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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의 설계자, 프랑스
5 · 추천사 9 · 서문 14 · 머리말 21 · 프롤로그 영국이 발명하고, 프랑스가 설계하다 27 · 제 1 장 FIFA의 탄생 - 로베르 게랭 53 · 제 2 장 월드컵의 탄생 - 쥘 리메 77 · 제 3 장 UEFA의 탄생 - 앙리 들로네 99 · 제 4 장 챔피언스리그의 탄생 - 가브리엘 아노와 자크 페랑 117 · 제 5 장 발롱도르의 탄생 - 황금빛 축구공에 새겨진 두 기자의 이름 131 · 제 6 장 네이션스 컵(유로)의 탄생 - 피에르 들로네 149 · 제 7 장 네이션스 리그의 탄생 - 미셸 플라티니 171 · 제 8 장 유소년 시스템의 탄생 - 페르낭 사스트르와 클레르퐁텐 193 · 제 9 장 현대 스포츠 미디어 비즈니스의 탄생 - 레키프와 프랑스 풋볼 213 · 에필로그 펜을 건네는 사람들 219 · 보론 영국은 왜 만들기만 하고 펼치지 않았는가? - 축구를 낳은 두 개의 토양 233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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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 - 1904년 5월 21일, 파리
계속되는 회피와 지연 앞에서 28세의 게랭은 결국 기다림을 포기하기로 한다. 1904년 5월 1일, 벨기에와 프랑스의 공식 국제경기가 브뤼셀에서 열렸다. 경기장에서 그는 벨기에 측 대표 루이 뮐링하우스(Louis Muhlinghaus)를 만났고, 그로부터 결정적인 말을 들었다. “키네어드 경의 주도 아래 잉글랜드 FA가 국제연맹 창설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게랭은 결심했다. 영국이 빠진 채로라도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창립 총회 초청장을 유럽 각국에 발송했다. 1904년 5월 21일, 파리 생토노레 가(rue Saint-Honoré) 229번지의 USFSA(프랑스체육경기연맹) 사무실에 일곱 나라의 대표가 모였다.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같은 날 독일축구협회(DFB)는 전보로 가입 의사를 밝혀, 사실상 창설 참여국에 준한다. 이렇게 하여 세계 축구를 관장할 국제기구,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FIFA)이 공식 출범했다. 다음 날인 5월 22일(자료에 따라서는 23일로도 표기된다) 열린 창립 총회에서, 게랭은 만장일치로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p.36 그러나 영국에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아일랜드가 ‘단일 영국 팀’으로서가 아니라 ‘각자 독립된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FIFA가 내세운 ‘한 나라 한 협회(one country, one association)’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p.38 쿠베르탱과의 노선 갈등 그러나 더 큰 적이 있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이었다. 쿠베르탱은 ‘귀족적 아마추어리즘(amateurism aristocratique)’의 대변자였다. ‘스포츠는 신사의 여가다. 돈이 끼어드는 순간 그 정신은 죽는다.’ IOC와 그의 신봉자들에게 이 신념은 종교에 가까웠다. 리메는 쿠베르탱의 인격을 존중했으나, 그 신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노동자 청년 한 명이 풀타임으로 운동에 매진하려면 그동안의 임금 손실을 보전해 줄 ‘브로큰 타임 페이먼트(broken-time payments, 결손 시간 보상금)’가 필요했다. 그것이 거부되면 가난한 청년은 운동장에 설 수 없다. 그것이 거부되면 ‘세계 대회’는 영원히 부르주아의 사교 클럽으로 남을 것이다. ---p.59 영국이 받쳐 주지 않는 무대 췰 리메는 1921년 3월 1일 FIFA 제3대 회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가 받아 든 것은 영광이 아니라 폐허였다. 회원국은 약 20개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영국 4개 협회는 1920년에 이미 탈퇴한 상태였다. 종주국이 빠진 ‘세계 연맹’이라니, 그 자체가 자기모순이었다. 영국 협회들이 탈퇴한 표면적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범국(독일·오스트리아)을 영구 제명하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메는 이 요구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정확히 ‘스포츠 정신의 자살 행위’였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방법이 ‘공을 통한 만남’이라면, 가장 큰 적이었던 이들과 다시 같은 운동장에 서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신의 신념을 거꾸로 뒤집는 일이었다. 그는 영국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영국을 향한 문을 한 뼘 열어 둔 채, 다른 손으로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그 새로운 파트너가 누구였는지는 다음 장면이 말해 준다. ---p.61 그가 가장 두려워한 자리는 다른 자리가 아니라 ‘동유럽 협회들’과의 대화였다. 소련,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이들 협회의 행정가들은 자국 정부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자본주의 진영과 한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체제 변절’로 해석될 위험이 있었다. 들로네는 그들에게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축구 이야기만 했다. 같은 잔디 위의 90분, 같은 규칙, 같은 호흡. 그 한 가지만 들고 그는 동유럽의 문을 두드렸다. ---p.88 가장 큰 걸림돌은 정작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한 영국이었다. 