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땅끝으로 나아가는 교회
말씀 묵상을 위한 팁 1강 보내심을 받은 교회 행 12:23-13:3 제1막 땅끝 선교의 출발(사도행전 13-18장) 2강 첫 번째 선교여행 행 13:4-12 3강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행 13:13-41 4강 이방인 성령강림 사건 행 13:42-52 5강 갈라디아 선교 행 14:1-28 6강 예루살렘공의회 행 15:1-21 7강 이방인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 행 15:22-35 8강 두 번째 선교여행 행 15:36-16:5 9강 막음으로 인도하심 행 16:6-15 10강 빌립보 선교 행 16:16-35 11강 삶을 바꾸는 성경공부 행 16:36-17:15 12강 아테네(아덴) 선교 행 17:16-34 13강 고린도 선교 행 18:1-11 14강 바울의 서원 행 18:12-18 제2막╻ 땅끝 선교의 전략(사도행전 19-23장) 15강 아볼로의 등장 행 18:19-28 16강 세 번째 선교여행 행 19:1-7 17강 두란노 선교 전략 행 19:8-20 18강 에베소 폭동 사건 행 19:21-41 19강 공교회를 위한 연보 행 20:1-12 20강 밀레도 고별 설교 (1) 행 20:13-24 21강 밀레도 고별 설교 (2) 행 20:25-38 22강 생명보다 귀한 사명 행 21:1-14 23강 자유와 의무 사이 행 21:15-26 24강 죄수가 된 바울 행 21:27-40 25강 바울의 간증 행 22:1-29 26강 산헤드린의 증언 행 22:30-23:11 27강 바울 암살 음모 행 23:12-30 제3막 ╻ 땅끝 선교의 미완성(사도행전 24-28장) 28강 벨릭스의 재판 행 23:31-24:9 29강 바울의 자기변호 행 24:10-27 30강 베스도 총독의 재판 행 25:1-12 31강 바울 청문회 행 25:13-27 32강 청문회의 증언 행 26:1-18 33강 바울의 전도 행 26:19-32 34강 로마 선교여행 행 27:1-20 35강 난파선 구원 사건 행 27:21-44 36강 멜리데 선교 행 28:1-10 37강 로마교회의 환영 행 28:11-15 38강 바울의 로마 입성 행 28:16-22 39강 땅끝 선교의 미완성 행 28:23-31 40강 사도행전, 그 이후 빌 1:23-26; 딤후 4:6-15 에필로그 ╻ 성령행전의 완성본 |
유요한의 다른 상품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 키를 잡으려고 하다 보면 배가 바다로 가지 못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실제로 어느 공동체이든지 지도자가 너무 많으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항상 성령이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방인을 향한 ‘땅끝 선교’는 바나바나 바울이 먼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결정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The Acts of the Apostles)이라고 쓰지만, ‘성령행전’(The Acts of the Holy Spirit)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강 보내심을 받은 교회」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땅끝으로 나아갔고, 그곳이 바로 갈라디아 지방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요한’이 수행원으로 따라갔습니다. 이 사람은 ‘마가라 하는 요한’(행 12:12)으로, 나중에 마가복음을 기록한 장본인입니다. 마가가 동행하게 된 것은 바나바의 조카라는 인연 때문입니다(골 4:10).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왔었지요(행 12:25). 바나바와 사울은 배를 타고 구브로 동쪽 끝에 있는 살라미(Salamis)로 건너가서 육로를 통해 160km 정도 떨어진 서쪽 끝의 바보(Paphos)까지 이동합니다. 그러면서 회당마다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매우 인색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이방인들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제1막 2강 첫 번째 선교여행」중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바나바의 마음이 곧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바울에게 은인입니다. 바울이 회심하였을 때 그의 진심을 믿어주고 사도들과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고향 다소로 낙향해 지내던 바울을 찾아와 안디옥에서 공동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도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이방인의 사도’도 없었고, ‘갈라디아 선교여행’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관계에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가 할례파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받을 때 바나바가 베드로처럼 외식의 시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큰 갈등이 생길 뻔했지만, 바나바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예루살렘공의회에서 바울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의기투합하여 두 번째 선교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1막 8강 두 번째 선교여행」중에서 두 번째 선교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에베소에 들렀을 때, 바울은 아굴라 부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역자를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옵니다. 바울의 마음에는 세 번째 선교여행의 목적지로 에베소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실라와 함께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여 선교 보고를 한 후에 안디옥교회로 내려와서 잠시 몸을 추스릅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세 번째 여행을 출발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거쳐서 에베소로 향합니다(행 8:23). 갈라디아에는 바울이 직접 세운 네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제자들을 방문하여 돌보는 것은 꼭 필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브루기아에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오순절 명단에 브루기아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행 2:10), 아마도 로마교회의 경우처럼 오순절을 경험한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교회의 연대를 위한 목적으로 바울이 브루기아를 방문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제2막 16강 세 번째 선교여행」중에서 바울은 유월절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써 세 번째 선교여행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고린도에서 가이사랴로 건너가는 선상에서 바울을 해치우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고, 계획을 바꾸어서 육로를 통해서 먼 길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에 보내는 연보에 동참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의 대표들을 드로아에서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드로아를 떠나기 전날 밤에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그만 설교 시간에 졸다가 떨어져서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자칫하면 큰 시험 거리가 될 뻔했는데, 오히려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남으로써 모두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2막 20강 밀레도 고별 설교 (1)」중에서 세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지난 2년 동안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가이사랴에 구금되었습니다. 바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그동안 세 번의 공식적인 재판과 한 번의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바울이 체포되던 날 소요를 일으키던 무리에게 증언한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다섯 번의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면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청회는 바울의 무죄로 결론이 났습니다. … 바울은 마침내 가이사랴를 떠나서 로마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이 여행은 사람들의 눈에는 ‘죄수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복음 전도자 바울’이 로마로 선교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제3막 34강 로마 선교여행」중에서 바울은 지금 로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로마를 향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저만큼 로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올라가지만,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형으로, 바울은 참수형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생애가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바울이 입성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생애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이 각각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경우에 그 상징은 바로 ‘나귀 새끼’였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왕이 아니라 섬김과 희생의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생애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쇠사슬’입니다. 백부장 율리오와 그의 부하들이 아무리 바울에게 감동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바울은 죄수이고, 율리오는 죄수를 로마로 압송하는 책임자입니다. 죄수가 그냥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로마로 입성할 때 율리오는 바울에게 쇠사슬을 채우고 좌우에 군인들을 붙여서 끌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제3막 38강 바울의 로마 입성」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