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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벌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비극의 주인공 소현세자 어떻게 하면 나라를 안정시킬까 반청세력 등용 친청세력 숙청 북벌정책 강력하게 추진 북벌론의 진실과 허위 백두산정계비 2.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 서인과 남인의 대결 음모와 살육, 그것이 정치인가 기사환국으로 서인정권 몰락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둘러싼 암투 당쟁이 왕권 강화의 수단인가 중앙에선 당쟁이, 향촌에선 향전이 3. 죽은 사람까지 군포를 내야 하다니 땅을 재기 전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날로 늘어나는 궁방전 이윽고 뿌리를 내린 화폐정책 4. 상업이 발달해야 나라가 잘산다 사신은 문화사절 경제사절 일본과의 무역 서울에는 상설시장 지방에는 오일장 인삼은 없어서 못 판다 5. 비밀결사 때문에 양반들이 떨고 있다 승려는 서울에 들어올 수 없다 예언이 난무하는 수상한 세월 우리는 생존권을 찾기 위해 일어섰다 찾아보기 |
Lee E-Hwa,李離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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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한문소설「허생전」을 통해 북벌론의 허위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허생은 남선 묵적골에 사는 샌님이다. 그는 생업을 도모하지 않고 밤낮 글만 읽어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아내는 견디다 못해 공장이, 장사치 노릇도 못한다면 도둑질이라도 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10년 글읽기를 포기하고 서울의 소문난 부자인 변씨를 찾아가 만금의 돈을 빌렸다. 변씨는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보고 선뜻 큰돈을 빌려 주었다. 그는 안성에 가서 대추, 곶감 따위의 과일을 도거리로 왕창사들여 쟁여 놓았다. 과일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물건을 팔았던 장사치들은 그에게 열 배의 값을 치르고 되사야 했다. 다음에는 제주도의 말총을 싹쓸이해 또 큰 이익을 남겼다. 그는 변산에 있는 도둑들을 찾아가 돈을 주며 각자 소 한 마리와 아내를 데려오도록 했다. 허생은 일 년치 식량을 마련해 도둑 2천여 명과 함께 무인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큰 수확들 거두자 3년치 식량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는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등지에 가서 팔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일은 시험삼아 했던 것이라며 도둑들에게 육지와 연락을 끊으라 이르고 배를 침몰시켰다. 돈 50만 냥을 태연하게 바닷속에 처넣은 허생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남은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돈을 빌린 지 5년 만에 변씨를 찾아가 마지막 남은 돈 11만 냥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았다. --- p.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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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갈등과 이본과의 선린우호 관계 속에서 존명배청 사상이 등장하고 북벌론이 대두하였는데, 결국 이것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으나 정치적 책략으로 이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당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주자학의 교조성이 강화되었음을 추적하였다.
극대화한 모순을 청산하려고 지배세력과 관인사회, 그리고 재야의 지식인들이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곧 영조와 정조의 개혁정치와 이를 뒷받침한 벼슬아치들과 실학파로 일컬어지는 재야파에 의해 사회개조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족의 독점현상을 타파하고 양반을 없애야 하다는 등의 내정개혁만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주자학이 아닌 서학(西學) 등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고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것'을 추구한 민족주체의 확립 등을 부각시켰다. 사회경제사적으로도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는 점이다. 화폐를 전면적으로 통용하고 이에 따라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전개되었다. 국가통제를 벗어나 상업이 발달하면서 상업자본을 축적한 상인세력이 정치적 힘을 얻었다. 또 농법의 개량, 농기구의 개발을 통해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토지의 독점현상이 가속화되어 새로운 경제질서로 재편되었다. 국가정책도 이에 발맞추어 개선을 도모하였다. 민중의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중인, 서자, 노비 등 소외되거나 학대받던 세력들은 자신들에게 씌어진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민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처지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물리적으로 저항을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영조와 정조는 이들의 고통을 들어 그 개선을 도모하였다. 서민문화가 활발하게 싹트기 시작하였다. 문학에서는 중인들이 벌인 여항문학과 서민들이 벌인 춘향전, 심청전 등 국문소설이 유행을 타고 독자를 확보하였으며, 음악에서는 직업적 가객이 등장하고 판소리가 최초로 생성하였고, 그림에서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서민문화를 유교 교양을 중심으로 이룩된 고답적인 귀족문화와 쌍벽을 이루었다. 놀이와 풍속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전통적 생활습관에서 차츰 다양한 놀이문화를 전개시켰다. 트레머리 등 사치를 금지하는 영조와 정조의 검소·절약정책에 힘입어 서민들의 세시풍속이 절제되어 나타났다. 통과의례도 간소화를 표방하였으며, 세시풍속도 농경문화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오늘날 전통적 풍속과 놀이는 이 무렵 정리되어 계승되거나 재현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