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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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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에세이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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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 굶주림의 울부짖음 아래
2. 가자에서 바라본 풍경-W.B. 예이츠의 점점 넓어지는 소용돌이를 통해 본
3. 우리는 손이 부러질 때까지 두드렸습니다
4. 축소되는 언어, 폭발하는 기억
5.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상처와 말을 잇는 다리
6. 대위법적 신체
7. 베를린보다 더 좋은
8. 에드워드 사이드가 가자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
9. 가자여, 라마단의 축복이 있기를
10. 두 지평선에서 드리는 기도
11. 보이지 않는 것을 번역하기-가자의 하늘과 앤 카슨의 비전
12. 태양이 다른 지평선들을 넘어가기까지

시詩
재스민이 있던 대문 | 가자, 언젠가 12월에 | 재와 메아리가 든 가방 | 알지 못한다는 것의 무게 | 남아 있는 굶주림 | 가자, 인내의 끝에서 | 내 아버지의 사진 | 바다가 기억하게 해줘 | 바닷가에서 보낸 목요일 | 길을 잃으면, 바다를 찾지 마라 | 당신이 죽어야 한다면 | 풀어내지 못한 슬픔 | 어제로 돌아가는 길은 없다 | 아무도 가자를 떠나지 않는다

저자 소개 2

알라 알카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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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a Alqaisi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의 번역가이자 연구자.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시, 에세이,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서구 매체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문학 번역을 통해 문화적 기억과 저항, 생존의 서사를 전달하는 데 힘써왔다. 또한 가자지구의 굶주림, 기억, 상실에 관한 에세이로 그곳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목소리로 주목받고 있다.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랍릿』『네이션』『리터러리 허브』『아디 매거진』『에이버리 리뷰』 등에 기고하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세상이 거기 있다는 걸 확인한다. 『흩어짐』 『구불구불 빙빙 팡 터지며 전진하는 서사』 『형식과 영향력』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벌집과 꿀』 『조지 오웰 뒤에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목구멍 속의 유령』, ‘코펜하겐 삼부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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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84g | 130*200*18mm
ISBN13
9791169095587

책 속으로

배고픔은 몸을 집어삼키기 훨씬 전부터 언어의 뼈대를 풀어헤치고, 명료함을 지워버리고, 리듬을 해체하고, 생각의 허약한 찌꺼기들만 남겨놓는다. 처음에 일관성 있는 문단으로 시작했던 것은 곧 조각조각 흩어지고, 결국에는 너무나 굶어서 의미를 계속 붙잡아두지 못하는 정신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현상만 남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 언어가 나를 완전히 저버리기 전에, 나는 이 글을 쓴다.
---p.17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계속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침묵은 더 심각한 형태의 패배가 될 테니까. 비록 금이 가고 불확실할지언정 내가 여전히 줄 수 있는 선물은 증언뿐이다. 증언을 내 안에 가둬놓는 건 이 굶주림이 그것에 이름 붙이는 목소리까지 먹어치우게 놔두는 일이 될 테니까.
가자에서 살려면 이제 부재로 이루어진 안무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걷는 게 아니라 떠내려간다. 먹는 게 아니라 찾아 헤맨다.
---pp.20~21

우리는 녹초가 된 채 현기증을 느끼며 거의 인간이 아닌 상태로 존엄의 너덜너덜해진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다. 우리가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텅 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움직인다. 등을 파고들며 압박해오는 필요의 무게를 짊어지고 구호 센터로 걸어간다.
---p.35

그것이 가자다. 영혼의 지속적인 해체 과정이다. 우리는 한 번에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쓰러진다. 굶주림, 환멸, 박탈, 무감각을 차례로 겪으며.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는 글을 쓴다. 그럼에도 말을 한다.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그 총체성에 저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p.38

우리는 두드렸습니다. 손이 갈라져 벌어질 때까지.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찾아낼 수 있는 모든 허공에 대고 소리도 쳤습니다. 우리의 괴로움을 에세이로 쓰고 돌에 새겼습니다. 우리가 지워지는 모습을 생중계했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모든 권력자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부서진 몸을 들어올렸습니다. 동정심을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정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비유가 아니라 살점을 제공했습니다.
---p.49

