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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한국사학 오늘의 방향(좌담 - 강만길, 노명식, 안병직, 이광주)
2. 한국의 정치학을 위하여(진덕규)
3. 한국사회학, 그 몰 역사성의 성격(김진균)
4. 현대경제학의 방법론적 파탄(전철환)
5. 식민지교육학은 극복되었는가(김인희)
6. 도시 무허가정착지의 고용구조(허석렬)
7. 제3세계의 기술종속과 한국 상황(김환석)
8. 다시 일본의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이영희)
9. 어떤 시를 가르칠 것인가(신경림)
10. 동학농민전쟁의 발자취(송기숙)
11. 현대사 연구와 민족사학의 과제(송건호)
12. 미군정기 한국 : 아시아 냉전의 초점(최상룡)
13. 해방전후 민족경제의 성격(박현채)
14. 미군정하 귀속재산 처리에 대한 평가(이대근)

저자 소개 3

李泳禧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 영면했다.

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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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泳禧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 영면했다.

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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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建鎬

1926년 음력 9월 27일(호적상 양력 27년 9월 27일) 충북 옥천에서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44년 한성상업학교(지금 서울 한성고)와 56년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언론계에 입문하여 대한통신사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이 되고, 언협 기관지 〈말〉을 창간하여 86년 9월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독재 종식과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도입에 기여했다. 한겨
1926년 음력 9월 27일(호적상 양력 27년 9월 27일) 충북 옥천에서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44년 한성상업학교(지금 서울 한성고)와 56년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언론계에 입문하여 대한통신사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이 되고, 언협 기관지 〈말〉을 창간하여 86년 9월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독재 종식과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도입에 기여했다.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하여 1987년 12월 초대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고, 1993년 퇴임했다.
1996년 도서 1만5천여 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하여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1999년 기자협회보에서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편집 및 보도국장과 언론학 교수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20세기 최고 언론인으로 위암 장지연 선생과 함께 선정되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2001년 12월 21일 별세, 사회장을 거쳐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저서에 《민족지성의 탐구》 《단절시대의 가교》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한국 현대인물사론》 《의열단》 《민주언론 민족언론》 《한나라 한겨레를 위하여》 《한국 현대언론사》 등이 있으며 공저에 《해방전후사의 인식Ⅰ》 《한국민족주의론 Ⅰ·Ⅱ》 등이 있다.
1986년 제1회 심산상을,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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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86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크기확인중
ISBN10
XX00019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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