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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
1946년경 남한주민의 사회의식 미군정기 농업문제와 토지개혁 이승만과 5 · 10 총선거 2. 전쟁 한국전쟁의 사회학 : 사회의 변화와 사회적 유산 한국전쟁과 국가건설 한국전쟁의 사회사를 위하여 3. 비교 양반과 부르조아 세계체제 속의 혁명과 전쟁 - 한국과 베트남 4. 평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이해 "고개 숙인" 수정주의 :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출발 |
JUN, SANG-IN,全相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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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조선조의 양반계응은 경제적 계급과 사회·문화적 신분 또는 지위, 그리고 세력화된 정치권력을 총체적으로 구비했던 지배엘리트였던 것이다. 조선조의 신분제는 양반제로 바꿔 불러도 무방한 것이다.
조선조는 유교 이념이 지배했던 사회였다. 조선왕조가 500년간 구가했던 높은 수준의 사회적 통합과 안정은 국가이념으로서의 유교 덕분이었다. 조선조의 국가건설자들은 "국가질서가 순수하고 완벽한 유교적 이상의 구체적 표현 형상이 될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노력한다"(박영신, 1978:122). 유교는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내성외왕(內聖外王)의 기치에도 나타나듯이 단지 개인의 수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 그리고 정치를 통해야만 그 가치가 구현·완성되는 사상체계"이기 때문이었다(최우영, 1994:79). 그리고 이러한 유교이념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양반의 몫이었다. 양반은 유교이념의 담지자로서, "스스로 속한 사회의 가치체계를 도덕적으로 대표하고 엄격히 실천하고, 이의 공식적인 주석가이자 전달자로, 그리고 후견인으로 자처"했던 것이다(박영신, 1978:133). 유교 없는 양반이나 양반 없는 유교는 공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 pp. 264-2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