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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함 속의 초연함 5
1부 ■ 이것이냐 저것이냐 ●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 19 ● 개소리 예술가 33 ● 완전 자동 고품질 번역FAHQT: fully automated high-quality translation 39 ● 움직이는 유물 51 ●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의 아침The Breakfast at the Breakfast Table 57 ● 메이킹 65 ● iOS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69 ● 넷플릭스에서 마약을 파는 법 75 ● 검색의 저주 81 ● 구름과 멀티태스킹하기 85 ● 영화는 정부를 갖지 않는다 91 2부 ■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99 ● 재세계화Reworlding 105 ● 모호함 하지만 흥미로움 113 ● Silver car plays itself 119 ● 어떻게 해야 빠져죽지 않고 빠져들 것인가 133 ● 세계와 바지 139 ● 일상으로의 초대 147 ● 일상을 바꾸는 방법 151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159 ● 마음 기계 마음 163 ● 건축과 자유 169 ● 집은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173 ● 내용 없는 아름다움 177 3부 ■ You may already be a member ● You may already be a member 187 ● 모두 다 예쁜 말들 197 ● AI와 함께한 수요일 207 ● 발로 쓴 소설 217 ● 최고의 정치 농담을 뽑는 대회가 공고되었다. 1등상은 15년형이다. 229 ● 나는 얼굴 없이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35 ●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존재한 적도 없었다 239 ● 문장을 쓰기만 하면 되는 그런 책 245 ● 문학이라는 이름의 개 251 ● 타협으로서의 문학 255 ■ 참고 자료 및 수록 지면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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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엿본 자유의 실재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자유는 항시적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존재하는 것은 저항밖에 없다. 저항은 생명의 근원적인 상태다. 그 무엇보다 먼저 존재했고, 끝까지 남는다. 저항이 멈추는 순간 우리도 멈춘다.
---p.8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는 방식을 제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진리에 도달한다. 진리는 마리화나의 연기처럼 흩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순간은 존재한다. 샤스타와 닥 스포텔로가 어딘가로 향하는 마지막 씬처럼, 진리의 파편이 무차별적 정보에 열려 있는 우리를 잠깐 비추는 것이다. ---p.37 문학과 관련된 오래된 논의가 있다. 괴테의 세계문학론에서 출발한 이 논의는 세계문학과 민족문학, 보편과 특수, 중심부와 주변부, 글로벌과 로컬리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반식민주의, 탈식민주의, 완역과 중역, 직역과 의역 등등 온갖 쌍을 두고 대립한다. 나름의 결론도 존재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모든 특수는 보편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더블린을 배경으로 작업했지만 더블린의 핵심에 이르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 41 나이가 지긋한 선배 작가는 어릴 때 읽었던 세계문학이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문체도 읽기 편하고 내용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어린 시절 읽은 세계문학은 대부분 일본어 중역이었다. 내용이 생략되는 건 다반사고 많은 경우 추가되기도 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 불가능한 일이다. 생략은 몰라도 추가라니? ---p.48 세계는 당신을 낯선 곳으로 이끌 수도 있고 그저 멍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낯선 곳은 세상이 감탄하는 신대륙일 수도 있고 쓰레기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런 모험을 시도할 시간이 있을까? 우리에게 그런 자유가 있을까? ---p.89 지금 이 시대의 공기를 거부하지 않고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면 당신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실버 고스트냐 드로리언이냐. 