 중국이 다시 일어나 번영할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중국과 함께 번영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중국 본토에서 도망치는 것을 생각할 때, 린 대위는 그 반대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망명에 성공한 후 린정이는 자신의 이름을 〈불굴의 남자〉를 의미하는 린이푸로 바꾼다. 오늘날 중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경제학자인 바로 그 린이푸다. 오스노스가 그에게 망명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의 망명이 이상주의에 입각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중국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이자 〈개인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공하이난 이야기 ― 시골 출신의 공장 노동자에서 나스닥에 상장한 회사의 CEO로 1980년대 들어 중국 사회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새로운 농기계의 도입과 비료 덕분에 논밭에 그다지 많은 일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1985년 중국 정부는 시골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도시에 나가 사는 것을 허락했다. 이후 8년 동안 시골에서 이탈한 이주자는 1억 명이 넘었다. 자율성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영화와 패션, 음악에서 개인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우리〉보다 〈나〉가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이러한 메시지에 힘을 보탰다. 차이나 모바일은 젊은이들에게 휴대 전화를 팔기 위해 〈나의 영역, 나의 결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도시로 나가려는 욕구가 전 중국의 시골 마을을 휩쓸었다. 공하이난도 그중 한명이었다. 후난 성 오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에게는 애초부터 시골에 안주해 살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공부를 잘해 그 지역 최고의 명문고에 합격한 공하이난은 학기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거처를 아예 학교 기숙사로 옮겨 딸을 등에 업고 다녔다. 그러나 딸의 병원비를 대느라 집이 빚더미에 앉게 되자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주하이 시로 이주한 그녀는 파나소닉 텔레비전 공장에 취직해 하루 2천 번씩 두 개의 전선을 납땜으로 연결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우연히 사내 신문에 쓰게 된 글 덕분에 조립 라인에서 벗어나 편집자로 승진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동창이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이 전혀 낯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저주했다. 공하이난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전국 대학 입학시험에서 현 내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녀는 학교 등록을 앞두고 하이난에서 하이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막심 고리키가 지은 「쇠바다제비의 노래」라는 예전 혁명 시에 등장하는 작고 억센 바닷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대학원까지 진학해 전문성을 쌓던 그녀의 삶에 빠져 있는 것이 있었다. 연애였다. 공하이옌은 당시 가치로 대략 60달러 정도의 가치를 지닌 500위안을 지불하고 초기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리고 열두 명의 남자를 선별해 그들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그러나 한 통의 답장도 오지 않았다. 화가 난 그녀는 회사에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주제 파악이나 제대로 하라는 막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했던 독신남 중 한 명의 정보를 추적하여 그가 해당 사이트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진과 핵심 정보, 연락처 등 모든 것이 가짜였다. 분이 풀리지 않은 그녀는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수요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2006년 공하이옌의 데이트 서비스에 등록된 이용자 수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벤처 투자가들이 그녀의 회사에 투자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째에 사이트 등록자 수는 5600만 명에 이르렀고, 가입자의 로그인 시간과 순방문자 수를 기준으로 중국 내 최상위 사이트로 부상했다. 공하이옌은 상호를 〈Love21.cn〉에서 아름다운 운명이라는 뜻의 〈자위안(佳緣)〉으로 바꾸고, 〈진지한 데이트 웹 사이트〉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0년 주식을 나스닥에 공개했을 때, 그녀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7700만 달러가 넘었다. 탕제의 이야기 ― 서구의 영향에 저항하는 성난 젊은이들 〈하나 된 세상, 하나 된 꿈〉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베이징 올림픽 준비로 온 중국이 부산을 떨던 2008년 3월 10일, 티베트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달라이 라마가 미국 정부로부터 의회 명예 훈장을 받은 일을 찬양한 죄로 구속된 티베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승려 수백 명이 행진을 벌인 것이다. 수십 명이 체포되었고, 이어 3월 14일 승려들의 구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정부는 라싸로 보안군을 투입하여 용의자수백 명을 체포했다. 티베트인 망명 단체는 강력한 진압 과정 중에 여든 명의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올림픽 성화가 런던과 파리,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할 즈음, 중국이 티베트에서 벌인 탄압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그러자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성난 군중을 피해서 성화를 끄거나 다른 길로 우회해야 했다. 중국 시민들과 중국의 해외 유학생들은 자국이 처한 이러한 상황에 분노를 표출했다. 이때 〈2008년 중국이여, 일어나라!〉라는 제목의 짧은 동영상이 오스노스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서 태양 광선을 발하는 마오쩌둥 주석의 총천연색 초상화를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동영상은 서구 언론들이 사진을 조작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우리는 끝까지 버틸 것이며 조화로운 하나의 가족으로 단결할 것이다!〉라는 엄숙한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6분 남짓한 이 동영상은 온라인에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수만 개에 이르는 호의적인 댓글을 받았다. 