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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세월은 만화경처럼 흔들리면서도 지나가더라 장닭의 정치학 숨을 틔우다 벚꽃나무를 심었다 밤을 부탁하다 사용 설명서 트럭 위에서 서열을 정한다 없는 것도 팔아 드립니다 마지막 출장 곶감 한 개의 수업 어머니가 버린 지팡이 내일이 쫓기고 있었다 간덩이가 부었다 제2장 되돌아보는 생활 속의 얼굴들 폼생폼사 내 첫 번째 파산 산은 청구서를 말없이 보낸다 제첩 잡는 사람들 말의 학력 그 친구는 예술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때를 놓친 부다 홍등을 찾아 달 없는 밤의 의식 사과 한 봉지 고무신의 무게 제3장 내가 지금 서 있는 좌표는 어디쯤일까? 허수의 아버지들 내가 떠난 뒤에야 그까짓 것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내 최초의 직업은 대서소였다 고급 특산품의 비밀 각양각색 - 그 여름의 도보 원정 문어 대가리 김만수, 앞서가다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 결정적 실수 우리 아들은 죽고 없습니다 봉이 김선달 치킨 책을 덮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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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에는 장닭 한 마리가 산다.
그 녀석을 보고 있으면 가끔 사람 생각이 난다. 특히 사람들 중에서도 어디 가면 꼭 한 명씩 있는 “괜히 목소리 큰 사람”이 떠오른다. 아침이 되면 그 장닭은 제일 먼저 등장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당 한가운데 올라선다. 그리고 목을 길게 빼고 힘껏 소리를 지른다. 꼬끼오! 마치 세상을 깨우는 책임이라도 맡은 것처럼 요란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해는 이미 떠 있다. 동쪽 하늘이 환해진 뒤에야 그 녀석이 울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어난 세상에다 대고 외치는 셈이다. 그래도 기세는 대단하다. 모이를 줄 때도 제일 먼저 달려온다. 다른 닭들이 가까이 오면 모이를 먹기보다 먼저 날개를 펼치고 어깨를 부풀린다. “여긴 내 자리다.” 몸짓만 봐도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장닭이 꼭 강한 상대에게는 조용하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이웃집 개가 담장 너머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 같으면 마당을 지배하던 장닭이 그날만큼은 괜히 바닥만 긁고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모이통 뒤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참 웃었다. 세상에는 큰소리는 잘 치지만 진짜 싸움은 피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장닭의 하루도 대체로 비슷하다. 아침에는 세상을 깨우는 듯 소리를 지르고, 낮에는 마당을 순찰하며 기세를 부리고, 저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닭들 틈에 섞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서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사람 세상이 떠오른다. 어디를 가든 목소리 큰 사람이 꼭 있다. 세상이 자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막상 밤이 되면 모두 비슷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던 사람도 집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 된다. 그러고 보면 장닭도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낮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세를 부리고 밤이 되면 조용히 날개를 접는다. 그래도 그 장닭이 미워 보이지는 않는다. 가끔은 그런 녀석이 있어야 마당이 조금 덜 심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 마음속에도 작은 장닭 한 마리쯤은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괜히 목을 빼고 세상을 향해 한 번쯤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 그 마음 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시끄럽고 조금 더 다양해지는지도 모른다. ---「장닭의 정치학」 중에서 정원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한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가지는 유난히 욕심이 많다. 햇빛을 더 받겠다는 듯 위로 위로 뻗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기 그림자마저 스스로 덮어쓰고 만다. 가지들이 서로 겹치고 엉키면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 생기고, 그 안에 있는 잎들은 조용히 숨이 차 보인다. 처음에는 나무가 무성해지는 것이 그저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가지가 많고 잎이 많으면 더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나무를 돌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정원사는 가끔 나무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가위를 들어 엉킨 가지 하나를 조심스럽게 잘라낸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 잠깐 망설이게 된다. 잘라내는 일은 언제나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위가 가지를 자르는 순간 나무는 잠깐 놀라는 것처럼 보인다. 막 자라던 길이 갑자기 끊어지기 때문이다. 가지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잠시 허전한 공간이 남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막혀 있던 자리마다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빛이 들어오지 못하던 잎들이 다시 숨을 쉬듯 살아나고, 연둣빛 잎맥들이 조용히 맥박을 되찾는다. 잘려 나간 자리가 오히려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무가 조금 더 멀리 자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것 같다.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때로는 하나쯤 내려놓는 일이 더 큰 생장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삶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멀리 뻗어 가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만든 그늘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음이 엉키고 길이 막히면 숨이 가빠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정원사의 가위 같은 것일지 모른다. 조금 덜어내고, 조금 비워 두는 일. 막혀 있던 곳에 빛이 다시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체로 생장은 무언가를 더 붙잡은 곳이 아니라, 조금 덜어낸 자리에서 더 멀리 이어진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마음속에서도 가지 하나쯤 조심스럽게 잘라내 본다. 그래야 그 안으로 햇살이 들어와 다시 숨을 틔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숨을 틔우다」 중에서 이 물건은 태어날 때부터 함께 들어옵니다. 별도의 신청은 없었고 거부 또한 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소리가 크고 자주 울립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안고 있으면 잠잠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걷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면 잡고 있던 손을 자꾸 놓습니다. 사용자는 손을 더 내밀게 되어 있으나 이 물건은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분실 신고는 불가능하며 찾으러 가도 이미 다른 길에 있습니다. 간혹 뒤를 돌아보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금방 다시 돌아섭니다. 이 물건은 소유가 아니라 경과에 가깝습니다. 사용 기간은 종료되지 않으며 사용자는 가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름을 불러보게 됩니다. 응답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괜찮다”는 소리가 한 번쯤 들립니다. ---「사용 설명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