실버 고스트가 막후에서 엄청난 힘을 자랑하며 세계의 역사를 좌우하는 프리메이슨 같은 집단이라면 드로리언은 망가지고 부서진 노동자들의 미래이며 꿈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그게 드로리언들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pp.130~131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내면, 세태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파는 태도, 미래에 대한 확신 등은 모르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평온함이나 단단함, 자신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p.153 오늘날 타협은 가장 아름답고 용감한 지적 행위이지만, 타협이라는 단어 자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참된 종합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단순하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습니다. 지성이란 이 부조리하고 터무니없는 세상에 어느 정도의 이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입니다. ---p.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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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서 2024년까지
새로운 배열이 만드는 하나의 동선 지난 10년의 글을 한 권으로 묶으면서, 『임시 자율 구역』은 배열된 글들이 서로를 비추고 리듬을 바꾸며 잇는 하나의 동선을 만든다. 독자는 문화와 기술, 예술과 감각의 장면에서 출발해 사회와 공간, 정치와 일상의 조건을 지나고, 마지막에는 문학과 주체, 글쓰기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글의 배열은 발표 시기의 순서보다 책 안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동선을 고려했다. 서문은 책 전체의 전주처럼 놓이고, 1부는 문화와 감각의 문제로 문을 열며, 2부는 사회와 공간의 조건으로 이동한다. 3부는 다시 문학과 작가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와 제약 안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긴다.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글들은 한 권 안에서 다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질문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는 이미 세계에 주어진 조건 안에서 살아간다. 플랫폼과 제도, 언어와 취향, 일상과 정치, 문학과 멤버십의 울타리 안에서. 그렇다면 이 안에서 자유는 어떻게 감각될 수 있는가. 저자는 이 질문을 문화, 사회, 문학의 세 층위로 통과시킨다. 1부. 이것이냐 저것이냐 미결정성에 머무는 문화의 장면들 1부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문화의 장면들 속에서 존재의 미결정성을 탐색한다. 이 부의 제목은 선택을 강요하는 문장처럼 보여도, 그보단 오히려 선택을 지연시키는 태도에 가깝다. 어떤 대상을 곧장 규정하거나 판단하기보다, ‘존재의 미결정성’ 자체를 성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여기서 문화는 작품이나 취향의 목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예술, 기술, 언어, 번역, 유물, 패션, 플랫폼, 검색, 멀티태스킹, 영화는 모두 세계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경계면이 된다. 「완전 자동 고품질 번역」에서 번역은 전달의 기술을 넘어 뒤집기와 변용의 과정이 되고, 「움직이는 유물」에서 유물은 보존된 사물이기보다 이동과 재해석의 연속 속에 놓인다.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의 아침」과 「메이킹」은 인간과 사물, 능동성과 수동성, 습관과 선택이 서로를 확정하지 않은 채 함께 움직이는 상태를 보여준다. 이 흐름은 디지털 기기와 플랫폼의 조건으로 확장된다. 「iOS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마약을 파는 법」, 「검색의 저주」, 「구름과 멀티태스킹하기」에서 정지돈은 기술을 외부의 도구처럼 다루지 않는다. 기술은 기억과 사유, 중독과 자유, 산만함과 집중의 조건을 바꾸는 세계의 일부다. 1부는 우리가 이미 이런 조건 속에서 생각하고 보고 읽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 조건 안에는 여전히 작은 어긋남과 구멍, 우연한 경로가 남아 있다. 2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사회와 공간 속에서 자유는 어떻게 호출되는가 2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는 사회와 공간의 조건으로 이동한다. 68혁명과 상황주의의 급진적 슬로건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이 부에서 오늘의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삶 속에 스며드는지를 묻는 문장으로 다시 작동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는 말은 거대한 전복의 구호로만 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플랫폼의 선택지, 콘텐츠의 취향, 일상의 자기관리, 도시와 건축의 공간, 광장 이후의 삶 속에서 미세하게 반복된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영화와 정치, 재현과 현실의 경계를 통해 2부의 문을 열고, 「재세계화」는 운동권의 언어와 세대의 조건을 지나 서로 합쳐지지 않는 입장들을 긴장 상태로 유지하는 감각을 제시한다. 