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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비평
빠른 세상에 대한 느린 성찰
이영준
문학동네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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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속도를 비평한다는 것

1장 속도의 패러다임 변화
속도의 체인: 점의 속도에서 공간의 속도로/ 한 장의 사진에 응축된 속도들: 윈스턴 링크의 경우/ 비평의 속도: 롤랑 바르트의 “제트 인간”이 놓친 것/ 비평의 속도: 역사의 천사의 날개에 부딪히는 강풍/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빨라졌나/ 속도와 권력: 21세기에 군사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 혈류속도,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속도

2장 한국의 속도의 짧은 역사: 해방된 속도와 관리된 속도
총알택시가 사라진 이유/ 철도의 속도 변화/ 항공기의 속도 변화/ 왜 기계들 중 컴퓨터만 빨라졌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남북한의 속도/ 우주속도

3장 속도의 차원: 옛날에
근대 전에는 누구나 느렸다?/ 고구려의 상대속도/ 이성계가 쏜 화살의 속도/ 그림과 눈의 속도/ 무예의 속도/ 글씨의 속도

4장 속도의 차원: 도시에서
20세기 말 서울의 속도/ 김현옥의 속도 정치/ 속도는 도시의 산물인데 도시는 정체를 낳았다/ 속도의 주체는 누구인가?: 제한속도의 정치학/ 속도의 체인은 결국은 밸류 체인

5장 속도의 차원: 강과 산에서
블타바: 역사와 자연의 강/ 한강: 자연과 정치의 강/ 유체의 정치학/ 등산도 마침내 속도의 체인이 되다

6장 속도의 차원: 바다에서
선박과 파도/ 바다에서 속도를 방해하는 것들: 사고와 전쟁/ 수잔나호와 ONE 에이퍼스의 경우

7장 빠른 기계와 느린 기계
제트엔진의 메커니즘/ 고무줄 동력의 메커니즘

8장 느림의 귀환: 일부러 느리게 만든 기계들
속도의 기계와 사회적 속도/ 여객기 순항속도의 경우/ 터보프롭엔진의 경우/ 헬리콥터 로터의 경우/ 교통 정온화/ 성찰의 속도

9장 속도의 그늘
북한 철도의 경우/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경우/ 물류센터의 속도

저자 소개 1

李瑛浚

기계비평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교수. 기계의 메커니즘과 존재감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끌려 기계를 비평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은 이 세상 모든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2012), 『조춘만의 중공업』(공저, 2014),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2016),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공저,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푈클링엔: 산업의 자연사』(공저, 2018)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대우조선에 대한 전시인 『기업보
기계비평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교수. 기계의 메커니즘과 존재감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끌려 기계를 비평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은 이 세상 모든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2012), 『조춘만의 중공업』(공저, 2014),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2016),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공저,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푈클링엔: 산업의 자연사』(공저, 2018)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대우조선에 대한 전시인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공동 기획, 2017), 발전소의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전시인 『전기우주』(2019), 조선 산업에 대한 전시인 『첫 번째 파도』(공동 기획, 2021), 『두 번째 파도』(공동 기획, 2022) 등 기계와 산업에 대한 전시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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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620g | 140*210*25mm
ISBN13
9791141617134

책 속으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죽기 직전에도 병상에 누워 스톱워치를 써서 링거의 떨어지는 물방울을 관찰하며 그 유속을 측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 p.7

누구나 다 지적하는, ‘속도를 추구하다 비인간화됐다’는 상투적인 지적을 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거꾸로 속도가 오늘날 인간의 모습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고 주체에 깊숙이 침투했는가를 살펴본다. 단지 속도를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도야말로 오늘날 인간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 p.10

상품의 세계에는 속도의 체인이 있어서 중간에 이 사슬이 끊어지면 가치의 체인도 끊어진다. 짜장면은 만들 때부터 손님상에 오르기까지 속도가 유지돼야 한다. 만들기는 빨리 만들었는데 배달이 느리다거나 배달은 빠른데 한참 뒀다가 먹는다든가 하면 짜장면은 불어버린다. 물론 짜장면은 최종 단계의 소비도 빠르게 이루어지는 음식이다. 바쁜데 후딱 먹으려고 시키는 것이니 말이다.
--- p.26

자연의 속도는 그것이 원래부터 주어진 속성이기 때문에 자연물 자신이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제비가 노력해서 더 빨리 난다거나 계곡물이 갑자기 태만해져서 느리게 흐르지는 않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속도를 바꾸고, 나아가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속도를 초월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 pp.77-78

서예에 다양하고 풍부한 속도들이 담겨 있는 이유는 온몸의 힘을 써서 붓, 먹, 종이, 형상들을 잘 엮어야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즉 서예는 다양한 물질들과 정신을 이어주는 총체예술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서예에서 오늘날 기계화된 속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하고 깊은 속도를 누렸다.
--- p.184