1954-55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이 된 클럽은 첼시 FC(Chelsea FC)였는데 잉글랜드 풋볼리그(Football League)의 사무국장 앨런 하데이커(Alan Hardaker)는 단호했다. “우리 리그 일정이 우선이다. 대륙의 소소한 대회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을 낭비할 수 없다.” 종주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너희 대회에 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첼시는 협회와 풋볼리그의 압력에 굴복하여 끝내 참가를 포기했고, 그 빈자리는 폴란드의 그바르디아 바르샤바(Gwardia Warszawa)가 채웠다. ---p.105 2010년 봄, 어느 평일 저녁의 유럽 어느 도시. 국제 A매치 데이. 그러나 경기장 관중석의 절반은 비어 있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가 잠시 머물렀다가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채널을 바꿨다. ‘또 친선전인가?’ 그라운드 위의 스타플레이어는 발목이 무거웠다. 클럽 감독은 휴대전화를 들고 협회 사무국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선수, 다음 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어요. 가능하면 후반에는 빼 줬으면 해요.’ 이 현실을 한 사람이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 한때 유벤투스의 등번호 10번을 단 채 세계 축구의 어떤 정상에도 다 올랐던 사람이고, 지금은 책상에 앉아 행정 문서에 사인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그날 들고 있던 펜으로 적은 한 문장이, 이 장(章)의 출발이다. “의미 없는 친선전은 끝났다. 모든 90분에 ‘의미’를 돌려주자.”이 장은, 그 한 문장이 어떻게 2018년 9월 첫 호각으로, 그리고 오늘 우리가 4년에 두 번 - 네이션스 리그와 유로 - 누리는 국가대항 축구의 거대한 부활로 변모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p.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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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 축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 왜 영국은 축구를 '발명'하고, 프랑스는 그것을 '세계화'했는가. 두 나라의 문화적 토양의 차이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 FIFA·UEFA·월드컵·챔피언스 리그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알게 되어, 경기를 보는 깊이가 한 겹 더해진다. · 축구를 넘어, 스포츠 행정·미디어·비즈니스가 어떻게 거대 산업으로 자라났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를 고민하는 이에게, 한 세기 전 프랑스의 경험은 더없이 값진 거울이 된다. 재미와 감동 (주신 내용 + 구체적 장면으로 보강)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유익한데 재미있다'는 것이다. 각 장은 한 편의 인물 드라마다. 두 번의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황금 여신상을 가방에 넣고 대서양을 건넌 사람, 호루라기를 삼키는 사고로 운동장을 떠났던 청년이 30년 뒤 유럽 축구의 정관을 완성하는 이야기, 알제리에서 빈손으로 건너와 숲에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어 한 나라에 월드컵을 안긴 행정가.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가 만든 무대의 첫 휘슬을, 정작 자기 귀로는 듣지 못한 채 떠났다는 것. 거대한 무대를 만든 사람이 그 무대 위에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하는 역설. 한 사람이 못다 이룬 꿈을 다음 사람이 펜을 이어받아 완성하는 릴레이. 이 책이 '축구 행정사'를 넘어 한 편의 뭉클한 인간 드라마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런 분께 권합니다 축구를 10년 이상 사랑해 온, 더 깊이 알고 싶은 팬 월드컵·유로 시즌을 200% 즐기고 싶은 모든 관람자 스포츠 경영·행정·미디어에 관심 있는 학생과 종사자 프랑스 문화, 그리고 유럽 근대사에 관심 있는 교양 독자 '사람 이야기'가 있는 역사 교양서를 좋아하는 분 경기장의 함성 너머에, 한 세기의 묵묵한 손길이 있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이 보는 다음 경기는 결코 같은 경기가 아닐 것이다. 축구를 보는 눈이 깊어지고, 세계를 보는 안목이 넓어진다. '결과'가 아니라 '설계도'를 읽는 책 축구 책은 많다. 대부분 경기와 스타, 전술과 명승부를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카메라가 운동장이 아니라 그 운동장을 만든 사람들의 책상 위를 비춘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 온 모든 대회의 '첫 줄'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추적하는, 국내 최초의 본격 교양서다. 아마 많이 들어본 적 없는 주인공들 메시도 호날두도 펠레도 이 책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골을 넣은 적 없는 사람들이다. 28세의 청년 기자, 두 번의 전쟁을 견딘 휴머니스트, 호루라기를 삼킨 행정가, 숲에 나무를 심은 사람.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던 이 이름들을, 우리말로는 처음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축구를 '문화'로 읽어 내는 깊이 이 책의 진짜 질문은 '누가 만들었나'를 넘어 '왜 하필 프랑스였나'로 나아간다. 영국의 지역 공동체주의와 프랑스의 보편주의, 두 나라의 정신적 지향점이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냈는지를 파고든다. 산업혁명과 노동자의 토요일, 빅토리아 시대의 '근육질 기독교'까지 - 축구 한 종목 안에 한 시대의 문화사가 통째로 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