이 동영상은 중국인들이 〈펀칭(憤靑)〉, 즉 성난 젊은이들이라고 부르는 애국자들 사이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오스노스는 이 동영상의 제작자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중국 최고 명문 중 하나인 푸단 대학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물여덟 살의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외국 언론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테면 CNN 홈페이지에는 군용 트럭들이 비무장 상태의 항의자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조작되지 않은 다른 사진 속에서는 일단의 시위자들이 인근에 매복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총을 가진 사람과 트럭에 무언가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탕제가 보기에 티베트는 중국이 수십 년째 문명화시키려고 노력해 온 불모의 오지일 뿐이었다. 그에게 티베트를 핑계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행위는, 체로키족에 대한 미국의 처우에 항의해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을 거부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유튜브를 샅샅이 뒤져 반박 증거를 찾아보려 했으나 관련 자료는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리고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에 보여 준 열광적인 반응에 고무된 그는 자신의 진로를 그런 방향에서 찾기 시작한다.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권위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들에게 부와 번영을 주겠다는 약속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있지만, 국민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것이 체제 자체의 생존에 최대의 위협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노스는 이 점을 서구 민주주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즉 오스노스는 그것을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늘날의 중국을 주어진 현실로서 받아들이는 관찰자의 시선을 최대한 유지한다. 그 대신 오스노스는 부와 진실, 믿음을 좇는 개인들의 야망이 여전히 국민을 통제하려고 하는 국가와 충돌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이 나라가 처한 모순과 아이러니, 복잡성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러나 오스노스가 우아한 문체로 묘사하고 있는 현대 중국은 모순과 불안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스노스가 보기에, 21세기에 도금 시대를 맞이한 현대 중국의 사람들은 더 이상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한계를 뚫고 나아가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언제든 국경을 넘고 이름까지 바꿀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는 가운데 길을 잃는 순간도 존재한다. 중국 최남단 도시의 한 시장에서 일어난, 차에 치인 두 살배기 아이를 6분이 넘게 지나가던 행인들이 외면했던 사건은 부를 추구하기 위해 질주하는 가운데 파탄 난 도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커질수록 이를 통제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노력도 비례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당의 선전과 검열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당이 허용하는 표현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중국 사회의 치부를 용감히 드러내는 언론인 후수리, 중국 사회의 부조리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등 오스노스는 공산당의 통제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몇몇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다. 인터넷은 이들이 품은 열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 나르며 중국 사회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종종 현대 중국인을 희화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조악한 중국 제품만큼, 중국인들의 인품도 조악하다는 것이다.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지만 시민 의식도 예의범절도 모르는 사람들로 매도하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의 격정에 찬 삶을 감동적이고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는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는 이러한 편견을 교정하면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려 준다. 부와 진실, 믿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야망이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 서평 가난과 집단적 도그마로부터 살벌한 경쟁과 자기 계발, 물질주의로 나아가는 중국의 35년에 걸친 여정에 대한 탁월한 기록.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절대적으로 읽어야 할 책. -「하버드 매거진」 역설과 모순 속에서 보다 광범위한 추세를 읽어 내는 매혹적인 르포르타주. -「퍼블리셔스 위클리」 동서양의 그 어느 작가보다 훌륭하게 새로운 중국에 대해 설명해 온 오스노스는 《야망의 시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도금 시대 중국의 욕망과 도전, 딜레마를 조명한다. -「워싱턴 포스트」 웅변적이고 종합적이다. -「뉴욕 타임스」 《야망의 시대》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 미래에 대해 극도의 불안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과 도덕의 위기와 불만의 폭발로 찢긴 중국의 초상을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 「뉴욕 타임스」 오스노스는 광적일 정도로 활기 찬 오늘날의 중국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지상 최대의 쇼를 볼 수 있는 링사이드 좌석을 제공한다. -「이코노미스트」 도금 시대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시카고 트리뷴」 《야망의 시대》는 21세기 중국의 초상을 아주 훌륭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언론인이 중국에 관해 쓴 작품 가운데 단연코 가장 사려 깊고 잘 쓴 작품. 이 책을 중국에 관해 쓴 다른 르포르타주와 구별 짓게 해주는 것은 매혹적인 스토리텔링과 우아한 문체, 독창적인 맥락 짓기, 깊은 통찰력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