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일찍이 나는 | 개 같은 가을이 | 사랑 혹은 살의殺意랄까 자폭 | 네게로 |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 나의 시詩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 올여름의 인생 공부 | 삼십 세 | 슬픈 기쁜 생일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우우, 널 버리고 싶어 | 내 청춘의 영원한 | 외롭지 않기 위하여 | 사랑하는 손 | 이 시대의 사랑 | 자화상 | 너에게 |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고요한 사막의 나라 | 197×년의 우리들의 사랑 | 주인 없는 잠이 오고 |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 연습 | 내가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 | 내게 새를 가르쳐주시겠어요? | 봄 | 즐거운 일기日記 | 누군지 모를 너를 위하여 | 여성에 관하여 |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 여의도 광시곡 | 문명 | Y를 위하여 | 산산散散하게, 선仙에게 | 이십 년 후에, 지芝에게 | 무제無題 1 | 무제 2 | 악순환 | 시인 | 삼십삼 년 동안 두번째로 | 혼수昏睡 | 자칭 시詩 | 그날 이후 | 일찍이 세계는 | 어떤 아침에는 | 물망초 | 기억의 집 | 이천 년대가 시작되기 전에 | 없는 숲 | 외로운 여자들은 | 삼십대 | 기억하는가 | 희망의 감옥 | 그거 | 오월 | 겨울 들판에서 | 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 | 미망 혹은 비망 8 | 미망 혹은 비망 13 | 서역 만리 | 봄 | 워드프로세서 | 세기말 | 내 수의를 | 귀여운 아버지 | 마흔 | 근황 |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 다리 밑 | 하안발下岸發 3 | 흔들지 마 | 이 시 | 바오로 흑염소 | 왕국 | 일점 일순 | 나는 용서한다 | 연인들 1 | 연인들 2 | 쓸쓸해서 머나먼 | 구름 한 점 쓰다 가겠습니다 | 돼지가 나갑니다 | 새 한 마리가 |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 참 우습다 | 말[馬]들이 불쌍하다 | 2011년 1월 | 나는 다시 돌아왔다 | 빈 배처럼 텅 비어 |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 나의 생존 증명서는 해설 미친 사랑의 노래 · 진은영 |
최승자의 다른 상품
|
· 책 속으로(본책)
한밤중 흐릿한 불빛 속에 책상 위에 놓인 송곳이 내 두개골의 살의처럼 빛난다. 고독한 이빨을 갈고 있는 살의, 아니 그것은 사랑. 칼날이 허공에서 빛난다. 내 모가지를 향해 내려오는 그러나 순간순간 영원히 멈춰 있는. 쳐라 쳐라 내 목을 쳐라. 내 모가지가 땅바닥에 덩그렁 떨어지는 소리를, 땅바닥에 떨어진 내 모가지의 귀로 듣고 싶고 그러고서야 땅바닥에 떨어진 나의 눈은 눈감을 것이다. ---「사랑 혹은 살의殺意랄까 자폭」중에서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너에게」중에서 쓴다는 것이 별것은 아니라고, 쓴다는 것에 아무런 희망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 그러나 이제 고백하자, 시인하자.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 어쩌면 내 삶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 [……] 내 익숙한, 잘나가는 달필을 버리고 원고지를 버리고 노트를 버리고 글자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자꾸만 목이 말라 더듬 더듬 떠듬 떠듬 처음으로 워드프로세서를 치고 있는 이 밤에. ---「워드프로세서」 부분 나는 용서한다. 지나간 모든 세기들을, 다가올 모든 세기들을, 모든 환영들을. 나는 용서한다. 지구를, 태양을, 달을, 천왕성을, 명왕성을, 해왕성을, 빌어먹을 빅뱅을. [……] 나는 용서한다. 네 몸, 내 몸을, 나의 눈, 나의 귀, 나의 코, 나의 입을. 나는 용서한다. 모든 형용사들, 부사들을, 모든 비교급들과 최상급들을, 모든 문장들을. 나는 용서한다. 내가 썼던 시들과, 내가 쓸 시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읽었던 혹은 읽을 모든 눈들을. ---「나는 용서한다」 부분 · 책 속으로(별책)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만만치 않은 일인지 아느냐고, 시집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최승자 시인은 말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가 시 쓰는 여자다, 세상에서 강한 여자가 시 쓰는 여자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곤 했다. 그리고 패기도 광기도 없는 내가 매일 새로운 밤마다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의 사막을 본다. ---「강성은, 어떤 아침과 어떤 밤중에」중에서 서가에 서서 시집을 빼내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낯설고 뜨거웠다. 아픔의 낭자함. 벌거벗은 고백들. 폭발력.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듯했다. [……]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내 상처가 알싸해졌다. 알코올 솜으로 문지를 때처럼 쓰라림과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최승자의 시를 통해 처음 소독되었다. 