봉쇄 아래 사람들은 시간을 조각조각 도둑맞고, 언어는 자신에게 허락된 좁은 공간에 맞추기 위해 축소된다. 사람들은 긴 문장을 버린다. 단어 하나를 덧붙일 때마다 거기에 소모되는 힘을, 닳아 없어지는 배터리를, 그 1분 동안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p.53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고통을 담을 만큼 큰 단어들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자신을 전혀 표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은 메시지 창을 열고 두세 줄을 쓰다가 지워버린다. 불타버린 방들이나 박살 난 계단의 기억에 비해 그 말들은 너무 빈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시도하고 다시 지우며 언어가 눈앞에서 실패하는 것을 지켜본다._「축소되는 언어, 폭발하는 기억」

모든 단어를 짧아지게 하려고 애쓰는 장소에서 길고 신중한 문장들을 계속 쓸 것이다. 그 길이 자체가 우리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한 번에 한 줄이 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선언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심지어 봉쇄 아래에서도 숨 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내가 페이지 위에 단어들을 적어넣을 수 있는 한, 나는 언어가 그 숨결을 빼앗기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p.63

번역은 언제나 배신행위였다. (…) 하지만 팔레스타인 번역가에게 걸려 있는 배신의 가능성은 훨씬 더 크다. 번역은 의미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이고, 모든 단어가 윤리적 딜레마로, 모든 문장이 권력과의 대립으로 변하는 긴장에 찬 협상이다.
---p.72

한 편의 단편소설을 아랍어에서 영어로 옮길 때, 나는 텅 빈 공간 속으로 번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완곡어법과 회피로 빚어진 담론 속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윤리적 딜레마는 실재한다. 원문인 아랍어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나는 종종 ‘중립적인’ 영어의 규범들에 맞서야 한다. 영어는 명료함보다 수동성을, 저항보다 피해자성을 선호한다.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분노에 차 있고 고발하는 어조로 되어 있으며 명확함을 지닌 그대로 표현한다면, 나는 너무 정치적이거나 편향되었다며 번역을 기각당할 위험을 떠안게 된다. 그렇다고 그 목소리를 누그러뜨린다면, 나는 우리를 침묵시키는 바로 그 구조를 재생산할 위험을 떠안게 된다. 나는 지워짐과 고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걸어간다.
---pp.79~80

출판사 리뷰

번역가, 가자지구 전쟁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의 전쟁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번역가일 것이다. 이에 저자는 번역을 하나의 윤리적 전투로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전하고자 분투한다. 가자를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올바른 단어를 찾는 일이 아니라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귀를 찾아 헤매는 일이기도 하다. 정확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비통함은 그것을 비가시적 영역에 가둬두도록 훈련해온 세계를 통과할 수 있는 형태로 빚어져야 한다.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세계와 그 사라짐을 좀처럼 인정하려들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중개자가 되는 일이다. 그것은 부서진 문장 구조와 부서진 삶들로 만들어진 다리 위를 걷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일관된 문장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세상은 말더듬이이고, 파편 난 조각이다. 이성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그들 세계에서 역사는 부식되는 가운데 나선형으로 미끄러진다. 알라의 글은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리는 굶주림 속에서도 가자의 정확한 현실을 영어로 실어 나르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가자 전쟁 동안, 아랍어로만 쓰여 있었더라면 잔해 너머로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목소리들을 영어로 옮겼다. 세계의 부정확한 인식과 맞서 싸우는 그의 문체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력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감정을 근간부터 뒤흔든다.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에세이와 열네 편의 시는 모두 기억의 폐허로부터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의 가장자리로부터 쓰였다. 저자는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읽히리라는 기대 없이 탈진 상태에서 써내려갔다. 누군가 증언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말소되리라는 다급함이 그를 글쓰기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결과물은 가자 전쟁에 대한 인식을 올바른 토대 위에 다시 세운다. 언어는 언제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준다.
가자에 관해 문장 하나를 쓰는 것은 전 세계적 무관심이라는 구조에 맞서는 일이다. 알라 알카이시는 쓰고, 번역한다. 세계가 변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자에서는 새로운 동사들이 출현하고 있다. 감시, 표적 공격, 실종…… 그리고 매 시간을 알려주는 가차 없는 척도는 바로 굶주림이다. 그것은 몸의 배선을 바꾸고, 지각을 왜곡하고, 기억이 흐려지게 만든다. 굶주림은 문을 두드리거나 속삭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해체할 뿐이다. 그것은 허락 없이 들어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시간을 건너가는 방식을 바꿔버린다. 하지만 구호센터에서 받은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은 충족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한입 한입마다 수치심을 자아낸다. 배부름은 사악함처럼 느껴지고, 음식물의 위안은 공허함을 느끼게 만든다.
버티는 법을 계산하는 데 익숙해진 몸은 풍요 앞에서 여전히 움찔한다. 한 스푼 한 스푼 측정하면서 생존을 위해 절약하도록 약속된 몸은 배급된 음식 앞에서 감각을 되찾지 못한 채 옛 시간에 그대로 묶여 있다. 그리하여 가자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배급 속에서도 어쩔 줄 몰라하며, 자기 자신을 거부한다.

