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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병단(兵團)’의 해산: 왕훙원에 의해 통합된 상하이 노동자조반파
신속하게 발전한 2병단 1병단, 공3사(工三司)와 야전 군단 성공하지 못한 왕훙원의 통합 시도 「제5호 통령(通令)」 발표와 그 파장 각개 격파당한 병단 내부 반대파의 제거 심사받은 판궈핑 쌍조사(雙造司)와 신공총사(新工總司) 왕훙원에 의한 공총사 통일 소결 제22장 연사(聯司) 분쇄: 문혁 신질서의 확립 1967년 상하이의 무장 투쟁 상하이중유기계공장의 양대 계파 대중조직 조반파 명분 획득을 위한 연사와 동방홍의 투쟁 상하이중유공장의 첫 번째 대규모 무장 충돌 동방홍에 대한 시 혁명위원회의 지지 지련처(지련참, 支聯站): 일반 사회 대중에 호소한 연사 “상하이는 반드시 제2차 대란을 겪어야 한다” 제푸시(解福喜) 사건 ‘G호(號) 행동’ 시 혁명위원회의 태도 사태의 지속적인 확산 시혁위회의 「공개 편지」 우연한 사건으로 촉발된 필연적인 무장투쟁 8·4 연사 분쇄 무투 무투의 엄중한 후유증 마오에 의해 찬양받은 연사 분쇄 행동 소결 제23장 4·12 포격: 군대로부터의 경고 장춘차오의 대회 미출석으로 인해 야기된 추측 제2군의대 ‘홍기’에 의한 사건의 시작 베이징으로부터 전달된 소식 『문회보』사의 포격(炮打) 전투대 성립 4·12 포격 공총사에 의해 보호받은 장춘차오 장칭에 의해 구원을 받은 장춘차오 가을 수확 뒤의 총결산 소결 제24장 대연합(大聯合)에서 상산하향(上山下鄕)으로: 홍위병 운동의 종결 중앙으로부터 학교 복귀 및 군사훈련을 요구받은 학생들 상하이에서 철수한 외지 홍위병 마오로부터 칭찬을 받은 시 제6여중 대연합 시 중학 홍대회의 성립 중관회(中串會): 상하이 홍위병 운동의 이단 3차례 접관당한 『홍위전보』 3파 홍위병의 세 가지 연극 대학 홍위병 조직의 대연합 대학 홍대회의 성립 상산하향 운동과 홍위병 운동의 종결 소결 제25장 공총사(工總司)에서 총공회(總工會)로: 노동자조반파 조직의 체제화 1967년 초 상하이 노동자조반파 조직의 상황 구이양(貴陽) 경험과 본직 복귀 연합(귀구연합, 歸口聯合) ‘도기연합(倒旗聯合)’의 혼란 구·현·국 연락처의 정리 “관계 정리(탈구, 脫鉤)”와 “본직 귀속(귀구, 歸口)” 공총사의 성립 반주년 기념대회 마오쩌둥의 제안: 노동조합을 통한 조반대 개조 상하이 노동자 혁명 조반파 대표대회 공총사 총부 기구 조직 변화 ‘두 개의 간판을 단 하나의 그룹’ 『공인조반보』의 정간 공대회로 개명된 공총사 상하이총공회로 개명한 공대회 소결 제26장 간부학교에서 고온과의 전투 현장으로: 관료의 ‘혁명화’ ‘공사’에서 시 혁명위원회로 3군 좌담회 사건 상하이 ‘해방 간부’의 모델 시 혁명위원회 인원 구성 소반자(小班子)와 대반자(大班子) 5·7 간부학교(간교, 幹校), 고온과의 전투(전고온, 戰高溫) 그리고 4개의 지향(4개면향, 四個面向) 천피셴·차오디추 특별 안건 ‘3결합’을 통해 등장한 새로운 간부들 군 혁명위원회와 군대의 관계 소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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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말 캉핑루 사건 이후, 문혁에 반대하는 세력 중 조직적인 형태를 제대로 갖춘 집단은 더 이상 상하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상하이 조반 조직에 대항하는 것은 보수파 세력이 아니라, 조반파 내부의 반대 세력이었다. 이것이 상하이 문혁의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pp.78-79 전국적으로 무투가 확산되고, 심지어 실제 총포를 이용한 전투까지 발생했으나, “연사 분쇄” 투쟁은 상하이 문혁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충돌이었다. 상하이 주류 조반파는 지련처가 아직 시 전체 규모의 통일 조직을 형성하지 않았을 때, 그들의 주요 지도자들을 체포한 뒤 상하이중유 연사를 분쇄했다. … 이는 상하이 문혁의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상하이의 안정된 국면은 전국 문혁의 모범으로 간주되었다. ---p.174 문혁 시기, 간부를 숙청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죄명은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장춘차오가 상하이시위의 지도자인 천피셴(陳丕顯)과 차오디추(曹荻秋)를 숙청하려는 음모를 꾸밀 때, 그들에게 씌운 죄명 또한 ‘반역자’였다. 두 차례의 민간 포격에서, 포격을 주도한 이들은 먼저 장춘차오의 ‘역사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이후 그에게 ‘반역자’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웠다. 이들은 이를 통해, 장춘차오의 혁명 좌파로서의 정당성을 박탈하고, 그를 중앙 정책 결정층의 핵심에서 축출하려 했다. ---p.233 상산하향 운동은 청년 학생들에게 체제 내 등급 신분 중 가장 획득하기 어려운 도시 거주 신분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도시 거주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박탈당했다. 이 결정은 상산하향 운동에 동원된 모든 사람들이 이후의 인생에서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후 다시 도시 체제 신분을 획득하려면 반드시 정치적 충성을 증명해야 했으며, 각급 권력 기관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간부 자녀를 제외한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이는 어려운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굴욕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p.308 결국, 모든 대중조직은 ‘대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해체되었다. 