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사자섬 아이에서 '생각하는' 기독 청년으로 (1901~1923)
평안북도에서의 어린 시절 3.1 운동에 기독 청년으로 오산 학교에서 2. '감방 대학'에서 노자를 만나다 (1923~1945) 일본에서의 생활 역사 교사, 그리고 『성서조선』 민족주의자, 동양적 농사꾼 3.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 (1945~1960) 해방, 그리고 문교부장으로 해방된 남한에서 광야의 소리로 4.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1961~1989) 군사 정변과 퀘이커리즘 『씨알의 소리』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5. 함석헌이 남긴 것 한국 민주주의와 함석헌 서구 기독교와 동양 철학의 융합 6. 마치는 말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
|
1928년 봄, 함석헌은 동경사범에서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 일반 윤리 등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즈음 함석헌은 타고르와 간디의 책들을 흥미롭게 읽는 한편 계간지 『성서조선』을 편집하고 여기에 글을 실었다.
『성서조선』은 함석헌의 오랜 친구인 김교신이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1927년 7월에 창간한 잡지였다. 김교신은 함석헌보다 약 1년 먼저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지리학과 자연사를 강의하는 틈틈이 『성서조선』을 만들고 있었다. 우치무라가 예수와 일본을 동시에 중시했듯이 김교신 역시 '성서' 와 '조선'을 그렇겝앗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곧 잡지 『성서조선』의 성격과 방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김교신은 지도력이 뛰어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p. 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