「모호함 하지만 흥미로움」과 「Silver car plays itself」는 애플, 넷플릭스, 자동차, 음모론, SF적 상상 같은 문화적 표면 위에서 자유와 예속이 어떻게 연출되는지 포착한다. 여기서 정치는 하나의 이념이나 사건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는 우리가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선택하며, 어떤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다고 느끼는지의 문제로 이동한다. 후반부는 정치와 일상의 접점을 더 가까이 당긴다. 「어떻게 해야 빠져죽지 않고 빠져들 것인가」, 「세계와 바지」,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을 바꾸는 방법」은 참여와 몰입, 세대론과 쇼핑, 촛불 이후의 감각과 불안의 자기관리로 이어진다. 「건축과 자유」, 「집은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자유를 태도나 권리의 차원에서 공간과 신체, 생활의 조건으로 옮긴다. 자유는 완벽하게 설계된 상태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과 효율이 느슨해지는 곳, 무지와 모순과 비효율이 허용되는 곳, 세계와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작은 장소에서 발생한다. 3부. You May Already Be a Member 이미 주어진 세계와 제약 안에서의 문학 “You May Already Be a Member”는 앞선 문화와 사회의 논의를 지나 문학과 주체의 자리로 향한다. 이 3부의 문장은 초대장처럼 보이면서도 사후 통보처럼 들린다. 우리는 모두 이미 어떤 세계에 속해 있다. 언어, 장르, 출판시장, 문학장의 규약, 플랫폼과 멤버십, 정치적 입장과 취향의 배치 속에서 읽고 쓴다. 3부는 이 조건을 문학의 한계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에서 가능한 쓰기의 형식과 가능성을 묻는다. 「You May Already Be a Member」는 상황주의와 문학, 소속과 가입, 예술과 비예술, 참여와 비참여의 경계를 흔든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은 문학이 의존해 온 아름다움과 깊이의 언어, 비판과 혁명의 언어가 어떻게 전염되고 전유되는지 묻는다. 「AI와 함께한 수요일」은 인공지능을 문학 바깥의 위협으로만 다루지 않고, 마감과 도구, 저자성과 문장의 조건을 다시 드러내는 계기로 삼고, 「발로 쓴 소설」과 「나는 얼굴 없이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는 작가성, 추천사, 인용, 정보의 흐름 속에서 작가라는 얼굴이 어떻게 임시적으로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는 문학을 계속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기쁨으로 나아간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정영문, 캐시 애커, 플로베르, 시그리드 누네즈, 강보원과 금정연 같은 이름들은 정지돈의 문학적 멤버십을 이루는 느슨한 별자리로 등장한다. 「문장을 쓰기만 하면 되는 그런 책」은 아이러니와 전유의 시대에도 여전히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문학이라는 이름의 개」는 문학을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 때로 우리를 물 수도 있는 존재로 감각한다. 마지막 글 「타협으로서의 문학」은 확신이 불가능해진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문학의 관성을 남긴다. 『임시 자율 구역』은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가 이미 가입된 존재라는 인식과 더불어 여전히 선택 앞에 놓여 있다는 긴장이 책의 시작과 끝을 연결한다. 책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나고 밀려오는 구역들 표지에서 본문까지 이어지는 자율의 리듬 책의 강조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임시 자율 구역』의 표지는, 고운 모래판과 무명천을 떠올리게 하는 표면에 무보舞譜, 즉 춤의 움직임을 악보처럼 기록한 그래픽을 하얀 박으로 얹어 완성했다. 이는 저자의 글들이 서로 다른 시기와 매체를 지나 하나의 동선을 만들어가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본문 하단의 쪽수는 의도적으로 가장자리에 걸쳐 배치되어 일부 잘려 보인다. 이는 인쇄 오류가 아니라 본문 디자인의 일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숫자는 온전히 고정되지 않고, 책의 바깥을 향해 조금씩 밀려나고 밀려온다. 그 작고 반복적인 변화로 『임시 자율 구역』이 다루는 울타리, 틈, 이동, 자율의 문제를 책의 물성 안에 새겨 넣었다. 결론에 앞서는 질문과 조건 비평적 산문 시리즈 KRITIK KRITIK은 우리의 판단이 가능해지는 토대와 분기점을 살피려고 한다. 무엇이 좋은가, 무엇이 실패했는가,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낡았는가를 묻기 전에, 먼저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전제, 대상이 놓인 조건,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언어와 기준을 점검한다. 정지돈의 『임시 자율 구역』이 자율의 가능성이 잠시 발생하는 공간과 언어를 탐색했다면, 박동수의 『쿠소필리아』는 ‘나쁜 영화’와 ‘나쁜 취향’ 아래 모이는 실패한 이미지와 관객의 애착을 통해 동시대 문화의 또 다른 분기점을 읽어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