이 과정은 마오의 문혁이 ‘제왕(帝王)의 패권(覇權)’ 담론을 활용하여 당시 사회의 민중 권리 문제와 정부 및 집권당에 대한 감독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결국 통할 수 없는 막힌 길이었다. 1949년 이후, 권력이 점점 더 중앙으로 집중되는 정치 환경 속에서, 설사 노동자조반파 조직이 일시적으로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역할을 했더라도, 최종적으로는 다시 관 주도의 조직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p.401 문혁은 간부를 향한 대규모 비판 운동이었다. 마오는 문혁의 본래 의의 중 하나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과 특권계층 등장 방지를 들었다. 그러나 간부의 태도나 관료 체제에 대한 기층 대중의 비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운동은 곧 문혁 정책 결정층에 의해 ‘자산계급 반동노선’과 ‘주자파’에 대한 정치적 비판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p.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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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하이(上海)에서 벌어진 10년간의 문혁 역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상하이 문혁은 중국 전체 10년 문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특히 상층 정치 투쟁을 제외한 대중운동에서 문혁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문혁 대중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한 홍위병(紅衛兵)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조반파(造反派) 운동이었다. 홍위병 운동은 1968년의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 이르러 기본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노동자조반파 운동은 1968년 ‘대연합(大聯合)’ 때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러나 왕훙원(王洪文)이 이끌던 노동자조반파만은 조직 체계를 확립하면서 핵심 세력을 유지하였고, 문혁이 지속된 10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홍위병과 노동자조반파 외에, 상하이에는 다른 성(省)이나 도시에는 없는 독특한 문혁 세력이 존재했다. 그것이 장춘차오(張春橋)와 야오원위안(姚文元)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 상하이시위 사작조(寫作組)였다. 이들은 상하이 여론을 좌우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여론에 대해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상하이 문혁은 중앙 문혁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65년 『해서파관(海瑞罷官)』 비판을 시작으로, 1966년 안팅(安亭) 사건, 1967년 1월 탈권(一月奪權), 1976년 무장 저항 미수 사건에 이르기까지, 상하이 문혁 세력은 마오의 문혁 노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며 그의 정치적 구상을 충실히 따랐다. 저자는 이 책의 전체적 서사를 통해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며, 역사적 동기와 논리를 추적하고자 했다. 각 장(章)과 절(節)의 서술에는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상황이 처음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찾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란 개별적 세부 사실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만약 이러한 세부 요소가 결여된다면 역사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또한 문혁 참여자의 운동 과정과 그들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고자 했다. 그들 역시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문혁 연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단지 안팅(安亭) 사건, 『해방일보(解放日報)』 사건, 캉핑루(康平路) 사건, 1월 탈권 등과 같은 중대한 정치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또 다른 연구 관심사는 노보(老保) 조직, 대연합, 관료제 정비, 변화된 대중 조직, 후기 조반파, 사작조, 제2 무장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 미쳤다. 이들은 모두 문혁의 중요 구성 요소로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비록 사료의 한계로 인해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논의가 실마리가 되어 다른 연구자들의 견해를 이끌어 내고, 이들 영역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후속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문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역사적 기억을 되새기며, 문혁의 실제 현장을 재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