정확함이란 감정적 의미의 정확함이다

굶주림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다. 따라서 증언하는 이는 굶주림과 거리를 둘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살아내야 하고, 이때 감정적 정확함이 발생한다.
가자 사람들은 녹초가 된 채 너덜너덜해진 인간 존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다. 그들은 약하게 태어났는가?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텅 비워지고 있다. 삶을 연명하려는 압박은 구호센터로 걸어가는 그들의 등을 파고든다. 배고픔은 자신만의 언어를 키워낸다. 조용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언어를. 그것은 요란하게 찾아오기보다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그것들이 구부러지고, 닳아 없어지게 만든다. 가자 사람들은 한 번에 소멸하지 않는다. 굶주림, 환멸, 박탈, 무감각을 차례로 겪으며 단계적으로 쓰러진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언을 하고, 글을 쓴다. 존재의 허덕임에 이름 붙이는 것은 총체적 말살에 저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굶주림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여과 없이 지켜본다. 하지만 구경꾼이 될 수 없어서 쓴다. 잿더미에서 단 하나의 문장만 살아남는다 해도, 목소리가 너무 미미해 잔해 아래로만 가닿는다 해도, 자신들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세계가 기억해주길 바란다.
쓰는 사람의, 번역하는 사람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저자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어휘에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이 지각한 내용을 돌연 문장에 주입한다. 좋은 문장은 기쁨의 감각을 주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가자의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마침내 전쟁의 페이지를 넘길 때가 도래하면, 세상은 가자가 침묵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입속에 흙이 들어찬 채로도 말을 했다. 깨진 잇새로도 노래를 불렀다. 부러진 무릎으로도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굶주림에 이름을 붙였다. 이것을 참아내고 견뎠다.

추천평

문학이란, 그럼에도 쓰는 것이다.
민간인을 향한 공습, 인도적 물품의 통제, 질병 확산과 굶주림을 무기로 하는 봉쇄 등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 앞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는 불가능하다는 선언을 뚫고 계속 써내려간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들은 ‘그럼에도’ 쓰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지금, 가자지구에서는 알라 알카이시가 ‘그럼에도’ 쓰고 있다. 이토록 우아하고 지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재능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닥친 지옥 같은 현실을 말하는 데 쓰이는 게 안타깝지만, 이것이 문학의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꽃은 피고, 식탁은 음식으로 채워지기를. 불은 꺼지고 떠난 가족은 돌아오기를. 어리석은 전쟁은 스스로 멸망하기를. 그리고 간절한 이 편지는 모두에게 읽히기를. - 김연수 (소설가)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세계의 벽을 두드리느라 피투성이가 된 주먹이 이 글이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글쓰기가 존재 증명이고 번역이 저항이므로, 번역가인 저자는 지금 죽을 수 없다. 간단하다. 우리는 이 글을 읽어야 하고, 어떻게든 응답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글이, 번역이, 언어가 다 무슨 소용인가? - 김명남 (번역가)
여기 문학이 있어 허물어지는 의미를 다시 세우고 해체되는 영혼을 꿰매고 기운다. 여기 번역이 있어 삭제된 문장부호를 복구하고 밭은 표현의 숨을 느리게 이어 붙인다. 죽은 시인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을 허공에 새기고 길고 다정했던 서사의 죽어가는 기억을 권력자의 언어로 기어이 보존한다. 여기 문학의 번역이 있어 알라 알카이시의 심원한 영혼이 비로소 서제인의 민감한 영혼을 통과한다. 하여 우리 영혼이 영락없이 연루된다. 문학이, 번역이, 영혼을 연루한다. - 김선형 (번역가)
그동안 팔레스타인 소식을 뉴스피드로, 소셜미디어로 따라가며 생생한 이미지로 보고 들었는데도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몸을 뒤흔들고 머리를 두들기는 현실이 되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두 차례의 번역을 거쳐서야 진짜로 나에게 와닿았다니. 고통은 번역을 통해 힘겹게 찢기며 건너온다. 추천이라는 가벼운 말로 이 책을 건넬 수 있을까. 차라리 꾹 다문 입으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당신에게 보이고 싶다. 핏속에 품고 뼛속에서 기억할 이 글들을. - 홍한별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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