내가 속한 준거집단에서 받아온 억압들로 인해 숱하게 쟁이기만 해온, 습한 이불 같은 수치심들을 처음으로 햇볕 아래 내다 널었다. ---「김소연, 40년 전 어느 봄날」중에서 그날의 기억은 노상 그녀의 맨발을 가리킨다. 그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들이 그날의 소풍에 뜻밖의 이채異彩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좁은 산길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이 멀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기억은 편파적이고 편향적인가. 그 ‘외진’ 기억을 자꾸 불러내는 나는 그녀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또 무엇에 붙들리는가. ---「김행숙, 어느 겨울 외투와 여름 맨발」중에서 우주 비행사들은 광막한 우주에 외롭게 떠 있는 푸른 지구를 목도한 후 하나같이 정신적 변화를 겪는데, 이 현상을 ‘조망 효과’라 부른다고 한다. [……] 조망은 대개 관찰하는 시선, 차가운 시선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어떤 조망은 반대다. 조망된 세계에 마음이 흔들리다니. 그것도 최승자의 조망이라니. 우주 비행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조망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신해욱, 지금 만나는 최승자」중에서 시인은 내게 받아안을 수 없는 거대함이었고 시인에게 나는 비집고 파고들 수조차 없는 연약함이었을 터였다. 그런 걸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내게 속해 있던 그 모든 시간과 감각을 동원하여 그 순간에 집중했다고만 기억한다. 모든 게 암흑 속이던 때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를 감지한 듯한 마음의 아우성. 한 시인의 영혼 이전에 한 사람의 육체를 발견한 듯한 몸의 더듬거림. 너무 오래 잠들어 있던 머리칼이 불멸의 촉수처럼 한 올 한 올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민하, 천 일의 잠」중에서 어떻게 이리 뜨겁게 쓸 수 있지, 뜨거운데 어떻게 넘치지 않을 수 있지, 펄펄 끓는 냄비를 어떻게 맨손으로 계속 들고 있지. 최승자 시는 달랐다. 남김없이 열려 있는 고통의 서랍들. 이렇게 한가운데가 있나, 과녁을 이렇게 정조준할 수가 있나 그런 통증. 정중앙이었는데 언어 안에 담긴 맨 처음은 깨지지 않았다. [……] 여성과 야만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 가감이 없었다. 계산이 없었다. 오로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화살은 계산을 모르는 법이니까. ---「이원,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는 작고 까만 새」중에서 그 목소리는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시대의 어둠을 건너온 목소리였다. 그렇게 선 채로 시집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 그것은 더는 평범한 사랑의 시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가장 견디기 어려운 내밀한 언어를 내지르고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며 실패하는 그 사랑의 목록 속에서 스스로를 지워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정의 방식 속에서 나는 어떤 강인한 진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의 끝까지 밀려난 자리에서 씌어지는 한 인간의 오롯함을. ---「이제니, 어둠 너머의 목소리」중에서 내 안의 아이나 배고파 우는 마음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 당신의 시를 읽었습니다. 우는 법에 관해 이야기할 줄 알게 된 것처럼 여겨질 때도 당신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시를 각자 다른 곳에서 함께 읽고 있었던 여자들도 만났습니다. [……] 울다가 웃어도 괜찮다는 걸 그렇게 알았습니다. ---「하재연, 우리의 유독한 사랑들은 퍼져나갑니다」중에서 |
|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외면도 쉼도 없이 겪어내는 생의 표표한 실감 고통과 절망을 직시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공법 동시대 여성 시인 아홉이 고른 91편의 시 전문 함께한 시인들의 해설 및 산문 수록 최초로 한데 모인 47년 시력(詩歷)의 발자취, 최승자의 첫 시선집 “괴로움/외로움/그리움”의 “트라이앵글”을 맴도는 “청춘”(「내 청춘의 영원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서른 살”(「삼십 세」)과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에 선 “마흔”(「마흔」) 그리고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참 우습다」)리는 이후의 시간까지 전부 아우르는, 그리하여 영원한 우리 모두의 시인. 최승자의 시선집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선집의 제목은 시인의 의견에 따라 『즐거운 일기』(1984)에 수록된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에서 가져왔다. 1979년 시단에 등장한 이래 치열하고 처절한 시 세계를 힘껏 펼쳐온 최승자는 “지독하게 살아낸, 살아 달이고 우려낸 삶의 이미지”로서 한국 시사의 “상징이”(「바오로 흑염소」) 되었다. 그의 최근작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2016)가 출간된 지 꼭 10년이 흐른 지금, 약 50년에 달하는 시력을 망라하는 “이 시선집은/어떤 획을 긋는다는 의미가 있을 것”(‘시인의 말’)이다. 