수에즈운하가 막힌 것이 21세기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수에즈운하는 중동의 정세에 따라 수시로 막혔다가 다시 열리곤 했다. 1967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6일 전쟁을 치렀고 그때도 수에즈운하가 막혔으며 1973년의 욤키푸르 전쟁 때도 막혔다가 1975년이 돼서야 통행이 재개됐다. 이런 사태는 결국 지구촌의 동맥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구촌의 경제는 해상물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그 속도는 사실은 대단히 취약한 기반 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89

마감시간이 다가오면서 관리자들은 미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작업 라인 사이를 뛰어다니며 단말마적인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이거 바코드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2라인! 2라인! 2라인!” 안전수칙에는 작업장에서 절대로 뛰면 안 된다고 돼 있지만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물류센터 작업장에 안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쿠팡 노동자의 95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즉 계약해지가 쉬운 것이다.

--- p.370

출판사 리뷰

우리는 왜 이토록 빨라졌는가

『속도비평』은 속도를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현상으로 바라본다. 카메라, 철도, 자동차, 항공기, 스마트폰 등 근대 이후 등장한 기술들이 ‘점’에서 ‘선’으로, 다시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속도가 어떻게 우리 삶 전체를 뒤덮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속도는 더이상 특정 교통수단이나 기계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 배송 시간, 생산 시간, 응답 시간, 심지어 인간의 집중력과 감정까지도 ‘속도의 체인’ 안에 편입된다. 현대인은 속도를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속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출발해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통신 인프라를 갖춘 초고속 사회로 변모한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과 개발주의가 만들어낸 특유의 속도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군인 출신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불도저’로 불린 김현옥 서울시장의 청계고가도로, 여전히 건설과 조선업계에 남아 있는 ‘돌관공사’, 21세기에도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밀어붙이기식 업무 방식은 우리가 속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영준은 속도를 둘러싼 다양한 장면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더 풍부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미국의 사진가 윈스턴 링크가 증기기관차의 찬란한 마지막 순간을 담은 한 장의 사진, 롤랑 바르트의 「제트 인간」에 대한 비판적 독해,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에 대한 재해석 등은 단순한 기술사의 해설을 벗어나 인문학적 사유의 지평까지 넓혀준다. 속도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역설적으로 속도를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시도 또한 다룬다. 과속방지턱, 보행자 중심 도시계획, 교통 정온화 정책 등은 더 빠른 사회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속도를 억제해야 하는 현대 문명의 모순을 드러낸다. 속도로 인한 눈부신 발전 이면에는 플랫폼 노동과 물류 산업, 지역 간 격차와 글로벌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짚어낸다.

속도의 승리인가, 속도의 역습인가

이영준은 전작 『기계비평』에서 자동차, 카메라, 컴퓨터, 비행기 같은 기술적 사물들을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맥락으로서 읽어낸 바 있다. 『속도비평』에서는 그 문제의식을 한층 확장하여 기계 자체의 분석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계가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속도의 체계 전체를 탐구한다.

속도를 다룬 기존의 담론들은 대개 가속화된 자본주의의 병리나 인간 소외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폴 비릴리오는 속도를 전쟁과 권력의 문제로 읽었고, 하르트무트 로자는 사회적 가속화가 인간의 삶을 잠식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영준은 속도를 추상적 개념이나 철학적 은유로 다루는 데 머물지 않는다. 철도와 공항, 선착장, 물류 시스템과 플랫폼, 스마트폰 같은 구체적 장소와 기계와 기술의 작동 원리를 추적하면서 속도가 실제로 어떻게 생산되고 유지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더 빠른 이동수단을 만들고, 더 빠른 통신망을 구축하며, 더 빠른 서비스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영준은 바로 그 성공이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든 공간이 속도의 체인으로 가득찰 때, 속도는 오히려 스스로의 장애물이 된다. 교통 체증, 물류 병목, 플랫폼 노동의 과부하, 끊임없는 시간 압박은 속도가 만들어낸 새로운 역설이다.

특히 책 후반부에서 다루는 물류 노동과 속도의 불평등에 대한 분석은 인상적이다. 누구나 빠른 서비스를 원하지만, 그 속도를 떠받치는 노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초고속 인터넷과 KTX의 세계에 살고, 누군가는 여전히 지체된 시스템 속에 머문다. 속도는 더이상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권력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속도비평』은 단순히 ‘느리게 살자’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속도를 둘러싼 낭만적 환상과 단순한 비관론을 동시에 넘어선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힘인 속도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의 구조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가장 입체적이고도 도발적인 문명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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