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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박소영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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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 7

제1부 봄은 생강나무 꽃에서 온다

꿈길 … 17
도신 … 21
새집 … 25
내 똥 달기똥 … 32
고뿔 … 36
달롱개 나싱개 꽃다지 … 41
내 더우! … 44
장 담그는 날 … 48
봄은 생강나무꽃에서 온다 … 53
무논에 물을 대듯 … 57
둥구나무 … 61
벽장 … 65
술 심부름 … 69
봄봄 … 73
여심이 … 78

제2부 아홉 살 여름

아침 마롱 … 87
삼밭골 … 91
개구리 참외 … 96
아홉 살 여름 … 100
가재가 산다 … 104
장마가 지나가고 … 109
여름밤 … 113
물속에서 … 118
스피카 … 121
천렵 … 125
벼락 맞은 나무 … 130
전디기재 고갯마루 … 133
구보의 물빛 … 137
둥개미 … 141
아장사리 … 145
인연Ⅰ … 149

제3부 대장

대장 … 157
물굿청 … 164
정이뿐 … 167
박꽃 … 172
내가 봉께로 … 175
수호신 … 178
마당에 채울이 쳐지면 … 184
추석빔 … 189
오개오개 … 192
애편 … 195
오일장 … 198
소풍 … 203
마이산 … 207
운일암반일암 … 212
서리꽃 … 215
오리정 연꽃 … 217

제4부 용담에 가면

용담호 … 223
따순밥 … 228
인연Ⅱ … 235
용담향교 … 239
태고정 … 243
오후의 방 … 247
용담에 가면 … 250
내 편 … 255
호밀 베는 날 … 259

저자 소개 1

1955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시를 전공했다. 충남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회화(서양화)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둥근 것들의 반란』, 『사과의 아침』,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를 출간했다. 회화 작업으로 개인전 3회와 부스 개인전 4회를 열었고, 초대전·국제교류전·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수몰된 고향 용담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삶,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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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90g | 135*200*20mm
ISBN13
9791160202199

책 속으로

논 옆 작은 방죽에는 늘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튀어 다녔고, 쪼만한 새끼 물방개가 바쁘게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물속에서는 올챙이들이 꼬리를 흔들며 무리 지어 다녔다. 논바닥 벼그루터기 사이에는 벌금자리가 많았는데, 참깨처럼 생긴 이파리를 달고 있었다. 초무침하면 잃은 입맛을 살아나게 하는 이파리였다. 쑥이 논둑 사이 얼굴을 내밀었다. 틈새마다 보랏빛, 흰빛 제비꽃이 피었다.
양지바른 텃밭에서는 꽃다지, 나싱개, 광대너물 같은 봄나물들이 햇살을 받으며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애썼다. 한 걸음, 두 걸음 구불구불 이어진 논둑길을 따라가면 우리 집이 나타난다.
나는 방죽의 새끼 물방개처럼, 시간을 넘나들며 꿈길을 누볐다.
--- 「꿈길」에서

할머니는 집안의 안신安神인 철륭 앞에 공손히 앉아 제를 올렸다. 할머니의 기도는 언제나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제를 올릴 때마다 곁에 조용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모아 우리 집안의 안녕을 빌었다. 가장 간절히 불리는 이름은 바로 나와 남동생이었다. 할머니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정성스레 호명하며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바르게 커서 남을 돕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셨다. 그 기도는 울타리를 넘어 동네 이웃과 나라의 평안과 나라님의 안녕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간절함이 실려있었다.
--- 「도신」에서

여름은 매미 소리로 시작되었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쏟아지는 매미 울음 속에서 아, 정말 여름이구나 싶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들이 저마다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여름방학 구름이라 불렀다.
그런 날이면 한가롭던 여름 마롱 끝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느릿하게 흘러가다 산이 되기도 하고, 짐승이 되기도 하며 이내 흩어졌다.
매미는 저마다의 음으로 여름을 노래했고, 울음은 돌림노래처럼 이어져 끝내 하나의 장단이 되었다. 구름과 매미 소리는 내 어린 날 여름방학을 가득 메운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이 되어주었다.
--- 「여심이」에서

마당을 지나 텃밭 울타리 너머로 할머니가 보인다. 울타리 틈새마다 보랏빛 달개비꽃이 피어 있다. 나는 달개비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춘다. 쪼그리고 앉아 작은 꽃잎과 연초록의 이파리를 바라본다. 아침 이슬이 맺혀 반짝였는데, 마치 보랏빛과 초록빛 위에 유리알을 하나씩 올려놓은 것 같았다. 달개비꽃은 작고 여린 꽃이었고, 맑은 아침이 담겨 있었다.
나는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인 꽃잎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대궁 아래쪽에 달린 꽃은 활짝 피어 크고 당당했다. 위쪽에 맺힌 꽃은 이제 막 피어나 입을 오므린 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개비꽃은 워낙 작고 여려서 손끝으로라도 건드리면 금세 상처라도 입을 것 같았다.
--- 「아침 마롱」에서

용담 사람들은 맑고 깨끗한 물과 수려한 경관을 뒤에 두고 마을을 떠났다. 삶의 터전이었던 집과 전답은 물속에 잠겼다. 그러나 사라진 것들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터전을 내어주고 담긴 그 물은 다시 여러 지역으로 흘러가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 이 글은 물속에 잠긴 고향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안녕이다.
--- 「작가의 말」에서

출판사 리뷰

가장 투명하고 순수했던 시절, ‘온기’와 ‘사람 냄새’로 가득 채워 독자에게 전하는 이야기

작품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대목은 저자의 유년 시절을 채운 외가 ‘새집’과 범바우 마을의 원형적 풍경이다. 범바우의 생생한 풍경들은 '짐장', '모팅이', '지둥'처럼 표준어로 다듬어지지 않은 용담의 말씨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으며, 독자들을 어느새 물장구 소리 가득했던 호암천과 꽃내음 번지던 논두렁길로 이끈다. 밤이 되면 용마루에 앉아 마을을 지키던 수리부엉이의 의젓한 자취와, 아랫목에 둘러앉아 외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가며 가족의 안녕을 빌던 정성 어린 기도까지도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자가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고향의 풍경이 아니다. 서로의 삶을 살뜰히 돌보던 공동체의 온기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던 생활의 리듬, 그리고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경이로움이다. 『안녕』은 독자를 단숨에 가장 투명하고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데려다 놓으며, 오래전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안녕’, 지나온 시간과 오늘의 나를 이어 다시 삶을 흐르게 하는 말

“암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에야,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먼저 용담으로 향했다.(「용담호 中」)” 암 수술을 받은 뒤 저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집이 아니라 고향 용담이었다. 물속에 잠긴 옛 마을을 바라보며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고통스러운 항암의 시간 속에서도 저자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던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던 이웃들, 척박한 땅에서도 묵묵히 생명을 길러내던 고향 사람들의 강인함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뿌리가 되었다. 저자에게 고향은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가장 힘겨운 순간마다 다시 돌아가 삶의 의미를 확인하게 하는 마음의 근원이다. 물에 잠긴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체득한 삶의 태도는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터전을 내어주고 담긴 그 물은 다시 여러 지역으로 흘러가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작가의 말」 中)라는 문장처럼, 저자의 기억 또한 개인의 추억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들의 삶으로 흘러 들어간다. 『안녕』이 건네는 안녕은 과거를 향한 작별의 인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안부이자 지금도 여전히 흐르는 삶에 대한 조용하고도 단단한 응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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