이번 시선집의 수록 시편 선정에는 1990~2000년대 데뷔하여 활발한 시작(詩作)을 이어나가고 있는 여성 시인 9인(강성은, 김소연, 김행숙, 신해욱, 이민하, 이원, 이제니, 진은영, 하재연)이 참여하였다. 아홉 시인이 기출간된 최승자의 시집 여덟 권을 다시 읽고 살피며 고른 시 91편을 각 시집의 차례대로 실었으며, 작업에 함께한 이들의 소회와 회고는 본책의 해설과 별책의 산문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최승자의 시적 궤적을 한눈에 전람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시집 차례 전체를 정리하고 시선집의 수록작을 추리는 과정에서 논의된 시편들을 표시한 「최승자의 시집 1981-2016」 또한 별책에 묶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2026 한글-한지 융합 프리미엄 브랜드 개발’ 사업의 지원 아래 한지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함을 발한다. 고아한 결 사이사이 금박과 은박 조각이 성글게 박힌 한지를 표지에 사용하여 최승자 시의 불후한 현재성과 “은銀가루처럼 쏟아져 내”릴 “미래의 시간들”(「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을 시각화한 이번 한지 제작본은 초판 한정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어떤 이들은 진리를 통해 온전히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승자의 시를 읽는 우리는 그런 부류가 못 된다. [……] 위계를 싫어하고, 진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며, 늘 사랑을 믿는다. 물론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이 단번에 낫는다고,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온전한 합일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는 분명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님이 아님을 잘 안다. 오히려 우리는 최승자 시의 화자처럼 사랑이 얼마나 잘도 떠나가는지를 알고, 더러운 세상을 버리려 하고, 자주 “니힐리스트”(「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되고, 혼자서라도 “개종하고 싶”(「하안발下岸發 3」)어 한다. 가끔은 이곳에 머물 이유가 전혀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우리는 최승자의 시구 곁으로 기어서 간다. -진은영 해설, 「미친 사랑의 노래」에서 “우리가 최승자의 시를 읽으며 시에 나타난 자기 비하와 혐오에 묘한 친밀감을 느끼고 마치 낯선 타향을 헤매다가 동족이라도 만난 듯 반가운” 까닭은 그가 우리가 “모르는/그러나 충분히 알고 있다고 느끼는/저 모든 삶의/의혹들에 관하여/기복들에 관하여”(「희망의 감옥」), 이름 붙일 수 없이 아득하고 지리멸렬한 생(生)에 관하여 노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해명할 언어가 빈곤할 때 몇 번이고 돌아가 찾게 되는 전력의 언술. 시인이 짚어내는 삶의 단면은 너무도 적나라해서 비통하고 아프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도 적확하므로 차마 “이런 게 삶일 줄은 몰랐다고 말”(「산산散散하게, 선仙하게」)할 수 없으며 되레 아름답다. 이번 시선집의 해설이 말하고 있듯 “응시하는 시선이 없는데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삶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끈질기게 천착해온 시인의 눈길 안에서 생은 먹빛의 처참과 빛나는 찬란을 오가는 편편금(片片金)이다. 고로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이십 년 후에, 지芝에게」)다.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부분 최승자의 시에서 생의 아름다움이 그것을 집요히 바라보는 ‘정시(正視)’의 눈으로부터 비롯한다면, 사랑의 아름다움은 정직한 ‘굴복’에서 기원한다. “다만 무참히 꺾”이고 “분질러”질 순간을 “살아,/기다”릴 때, “가장 강한 강함이든/가장 약한 약함이든/그것에 굴복할 때/사랑은 가장 아름”(「겨울 들판에서」)답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씹어야 할 “오늘의 닭고기”와 삼켜야 할 “오늘의 눈물”(「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이 있음을 이해하는 자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결코 공허할 수 없다. 그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 쉬는 염통들”(「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이 만져지고, 삶은 다시금 생생하게 실감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로서 퍼 올리는, “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한 사발”(「그대 영혼의 살림집에」)의 사랑. 세기를 건너며 오랜 시간을 통과해왔음에도 여전히, 이 식지 않는 감정의 요동에서는 펄펄 김이 난다. 벅차도록 뜨거워 혀를 델지언정 생의 허기와 사랑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크게 한술 떠 입에 넣고 삼킬 수밖에 없는 시. 최승자의 시를 속에 품고 “또다시 치명적인 사랑을 시작”(「슬픈 기쁜 생일」)하는 우리는 오늘도 “사랑합니다.//잘 살아 있습니다”(「근황」). |