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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농민군 지도자와 후손들의 고난
남접 지도자의 비참한 말로 땅끝 마을을 휩쓴 두 지도자 북접 지도자들의 사정 영남 지도자들의 사정 친일파로 변신한 배신자들 끝까지 지조를 지킨 투사들 떠돌이 신세가 된 전봉준 후손과 일가들 2장 항일 의병과 3·1혁명에 참여한 농민군 동학농민군, 의병이 되다 잔여 농민군의 의병 활동 녹두장군의 아들 전해산 의병장 천도교 창건과 3·1혁명 농민군 출신의 민족 대표 식민지시대의 왜곡된 인식 현대 정치 지도자의 인식 3장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다 동학농민혁명의 활발한 평가 작업 사료 발굴과 편집 간행 『주한일본공사관기록』과 동학농민혁명 관계 자료집 논문집, 증언록, 역사 기행 등 간행 다양한 분야의 소재가 된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제정, 심의위원회와 기념재단 발족 전봉준 동상, 종로에 자리잡다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다 부록: 사발통문 무장 포고문 백산 격문 4대 행동 강령 폐정 개혁 12조 고시, 경군과 영병과 이교와 시민에게 『전봉준공초』 전봉준과 관련된 시와 민요 다양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사업단체 결성 동학농민혁명 연표 감사의 말 |
Lee E-Hwa,李離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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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이해와 지위가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이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 p.67 1919년 3·1혁명이 일어날 때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추진했고, 따라서 농민군 출신 인사들이 개신교 인사들과 손을 잡고 만세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잔여 농민군은 새롭게 변신해 희생을 치렀다. --- p.88 3·1혁명 당시 농민군 출신 아홉 명이 장년의 나이로 민족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 25년이 흘렀으니 적어도 20대 또는 30대에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했던 것이다. --- p.107 1945년 이후 미군정 시기와 이승만 독재 시기에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이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 시기에는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반독재 민주운동 과정에서 새로운 평가가 따랐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사료 수집과 논문집, 단행본이 대량으로 발간되어 연구의 수준을 높였다. 이어 전주, 정읍, 고창, 광주, 장흥, 장성, 상주, 예천, 진주, 홍천, 보은, 예산, 태안 등 동학농민군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기념사업단체도 발족했다. --- p.125 마침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2004년 3월에 공포되었다. 윤철상 의원의 노고가 컸다. 이 특별법에는 보상 규정은 없었으나 농민군의 역적 누명을 국가에서 공식으로 벗겨주고 110년 만에 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 p.162 전봉준을 부르는 호칭이 다양한 것도 여느 사람과 달리 특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민중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오래 기억되어 지워지지 않는 영웅적 이미지로 새겨졌다. 그리하여 민중이 불렀던 ‘녹두장군’을 부각시킨 것이다. --- p.174 이제 동학농민혁명은 3·1혁명, 4·19혁명, 반독재·반군부 민주항쟁, 촛불혁명의 근원으로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분단 구조 등 민족 모순을 청산하는 동력이 되고, 진정한 평등과 자주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인권을 보장하는 학습장 또는 토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 조국의 통일을 위해 그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야 할 것이다.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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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의 필생의 역작!
‘동학농민혁명’을 총정리하다 저자의 유작인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는 총 3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3권에 해당한다. 먼저 1권에서는 민란이 일어난 19세기의 사회적·경제적 배경과 함께 동학의 전파, 농민과의 결합과정을 담았다. 2권에서는 일본이 농민군의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진출하여 개화 정권을 수립한 뒤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농민군 섬멸작전에 나선 과정을 실었다. 마지막 3권에서는 전봉준 등 혁명 지도자들이 일본 영사경찰과 권설재판소의 문초를 받고 처형된 과정을 서술하고 그들의 죽음과 항일의병이나 3·1혁명 가담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부록으로 동학농민군이 직접 작성하여 발표하고 전달한 관련 문서를 모아 정리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민초들의 혁명사 근대사의 여명을 밝히는 횃불이 타오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우리 근대사의 여명을 밝히는 상징이었다.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맞서 민란을 일으켰다. 이 고부 민란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동학농민혁명은 일부 특권층의 토지 소유 및 농업 생산의 독점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신분 차별을 타파하고자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명제를 내걸고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개벽을 꿈꾼 농민·노비·백정 등이 주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나아가 이를 빌미로 농민군 진압을 위해 조선에 파견된 일본의 간섭과 침략에 맞서 싸운 변혁운동이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3·1혁명으로 계승되었고 나아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미래를 여는 희망이다” 동학농민혁명, 미래 역사의 전진을 위한 교훈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반외세’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잘 인식했던 변혁운동으로 농민을 주축으로 지배계층에 맞선 조선시대 최대의 농민 중심 항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 모든 시민운동의 근원이 되었다. 이 책은 특별히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재조명한다. 이 혁명이 분단 구조 및 민족 모순을 청산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장차 남북의 통일을 위해 그 정신을 올곧게 계승하는 현재진행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한 평등과 자주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인권을 보장하도록 노력함으로써 동학농민군의 정신을 미래의 역사적 자산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근거를 잃는다. “농민군의 지향과 정신은 미래의 역사적 자산이 될 것이며, 통합과 화해는 민주주의 구현에 잣대가 될 것이고, 반외세·자주의 지향은 통일의 화두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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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은 역사학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실증해주는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러다. 그는 국민적인 역사학자이자, 민족민주 투쟁의 실천가로 현장체험이 가장 풍부한 분단시대의 인문주의자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대신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분노하고 국가 권력의 가해 사실을 밝혀내려 애썼던 사학계의 녹두장군이다. 그런 이이화 선생이 일생을 바친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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